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없는 겨울도 겨울일까? 눈이 없으니 겨울을 건너뛰고 봄이 올 것 같다. 11월도 하순이라 곧 12월이 온다. 크리스마스 노래와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성탄 분위기가 되어간다. 새해인사를 주고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해가 가고 있다. 한 해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도 안 나고 시간만 보낸 것 같다가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1월에 감기로 한바탕 앓고 나서 건강을 되찾은 뒤에 하와이로 열흘간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만삭인 딸은 가지 못하고 두 아들네 가족과 함께 다녀왔는데 너무나 즐거워서 지금도 와이키키 해변이 눈에 선하다. 여행의 피로도 풀리기 전에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빅토리아에 갔다. 한 달간 딸과 함께 새로 태어난 외손주를 돌보며 지냈고, 집에 오자마자 둘째 아들 가족과 함께 남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큰아들이 사는 캘거리에 갔다. 아이들과 같이 웃고, 놀고, 먹고, 자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4월 말에 미루던 검사를 했다.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가 나와서 잘 넘어갔다. 여름이 되고 아이들과 외손자 백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여행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이런저런 검사를 했더니 폐렴이라고 해서 항생제를 먹고 치료를 받았다. 코로나 백신을 세 차례나 맞았음에도 폐렴이 걸린 것은 몸이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진 결과이다. 몸이 아파서 가정의를 찾아갔더니 폐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하라고 해서 바로 검사를 하고 집에서 쉬는데 몸이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갔는데 어찌나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지 조금 기다리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의사도 오기 전에 쓰러질 것 같아 집에 왔다. 한동안 앓다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다시 응급실로 가서 몇 시간 기다리고 의사를 만났는데 어제 한 검사에 아무 이상이 없다며 집으로 가서 푹 쉬면 나을 거라고 한다. 아파서 죽겠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기가 막혀서 의사를 붙잡고 그동안 아픈 사정 이야기를 하고 폐 시티를 찍어보니 폐렴이었다. 의사가 이상 없다고 집에 가라고 할 때 집에 왔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항생제를 먹고 병이 나아서 여행을 잘 다녀왔다. 그 뒤로 손주들 생일이 연달아 있어서 가족모임을 여러 번 함께 하며 틈틈이 산책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며 시간이 갔다. 아무것도 한일이 없는 것 같은데 따져보니 많은 일이 있던 한 해였다. 남편과 둘이 만삭인 몸으로 캐나다에 이민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열세식구가 되었다. 앞으로 몇 명이 더 늘지 모르지만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을 생각하면 기쁘다. 아는 이 없는 이국땅에서의 삶은 참으로 척박하고 외로웠지만 보이지 않는 손길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하루하루가 1년 2년이 되고 10년, 20년이 넘어 어느 날 100년, 200년이라는 세월이 오고 갈 것이다. 세상은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여 돌고 돈다. 오늘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것은 온전히 나를 이끌어주고 보호해 주며 함께 걸어온 누군가의 힘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세상에 나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 줄도 모른 채 살아가고, 어느 날 신의 손이 나를 거두는 날이 오면 조용히 떠나면 된다. 살아가는 것은 준비과정이다. 어느 날 가야 하는 시간을 위해 하루하루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 먹고 쓰고 정리하고 사람 만나고 헤어지며 웃고 울고 하다 보면 한 세상이 간다. 좋고 싫고를 떠나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간다. 남들 사는 것을 보면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산다.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도 종착역을 향해 간다. 더 빨리 가고 싶어도, 오래 머물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이나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나 가는 세월은 아쉽다. 세상 모든 만물은 말없이 오고 가는 세월을 따라간다. 하루만 살고 가는 하루살이를 본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열심히 하루를 살다 간다. 이제는 백세시대가 되어 나이가 들어도 정정한 사람들이 많다. 음식이 좋아지고 생활환경이 발달하여 거리를 나가보면 허리굽은 노인들이 별로 없다. 특별한 지병이 없는 이상, 누구나 좋은 세상에서 편하게 산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갖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유튜브가 있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음악이나 글을 들을 수 있어 참으로 편리하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옛날 것을 들추어보며 그리운 회상에 잠길 수 있다. 카톡을 통해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좋은 글을 공유하며 산다. 인간은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너무 편한 세상이 되고 보니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긴다. 거리를 나가면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고 언제 어디서 어떤 무지막지한 괴한이 나타날지 모르는 사회가 되어간다. 남을 속이고 사기와 약탈과 마약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자연재해는 세상 곳곳을 강타한다. 나는 괜찮겠지, 우리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여름 내내 산불이 나서 수많은 피해를 입고 지진이나 태풍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던 한 해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더 많은 희생자가 없길 바라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고국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이유 모를 컴퓨터 오류의 문제는 왠지 모르는 공포를 가져다주고 염려가 되지만 좋은 일도 많은 것을 생각하면 희망은 있다. 눈이 없어도 겨울은 겨울이고 아무리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하면 좋겠다. 세월이 가고 세월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