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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아름다운 가을

by Chong Sook Lee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다. 9월 하순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런 날은 어딘가 떠나고 싶은데 멀리 가지 않아도 좋은 곳은 널려있다. 숲이 있고 강이 있는 곳으로 간다.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데 멀지 않아 자주 찾아가는 곳이다. 마침 길도 붐비지 않아 잘 도착했다. 어느새 숲은 그야말로 가을이 잔치를 한다. 한 달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녹음 졌던 숲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져 걸을 때마다 밟힌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느끼면 나이 들어가는 거라는데 어쩔 수 없다. 세월 속에 우리 모두는 세상에 나와 살다가 낙엽 따라가는 것이 인생이다. 번잡하지 않은 호젓한 숲을 남편과 둘이 걸어본다. 주말에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여 바쁜 곳이라 주중에 오기를 잘했다. 고요한 숲은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저마다 다른 색의 옷으로 갈아 있고 가을을 맞는 나무들이 정답게 서있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여러 번을 왔지만 올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환영하는 숲이다. 노랗게 익어가는 나뭇잎이 너무 눈부시다 못해 찬란하다.


가까이 가보면 낡아가는 이파리들이 멀리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여름 내내 사느라 힘들었던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는 자연에 순응하며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한다. 멋진 숲 사이에 플라타너스 나무 몇 그루가 그 많던 이파리를 다 떨구고 나목이 되어 서있다. 마른 낙엽을 밟으며 걸어본다. 그늘을 만들어주던 이파리들이 할 일을 끝내고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누워있다. 봄이 오면 다시 태어날 새 이파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숭고한 시간이다. 숲 속의 오솔길은 언제나 정겹다.


여름 내내 길가에 서있던 풀들이 피곤한 듯 누워서 서로 기대고 있다. 몇 안 되는 들꽃들도 때를 알아 조용히 시간을 기다린다. 앞에 긴 다리가 보인다. 아래에는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모래사장옆으로 흐르는 강물이 햇살이 비춰서 반짝인다. 아… 가슴이 뛴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계절 따라 변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설렌다. 지난여름 손주들과 놀러 와서 강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사장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지나간 시간은 그렇게 추억을 남기고 간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강물에 숲도 보이고 다리도 보인다. 이리저리 보며 사진을 찍고, 지나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다리 중간에 있는 의자에 앉아 본다. 해외여행을 가고 이름난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곳도 너무 좋다. 단풍도 좋고,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도 좋다. 바람이 불어온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는 사람, 혼자서 걷는 사람, 전화를 하며 웃고 걷는 사람이 지나간다.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바짝 다가온 가을이 하루가 다르게 영글어간다. 강변에 서있는 나무들이 곱게 물들어 강물에 비친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멀리 보이는 모래사장이 물결에 밀려 예쁘게 자리 잡으며 가을을 맞는다. 자연은 반항하지 않는다.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눈과 비가 되어 세상을 꾸민다. 인간이 준 것으로 세상에 다시 보낸다. 자연보호 운동가들이 여기저기에서 피켓을 들고 잘 살아보자고 목청을 높인다. 개발도 좋고 반대도 좋지만 무엇이 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인간의 의지대로 이끌어지지만 자연은 자연의 할 일을 한다. 무조건적인 개발이나 막무가내인 반대는 신중해야 한다.


막힘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커다란 꿈을 꾸고 이곳에 이민 와서 살아온 세월이 길어지고 나의 시간은 짧아져간다. 20대 후반에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던 시절에 남편과 둘이 와서 시작한 이민생활인데 아이들이 40대 중반이 되었다. 돌아가고 싶던 날도 있었고, 잘 왔다고 생각한 날도 있지만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봄이 오면 진달래, 개나리, 목련꽃 피는 고향산천이 그립고, 가을이 오면 곱게 물든 고국의 산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도 떠나온 고향은 여전히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삶이란 흘러가는 강물 같다는 말처럼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것 같다. 오늘 날씨가 좋아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가을을 만나려고 온 것이다. 울긋불긋 곱게 차려입은 나무들이 서있는 강물에는 오리 한쌍이 놀고 있다. 오리도 예쁜 가을이 좋은 가보다.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서로를 따라다니며 정다운 데이트를 한다. 맑은 물에 세수도 하고 발도 담그고 싶다. 건너편 절벽 위에 집이 한채 보인다. 숲에 쌓인 예쁜 집인데 1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한 장 찍어 본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사진을 마구 찍는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너무 예쁘다. 누가 일부러 색을 칠한 것도 아닌데 가을은 예술가의 손길을 가진 것 같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은 오직 창조주만의 실력이다. 숲과 숲 사이에 오솔길을 따라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없이 걸어 본다. 강가를 돌아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노랗게 물든 나무 하나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머지않아 나목이 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가을을 맞는 모습이 정말 곱다. 오늘 밤에 잘 때 눈을 감으면 오색찬란한 숲 속길이 보일 것 같다. 가을을 만나 함께한 날의 행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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