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심은 어디에서 오는지 한도 끝도 없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원한다. 한번 보면 두 번 보기를 원하고 하나 가지면 두 개를 가지고 싶다. 일을 하며 힘들게 살 때는 일만 안 하면 원하는 게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원하는 것은 끊임없이 많아진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말만 타면 좋을 것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열흘 머물고 간 딸이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보고 싶을 때 가서 보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린다.
18개월짜리 손자의 재롱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며 열흘을 살다가 간 집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잠자는 모습은 모니터로 보고 깨어나면 어디 다칠까, 무슨 일이 생길까 쫓아다니며 안고 걸리고 했는데 텅 빈 집이 너무 을씨년스럽다. 어린 손자 하나가 집안을 사람 사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가고 나니 너무 조용하다. 몸이 힘들어도 앙징맞은 모습을 보면 행복이 넘친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사람을 홀린다. 웃고 장난치며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데 열흘 동안 다치지 않고 잘 있다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손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물건을 잡아당겨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디서 배웠는지 위험하거나 모르는 곳에 가려면 어른들의 손가락을 잡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오이를 좋아하는 손자가 오이밭에 서서 딸 오이가 없나 살피다가 오이를 보면 오이를 따달라고 한다. 다행히 오이가 잘 자라서 열흘 동안 충분히 먹었다. 밥을 주면 앙징맞은 입으로 오물 거리며 먹고, 입에 있는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입을 벌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가족이 여러 명인데 이름을 다 기억하는지 누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산후조리를 간다고 설렘반, 두려움반의 마음으로 딸네에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1년 반이라는 세월이 갔다. 그동안 아기는 예쁘게 자라고 그만큼 나는 더 늙었다. 아이들 자랄 때는 ‘어서 자라라, 빨리 자라라’ 했는데 손주들은 그런 생각이 안 들고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다. 손자가 없어 텅 빈듯한 집안에 앉아 벌써부터 그리운 손자이야기를 한다.
다른 손주들은 모두들 학교에 다니고, 놀러 와도 저희들 좋은 대로 편하게 있다 가는데 손이 많이 가는 손자가 없으니 너무 심심하다. 남편과 아침 내내 집에 간 어린 손자얘기를 하며 웃고 벌써부터 보고 싶다고 한다. 무섭던 폭염이 가고 조석으로 선선한 가을이 되어 안 그래도 쓸쓸한데 귀염을 떨던 손자가 눈에 삼삼하다. 이제 크리스마스 때나 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손자 하나를 두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재롱을 보고 손자를 쫓아다니던 것은 어느덧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다음에 볼 때는 더 많이 자라서 더 많은 재롱을 선물로 줄 것을 생각하며 기다리면 된다.
비행기로 한 시간 반 떨어진 곳에 살아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리이니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가면 된다. 만삭의 배를 안고 이곳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내가 친정엄마는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생각하면 많은 불효를 하고 살았다. 세 아이를 갖고 입덧에 시달리고, 낳고 기르며 힘들게 사는 딸 생각을 잠시도 잊지 않고 사셨을 친정엄마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민 온 뒤 8년 만에 세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때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머나먼 곳에 떨어져 살면서 친정엄마의 도움 없이 세 아이들을 잘 키웠다며 아이들 얼굴을 한없이 쓰다듬던 엄마. 지금은 내가 친정엄마가 되어 아기를 키우며 힘들게 사는 아이들을 보며 기특하다고 한다.
누구나 자식들 낳아 기르는 것이지만 옛날에 여러 자식을 키우신 부모님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져서 기계로 모든 걸 하는데도 고생스러운데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대의 여인들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 돌아서면 할 일이 산더미 같고, 아이들은 왜 그리 많이 낳았는지 힘들어도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참고 살아온 부모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들의 지금이 있는 것이다. 결혼하면 다 해야 한다고 험한 일 한번 안시키신 엄마의 마음이 전해진다.
결혼 후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어 먹지 못하던 남편이 세월 따라 내가 만든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고 한다. 아이들 집에 가서 쉽고도 간단한 요리를 가르쳐주고, 집에 오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싸주면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이번에 딸이 가는 데 가서 먹을 음식을 잔뜩 만들어서 싸주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주는 행복과 받는 행복이 있어 행복은 두배로 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손주들의 재롱을 보게 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차례차례 나오는 손주들 덕분에 지난 14년의 세월이 어찌 지났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갔다.
손주들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들로 하여금 얼마나 행복했는지 안다. 남편과 둘이 손잡고 만삭의 몸으로 캐나다라는 나라에 꿈과 희망을 갖고 이민 온 지도 44년이 넘어 가족이 13명이 되었으니 커다란 축복이다. 손주를 보내고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세월은 그냥 오고 가지 않고 선물을 가져다주고 선물을 남기고 간다. 세월 따라 번성하는 가족 간의 사랑을 간직하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