가을과 함께 한 산책

by Chong Sook Lee


가을을 만나러 숲 속을 걸어본다. 어느새 동구밖까지 온 가을이 노란 옷을 입고 손을 흔든다. 곱게 차려입고 그리운 누군가를 기다리나 보다. 못 본 사이에 옷을 다 벗어버린 나무들도 많아졌다. 해당화가 곱게 피었던 들판에 꽃은 다 떨어지고 빨간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지난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오래도록 숲을 지키며 수문장 노릇을 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기운이 다되어 쓰러졌다. 누워서 쉬는 나무들을 보면 살아온 삶이 보인다. 커다란 뿌리가 뽑혀서 어느 이름 모를 동물 모습이 되어 편하게 누워 있다. 이제는 그만 쉬어도 된다. 숲을 지키느라 숨이 찰 텐데 누워서 한숨 자면 된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버섯들이 보인다. 꽃처럼 피어있는 모습이 눈이 부시다. 나뭇잎들이 떨어진 오솔길을 따라 걸어본다. 너도 나도 한잎 두잎 물들어 가는 가을에 내 마음도 덩달아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간다. 세월 따라 살아온 날들이 빠른 속도로 간다. 쫓아갈 수 없도록 빨리 간다. 지난봄에 늑대가 살고 있다고 해서 가지 못한 곳을 오랜만에 가 본다. 쇠 방울을 들고 다니니 늑대를 만나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숲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르도록 숲이 깊다. 수십 번을 다닌 곳이라서 마음이 아주 편하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눈감고도 갈 정도다. 처음에 이곳에 와 보고 원초적인 모습에 반하여 오기 시작했다.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너무 좋아 몇 년을 계속 다니는데 갈수록 정이 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언제나 반겨주는 곳이다. 알록달록 익어가는 가을이 되어 지난날들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걸어본다. 언덕을 내려가다 보니 죽은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언제 저 나무들이 넘어질지 모른다. 지난번에는 커다란 나무가 넘어져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층계를 덮쳤다.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지만 한동안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런 것 보면 나무나 사람이나 시간이 되면 가야 한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자작나무가 나이가 들어 죽어간다. 며칠 전에 남편이 죽은 나뭇가지를 잘라주었는데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무 기둥이 말라서 갈라지고 터진 모습을 보며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생각이 난다. 아주 작은 나무였는데 30여 년이 지나고 나니 노년의 길로 접어들었다. 봄이면 하얀 꽃으로 단장을 하고 여름에는 우리 거실에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다. 가을에는 곱게 물든 단풍으로 가을을 만끽하게 해 주고 눈 오는 겨울에는 새들이 놀러 오는 나무인데 죽은 나뭇가지를 잘라주고 나니 초라해 보인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어 봄을 맞고 가을을 맞는다. 산책로를 걸어가면 여러 가지 나무들이 서 있다. 지난번에는 층계를 내려가는데 층계옆에 죽은 나무에 딱따구리 세 마리가 달라붙어 나무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다. 아마도 세 식구가 점심을 먹으러 나온 모양이라며 웃었다. 고운 가을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숲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봄을 맞고 가을을 맞으며 또 다른 봄을 기약하는 자연은 조용히 계절에 순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숲은 우리를 이어주는 생명의 손길이다. 피어나고 시들어 땅에 떨어져도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려준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다본다. 자연은 서로를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진리 안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실망하지 않는다. 우리의 행운은 언젠가 주인을 찾아오기에 희망하며 소망한다. 숲에서 만난 가을과 손잡고 걸으며 따스한 마음을 전한다.


(사진: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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