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 가을이 가는 소리

by Chong Sook Lee



가을 날씨로는 상당히 춥다. 추워도 눈오기 전에 걸어본다. 뒷집에 있는 커다란 나무은 이파리를 다 떨구고 나목이 되어 서 있다. 그 많던 나뭇잎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작별인사를 한다. 내년 봄에 다시 새 싹이 되어 오기를 기다린다. 돌고 도는 인생살이다. 봄이 온다고 좋아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가을을 보내고 있다. 이미 겨울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걷는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물감이 떨어질 듯 파랗다. 저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바쁜 세상에 하늘은 하늘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바쁘게 움직인다.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세월을 그냥 보낸다. 월요일이 가고 주말이 오고 새로운 달이 오고 한 해가 간다. 잡을 수 없는 세월은 가게 놔두자.


거리를 방황하며 머물 곳을 찾아 헤매는 낙엽들이 지친 듯 길거리에 누워있다. 멀리 보면 아름다운 단풍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낡고 메마른 나뭇잎들이다. 한 해 동안 생겨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사람도 나이 들어 늙으면 저 이파리들과 같다. 머리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얼굴은 주름살이 물결처럼 흐르고 허리는 고목나무처럼 굽는다. 세월이 좋아져서 허리굽은 노인들이 별로 없지만 늙어가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주부터 허리가 아파 딱딱한 바닥에서 잔다. 허리근육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바닥이 좋다고 해서 잔다. 며칠 잤더니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몸이란 정밀기계라서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반란을 일으킨다. 어깨와 허리 그리고 무릎이 차례로 아프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몸이 먼저 알아본다. 그렇다고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먹을 수 없어 견딜 려고 한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고통스러우면 진통제를 먹는데 이번에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소염 진통제를 이틀정도 먹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도 진통제를 의존할 수 없어 며칠 더 바닥에서 자는데 며칠 잤더니 적응이 되었다.


처음 며칠은 바닥이 딱딱해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 전신이 다 아팠는데 지금은 허리도 몸도 아프지 않다. 침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혹시 또 허리가 아플까 봐 며칠 기다리며 허리 눈치를 봐야겠다. 아이들은 수도 없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해도 잘 자라는데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걸을 때도 허리를 곧게 펴고 앞을 바라보며 제대로 걸으려고 노력하는데 조금 가다 보면 자세가 흐트러진다. 등뼈동물은 등뼈가 중요하다고 한다. 등에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직결되어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여러 곳에 통증을 가져온다.


등이라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나서는 등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소화가 안될 때 등을 만져주면 막힌 속이 뚫린다.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사람의 등을 만져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등 마사지를 해주면 온몸의 피로가 풀린다. 힘들어하는 사람의 등을 보듬어주면 위로를 받고, 손이 닿지 않는 등이 가려울 때 긁어주면 시원하다. 등이 시릴 때 등과 등을 대고 있으면 온갖 시름을 다 녹인다. 등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남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게 중요한 등이기 때문에 올바른 자세로 앉고 걸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핸드폰을 보다 보면 어느새 거북목이 되고 허리는 반쯤 누워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어 의식적으로 허리를 펴야 한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숲 속의 오솔길로 걸으면 바람이 없어 숲으로 들어간다. 그 많던 나뭇잎이 다 떨어져 오솔길에 차분히 누워있다. 바람이 불면 궁둥이를 들썩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며칠 사이로 숲이 휑하다. 극성을 떨며 닥치는 대로 덤벼들던 모기는 일찌감치 철수를 하고 기러기들이 남쪽으로 날아간다. 계곡에는 낙엽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커다란 나무들이 넘어져 누워있다. 여름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는지 누워서 편한 자세로 하늘을 바라본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아무도 없는 숲 속의 오솔길은 평화 그 자체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를 비추어 계곡물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아직 떨구지 못한 나무들도 머지않아 떨어지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목이 숲을 지킬 것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잎이 마지막 힘을 다해 세상을 물들이며 가는 가을을 보내고 있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계절은 말없이 시작하듯 조용히 끝을 맺는다. 한가로운 숲길을 빠져나와 동네길을 걸어본다. 날마다 변함없이 숲을 지키는 새들조차 오늘은 조용하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따뜻한 어딘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나 보다.


내일은 다시 온도가 올라가고 날씨도 좋다고 한다. 가는 가을이 아쉽지만 겨울이 다녀 가야 봄도 온다. 동네길은 동네길 나름대로 정겹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며 걷는다. 커튼이 없고 유리창이 까만 집이 있고, 뒤뜰에 마루를 까느라 바쁜 집도 있다. 장작을 잔뜩 쌓아 놓은 집도 있고, 수국이 예쁘게 피어있는 집도 보인다. 단풍잎이 곱게 물들어 오며 가며 사진을 찍는다. 머지않아 이 아름다운 가을은 추억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숲 입구에 사는 둘째 아들 집 앞에 세워 놓은 차로 간다. 오늘도 숲 속에서 만난 가을을 가득 안고 집으로 향한다. 행복이 넘치는 하루다. 가을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잔:이종숙)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