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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먹고... 세상 편한 백수 생활

by Chong Sook Lee



동쪽 창문을 열어 일출을 본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날마다 다른 일출을 볼 수 있어 좋다. 어제는 구름 때문에 해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타오르는 듯 떠오르는 일출을 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하늘을 보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하루를 맞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 사는 세상이 여러 가지 있듯이 하늘도 변화무쌍하여 바라보면 재미있다. 구름이 군데군데 모였다 흩어지고 태양을 덮었다 꺼냈다 하며 흘러간다.


우리네 삶이 지지고 볶는 것처럼 하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파랗다가 빨갛기도 하고 흐리다가 맑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나무들이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다. 어찌 그리도 계절을 잘 아는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가 하면 열매를 빨갛게 익히고 겨울을 준비한다. 때가 되면 피고 지는 꽃들이 새로운 계절을 위한 계획을 세우며 떨어지고 씨를 만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연은 위대하다.


올해는 봄이 늦게 도착하여 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모종들이 꽃샘추위에 추워 얼어 죽고 다시 심은 모종이 죽을 까봐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며 봄을 맞았는데 그러던 봄이 가고 여름도 간다. 그사이 채소들이 잘 자라주어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며칠간의 뜨거운 여름날씨로 깻잎과 오이와 고추가 무럭무럭 자라서 날마다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 준다. 오이가 하나둘 자랄 때마다 기특하여 예쁘다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잘 자라주어 오이지도 담가먹고 오이소박이도 담았다. 아이들도 신기하다며 맛있게 먹고 몇 개씩 가져다주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좋다.


멀리 사는 지인이 가져다준 부추와 마늘을 넣고 오이소박이를 담갔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농약 없이 물만 주는데도 잘 자라주는 텃밭 농사로 여름동안 온 가족이 행복하다. 깻잎을 고기 먹을 때 쌈으로 먹고, 생선찌개에 넣으면 비린내도 잡아주고, 양념을 해서 찜으로도 해 먹으며 끼니때마다 잘 먹어서 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텃밭에 있는 채소가 밤새 잘 잤는지 아침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그마한 씨앗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 무력한 아기를 돌보고 정성을 다해 살피는 엄마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세상에 정성을 들여도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정성을 다 하고 마음을 다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게 된다. 올해는 사과꽃이 피자마자 꽃샘추위가 닥쳐서 몇 송이 매달려 있었는데 너무 추우니까 벌들도 오지 못해서 사과농사가 잘 안 되었다. 그래도 몇 개 따서 먹기도 하고 사과 잼을 만들었다. 조생종이라서 8월 중순이면 다 떨어지는 사과이고 생종 사과나무가 한그루 더 있는데 서리가 내릴 때에나 익을 텐데 그것도 올해는 몇 개 안 된다. 예전에는 꽃도 많이 피고 사과도 많이 달려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50년이 넘은 사과나무라서 세월 따라 나무도 늙어서 인지 가지를 쳐주며 정성을 다해도 예전 같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뒤뜰 담장옆에 서 있는 마가목 나무 열매가 진한 주홍색으로 익은 것을 보니 가을인가 보다. 서서히 익어 빨갛게 되면 겨울이 오는 것을 알기에 더디게 익기를 바라본다. 이제는 잔디도 성장을 멈추어 메말라서 서걱거린다. 하나둘 마른 잎이 떨어지고 하늘은 점점 높아만 간다. 아무것도 해 놓은 것도 없이 세월만 까먹는 것 같아 서운 하지만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다. 봄을 기다리다 보면 여름이 오고 더워서 쩔쩔매다 보면 가을이 온다.


고국은 아직도 더위가 식지 않았다는 뉴스를 듣는데 이곳은 아침저녁으로 완연한 가을이다. 나뭇잎도 영양이 다 빠져버렸는지 힘이 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다. 한잎 두잎 물들어가고 떨어지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울을 맞고 하얀 눈이 가지에 소복이 쌓일 것을 생각하면 싫지만 겨울 없는 봄은 없다. 겨울이 지나고 또 봄이 올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여름이 가기도 전에 겨울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먹고살기 바빠서 하늘 쳐다볼 시간도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할 일이 없다 보니 하늘을 보고 구름도 보며 산다.


뒤뜰에 앉아있으니 옆집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다람쥐가 오르내리며 장난을 친다. 보기에는 귀여워도 다람쥐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말을 듣는다. 어느 집에는 다람쥐가 물어다 놓은 여러 가지 다양한 솔방울이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에 꽉 차서 청소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말을 들으니 살짝 겁이 난다. 그들도 겨울에 먹을 양식을 장만하는 것인데 못하게 막을 수 없지만 이래저래 걱정이다.


아침에 해를 보고 텃밭 채소들을 둘러보며 하늘 보고 땅 보며 한 바퀴 돌아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시간은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는데 베짱이처럼 뒷짐 지고 놀기만 하면서 계절 타령만 한다. 노는 것도 재주라는데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놀아보자. 노는 것도 아무나 노는 게 아니다. 놀 수 있을 때 걱정근심 붙들어 놓고 뒹글뒹글 거려 보는 것도 재미있다. 놀고먹는 백수가 된 지 8년이 되어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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