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을 향한 창문 앞에 밥풀꽃 나무가 있다. 날마다 참새들이 나뭇가지에 모여 회의도 하고 수다도 핀다. 매일매일 거의 정확하게 같은 시간에 참새들이 모인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시끌시끌하다. 어제 누구를 만나서 어디를 다녀왔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서 누구와 놀 것인지 이야기하나보다. 한참을 떠들다가 어느 시간이 되면 조용해진다. 하나 둘 날아가고 집을 지키는 참새 몇 마리만 남아서 늦잠을 자는지 잠꼬대 소리만 들리는 듯하다. 날이 흐리고 지붕이 하얗다. 눈이 왔나 했는데 서리가 두껍게 내렸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걸어본다. 춥지만 공기는 맑고 싱그럽다. 따뜻한 옷으로 완벽하게 입어서 별로 추운지 모르겠다. 춥고 귀찮다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게으름만 는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문밖을 나가면 세상이 나를 반긴다. 어제 본 듯한 까치와 다람쥐가 어서 오라며 재롱을 부린다. 매일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 나무들이 밤새 꽁꽁 얼어서 오그라들어 구부리고 있다. 햇살이 얼른 나와야 할 텐데 구름 속에서 늦잠을 자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숲 속에 있는 오솔길을 걸어간다. 어디선가 나무 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난다. 누군가가 아침 일찍부터 불을 지피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지어놓은 티피 앞에서 돌을 둥그렇게 쌓고 모닥불을 피고 논다. 놀러 왔는지 아니면 캠핑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커피를 마시고 있어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나뭇잎은 바짝 말라 조그만 바람에도 부스스하며 기지개를 켠다. 눈이 오지 않은 숲은 삭막하고 초라하다. 해가 없어 조금은 쓸쓸하지만 남편과 둘이 걷는 길은 즐겁다. 조용한 숲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과 이야기하며 걷는다. 초록은 사라졌어도 넘어진 나무와 부러진 나무를 보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 젊음도 좋지만 늙고 낡은 것도 나름 매력 있다. 고운 것도 추한 것도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늙음이 없으면 젊음도 없다. 계곡은 얼었지만 중간중간에 녹은 곳에서는 맑은 물이 차분하게 흐른다. 맑은 물아래에 예쁜 자갈들이 나란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얼고 녹으며 겨울을 맞고 봄을 맞을 것이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배운다. 계곡을 끼고 가다 보면 씨만 남아 헝클어진 머리 같은 들꽃이 시들은 채 쓰러지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낙엽을 밟으며 오솔길을 오르내리면 어느새 더워서 얼굴에 땀이 난다. 모자를 벗으면 가슴까지 시원하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해진 코스를 가다 돌아서서 동네로 들어선다. 집집마다 개성이 있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고, 차도에는 크고 작은 차들이 군데군데 서 있다. 아마도 백 년 전에는 숲이었던 곳이 개발을 하여 동네가 생기고 쇼핑몰이 생기고 집이 들어선 것이다. 아직도 옛날에 숲에서 살던 짐승들의 후손들이 숲에서 산다. 사슴이나 고라니를 비롯하여 카이욧이 가끔씩 동네로 내려온다. 사람은 해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밤에는 바깥출입을 금하는 게 좋다. 그래도 숲이 가까이 있어 동네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이 많다. 새 생명이 움트는 봄에는 푸르른 새싹들이 앞을 다투며 자란다.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숲에 풀들이 자라기도 전에 민들레가 봄을 알린다. 꽁꽁 얼은 땅을 비집고 나오는 민들레는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난 끈질긴 생명을 전한다. 봄은 숲을 깨우고, 숲은 잠자는 모든 것들을 일으켜 세운다. 어디서 있었는지 이름 모르는 풀들이 피어나고, 산나물들도 낙엽을 들추며 부스스 일어난다. 햇볕과 비와 바람과 구름을 끌어안고 여름 안에서 자라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어느새 가을을 맞으며 할 일을 다하고 떠날 채비를 하던 자연은 낙엽아래서 희망의 봄을 준비한다. 햇살이 이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나뭇가지 사이로 비춘다. 가을 같은 겨울이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내 마음은 따스한 봄을 향해 나아간다. 행복이란 눈으로 보아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행복은 만난다. 자연은 욕심을 버리게 하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게 한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자연의 품에서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다. 쓰러진 나무도, 비뚤어진 나무도 사랑받고 제 할 일을 하고,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싫어하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구박받지 않는다. 가고 싶은 데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간다. 숲 저편에서 까치들이 숲의 적막을 깬다. 무언가 먹을거리가 생겨 친구들을 부르는 모양이다. 빵 한 조각 하나라도 나누어 먹는 의리 있는 그들이다. 춥다고 나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할 소중한 행복을 한 아름 안고 걷는다. 추우면 추운 대로 단단히 입고 나와서 걸으면 행복도 함께 걷는다.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시간이다. 고은 햇살을 만나며 사랑을 전해본다. 삭막한 겨울 숲에도 삶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