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는 그리움이 있다

by Chong Sook Lee


바람이 차다. 가을 햇살이 아깝다. 얼마 되지 않는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고 있는데 손이 시리다. 건조기로 말리지만 어쩌다 햇살이 좋은 날은 빨래를 햇볕으로 말리고 싶다. 햇볕에 말린 빨래는 촉감부터 다르다. 뽀송뽀송하여 빨래를 개는 기분이 좋다. 햇볕이 섬유 하나하나를 되살려 주는 느낌이다. 말려 접어 놓은 빨래를 안고 있으면 고향 생각, 엄마 생각이 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사셨던 엄마는 못하는 게 없다. 겨울에는 우리들 입을 옷을 털실로 떠주시고,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여덟 식구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시고,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맛있게 해 주시던 엄마. 빨래가 많아도 틈틈이 부족하지 않게 빨아주시던 엄마. 빨래를 개고 집안 청소를 하며 옛날 어릴 적 부르던 노래를 하시던 엄마… 농담을 잘하시고 장난을 잘 치며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을 웃기는 엄마..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이렇게 햇볕이 아까운 날 빨래를 널며 엄마를 만난다. 그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힘든 한평생을 어찌 살았는지 존경스럽다. 겨울에 마루나 방안에 볕이 들어오면 볕이 아깝다며 무말랭이와 호박고지를 말리고 시름을 잊고 사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걱정거리가 있으면 가까운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면서 바람을 쐬고 다시 일상의 마음으로 돌아와 평화를 찾으시던 엄마. 오늘 같이 청명한 날은 곱게 차려입고 친정에 가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학교 다니던 이야기와 결혼 전 직장에 다니던 이야기를 하며 행복했던 시절을 상기하시던 엄마. 책을 보고 빵을 만들고 과자를 만들며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시던 엄마. 결혼 후 두 아이를 장티푸스라는 전염병으로 하늘로 보낸 후 우리 육 남매를 그야말로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기르셨다.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큰소리 한번 안 내고 사셨던 엄마가 그리운 날이다. 이제 나는 엄마를 만날 수 없지만 엄마가 남겨놓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산다. 빨래를 하거나 빵을 만들면 엄마가 생각나고 웃기는 농담을 하던 엄마를 기억한다. 90세가 넘은 연세에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하시기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자식이 많아도 엄마를 돌볼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가야 할 때 가슴 아프던 날이 떠오른다. 치매검사를 하는데 거의 100점을 맞을 정도로 총명하시던 엄마였지만 세월 따라 하늘로 가셨기에 추억 속에 만나고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 엄마를 닮아서 무엇이든지 눈으로 보면 손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나인데 딸도 그런 나를 닮아 손재주가 좋다. 어디서 배웠는지 뜨개질도 잘하고 재봉틀질도 잘하여 가죽으로 가방도 잘 만든다. 그러더니 의수족을 만드는 학교를 졸업하여 캐나다 시험에 합격하여 캐나다 전역 어디에서든 인정받는 공인이 되었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심심할 시간 없이 이것저것 하다 보면 지루한 줄 모르고 산다. 오늘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나 걱정할 필요 없이 할 일이 많다. 재봉틀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기도 하고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기도 한다. 하루 24시간이 짧다. 이것저것 혼자 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전문인은 안되지만 취미생활을 하면서 심심하지 않은 노년의 삶을 산다. 바람이 불어 널어놓은 빨래들이 춤을 춘다. 바람 따라 빨래가 말라간다. 바람도, 햇살도 모두 고맙다. 때로는 너무 덥거나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힘들지만 바람과 햇살이 없다면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어쩌면 내일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상예보가 있다.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걱정하지 말자. 온 것은 돌아가고 지나가는 것이 세상 살이다. 내일일은 내일이 알아서 하게 하고 오늘을 살자. 파란 가을 하늘이 눈이 부시다. 하늘을 보며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 앞뜰에 서 있는 늙은 자작나무가 곱게 물들어간다. 올해는 가을이 길어서 아직 단풍잎을 예쁘게 달고 있다. 세월 따라 익어가고 나날이 깊어가는 가을이 그리움을 가져다준다.

(사진: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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