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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22. 2024

3월에 오는 봄눈이 고마운 날



춘분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 새싹이 나오고 새가 지저귀고 꽃이 피는 봄의 시작이다. 봄비가 와야 하는데 봄눈이 하루종일 내린다. 함박눈도 아니고 소낙비도 아니고 가느다란 이슬비 같은 눈이 하루종일 오 쌓인다. 하늘은 회색이 땅은 하얀색으로 오던 봄이 겨울로 돌아간 듯하다. 도로가에 흙먼지가 많이 있어 비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온다. 비나 눈이나 어쨌든 가뭄에 도움이 되니 다행이다. 작년에 산불이 많이 나서 안 그래도 걱정을 하는데 비가 오면 청소도 되고 좋겠지만 눈이라도 좋다. 배고픈 사람이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고맙게 먹어야 한다. 비나 눈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더없이 고맙다. 지난달에 정수장에 기계가 고장이 나서 며칠 동안 물부족 현상으로 필요한 물만 쓰라는 공문을 받은 적이 있다. 두식구인 우리도 불편했는데 식구가 많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이다. 하늘에서 공짜로 내려주는 비와 눈이 고맙지만 봄이 오는데 방해하고 나서는 겨울이 야속한 것은 사실이다. 봄이 오는데 겨울은 가기 싫은지 온갖 심술을 다 부린다.


엊그제 앞뜰에 새파란 튤립싹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예쁘고 기특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가련하게 눈 속에 파묻혀있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해도 너무한다. 춘분이면 봄비가 와야 하는데 봄눈이 내리고 있는 창밖을 보니 을씨년스럽다. 봄이란 참으로 변덕스럽고 간사하다. 그냥 오면 되는데 온갖 문제를 일으키며 온다. 그래도 기다려지는 봄은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봄이 올 듯 말 듯하며 오지 않다가 갑자기 꽃을 선물하면 설레는 마음에 가슴이 뛴다. 한두 송이 피어 이제는 봄이 왔나 하면 꽃샘추위가 방해를 하며 벌들이 오 길을 막는다. 조금씩 다가와서 봄이 왔나 하면 여름이 들이닥쳐 봄을 쫓아낸다. 봄은 겨울이 오기 전부터 땅속으로부터 오는 것을 모르고 봄이 안 온다고 투덜대고 너무 늦게 온다고 안달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봄이 온 줄도 모르고 봄을 기다리다 봄이 간 뒤에야 봄이 다녀간 줄을 안다. 봄은 꽃이고 생명이고 사랑이다. 봄은 기쁨이고 희망이고 소망이다. 봄은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영원히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눈이 와도 봄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봄은 온다. 겨울이 아무리 가기 싫어도 결국 봄에 밀려간다.  뜨거운 태양과 날카로운 바람이 번갈아 오고 가며 봄을 낳는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오고야 마는 봄이 있 살만하다.


커튼을 열고 창밖을 본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제법 쌓여있다. 봄이 온 줄 알았는데 다시 겨울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 거리가 지저분한데 이번에 오는 눈이 더러운 모습을 모두 덮어주고 가려주어 세상이 깨끗하다. 눈이 오는 아침은 참으로 고즈넉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오고 가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안에는 냉장고와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침묵을 깨고 있을 뿐 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영상 14도로 사람들은 봄이 온다고 짧은 옷을 입고 오고 갔는데 날씨가 춥고 눈까지 오니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다시 겨울잠을 자는 것 같다. 그래도 봄까치가 잊지 않고 우리 집 뜰에 놀러 와 이것저것 건드리며 논다. 어제저녁때 눈 쌓인 앞뜰을 까치 한 마리가 와서 땅을 헤치며 무언가를 찍어 먹는 것을 보니 봄은 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빅토리아에 살고 있는 딸이 자두 꽃이 활짝 핀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딸이 보내준 만개한 자두꽃(사진:샤론)

 같은 캐나다 안에서 봄과 겨울이 오락가락하며 봄을 맞는다.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이 눈이 오지만 이미 우리의 마음에는 봄이 왔다. 눈이 와서 하얀 뜰을 보며 올해는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 생각한다. 해마다 싱싱한 채소를  제공해 주는 텃밭에 눈이 쌓여있어도 파와 부추는 이미 땅을 헤집고 나와 건장함을 보여준다. 몇 년 동안 파가 너무 비싸서 몇 단을 사가지고 이파리를 먹고 나서 뿌리를 땅에 심었더니 씨가 떨어져 해마다 나온다. 파와 부추 나오면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봄이 온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나오는 유채가 또 한 몫한다. 연한 이파리로 겉절이를 해 먹고 쌈을 싸서 먹으면 잃었던 입맛도 다시 돌아온다. 지난해에 호박 농사가 잘됐다고 친구가 가져다준 호박을 맛있게 먹고 호박씨는 말려놓았다. 날이 좋아지면 화분에 심어 놓았다가 모종으로 밭에 심으면 호박이 열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3월 하순에 내리는 눈이 겨울을 가로막는 것 같아 밉다가도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을 키워주는 눈이 고마운 날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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