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온다... 가을이 깊어간다

by Chong Sook Lee



비가 온다. 가을비가 아침 내내 차분하게 내린다. 언제부터 오는 비인지 거리가 다 젖고 지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꽤 많이 온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릴 적 어른들이 하는 말이 이해가 안 갔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오면 나가지 못하는데 어떻게 공을 치나 의문이 되어 엄마한테 여쭤 보았던 생각이 난다. 철이 들며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되었다. 계절은 거짓을 모른다. 때가 되면 이파리가 피어나고 단풍이 들고 떨어뜨린다.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시간이다. 비가 끝이면 낙엽들은 제갈길로 가서 흙이 되어 다시 피어날 것이다. 생각하면 꽤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남은 세월 동안 어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부터 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세월 따라 늙어가는 모습을 본다. 생전 늙지 않을 것 같이 건강하던 사람이 아프고 갑자기 떠나는 일이 빈번하다. 병이 많아지고 약종류도 많아졌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을 비롯하여 온갖 몸에 좋다는 비타민 종류가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생활이 병을 만드는지 아니면 약이 병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몸이 안 좋아 의사를 보러 가면 이런저런 약을 처방해 준다. 어딘가 염증이 생긴 상태에서 항생제는 바로 사다 복용하지만 다른 약은 꼼꼼히 따져본다. 언젠가부터 약을 복용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알아본 다음에 산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대로 사다가 한두 번 먹어보면 이상 증세가 생겨 먹다 말은 약들이 많다. 속이 안 좋고, 잠이 쏟아지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듯한 느낌이 오는 약도 있고, 아픈 데가 하나도 없어지는 마약 같은 약도 있다. 물론 열이 나거나 온몸이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어야 하지만 되도록이면 안 먹으려 한다. 어딘가 아프면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지만 인간의 몸은 병이 생기면 회복이 되는 능력도 있다. 몸이 조금 아프다고 약부터 찾다 보면 약으로부터 나오는 독소가 생기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물렁뼈가 없어진다 해서 물렁뼈 재생한다는 영양제를 먹은 적이 있다. 식당을 할 때 몸이 약해진 건지 아니면 신경통이 시작된 건지 몸이 여기저기 아프던 때가 있었다. 의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약을 먹으라고 해서 열심히 복용했다. 시간이 지나 다 나은 것 같아 그만 복용해도 될 것 같아서 정지했는데 서서히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진통제였다. 그 뒤로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만 먹으며 건강을 되찾았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아프기도 하지만 몸이 아프면 누워서 쉬고, 속이 안 좋으면 단식을 하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된다. 아프면 참고 기다리다 보면 병을 키운다고 하는 말도 맞고 약에 중독된다는 말도 맞다. 갑자기 많이 아프면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응급실에 가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잠깐의 생각으로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 달 전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 고생했다. 기침이 심하게 나고 열이 오르내리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의사를 보러 갔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나를 본 의사는 약처방은 안 해주고 가슴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하라고 해서 검사를 하고 집에 왔다. 그날 저녁 심하게 앓고 다음날 병세가 심해지는 것 같아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당연히 응급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단은 진찰이라도 받아보려고 긴 줄에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데 어지럽고 기침이 심하게 나는데 이러다간 차례를 기다리다 병이 더 악화될 것 같아 일단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기침약을 먹고 누워 있는데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고 심박수가 130 이상이 되어 숨쉬기가 힘들어서 일단은 빠른 심박수에 대해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결론은 큰 병일지도 모르니 빨리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다. 갑자기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어려워 다시 응급실로 갔더니 그사이 길었던 줄이 짧아지고 2시간 반 만에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누워서 기침을 하며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의사가 전날 했던 검사결과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기가 막혔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검사에 이상이 없다고 하는 의사가 야속하여 다시 물었다. 이상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나는 너무 괴롭다며 폐 시티를 한번 찍어 보고 싶다고 했다. 주위에 몇몇 사람들이 폐암으로 고생하는 것을 봐서 나름 걱정이 되었는데 의사가 흔쾌히 승낙을 해서 찍어보니 폐렴이라는 검사결과가 나와 항생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와서 열흘간 약을 먹고 나았다. 검사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 말만 믿고 집으로 왔으면 폐렴이 악화되는 줄도 모르고 병을 키울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폐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심박수가 빨라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나중에는 패혈증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병의 진행속도가 다르지만 다행히 의사가 시티를 찍어 주어 너무 고맙다. 사람이 사는 동안 이런저런 사람을 만난다. 언제 어느 때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내가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의사를 만나서 시티를 찍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아무런 증상도 없이 병이 깊어지는 경우도 많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운이 받쳐 주어야 한다. 비가 오는 날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저런 지나간 날들을 생각한다. 사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한다. 병이 깊어지기 전에 적절한 시기에 검사도 하고 약도 먹어야 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이런 날은 빈대떡이나 칼국수가 생각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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