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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이루어지는... 가을이기를

by Chong Sook Lee


온몸이 뻐근하고 무겁다. 보름 전쯤부터 아프기 시작한 무릎이 심상치 않아 액스레이를 찍었는데 신경통이 심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이가 들면 당연한 결과인데 붓기도 있고, 물기도 있단다. 구부리기도 힘들고, 걸을 때마다 통증 때문에 절뚝거리며 걷는다. 나이가 무색하게 몸이 가벼워 건강하던 내가 갑자기 무릎이 아프니까 꼼짝을 못 하겠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살살 걷기는 하는데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다.


무릎이 좋지 않아 무릎에 나쁘다는 것은 하지 않고 사는데 알 수가 없다. 부기 빠지는 약을 바르고 진통제를 먹어도 별 차도 없이 불편하다. 이러다 말겠지만 참 불편하다. 좁은 바지를 좋아해서 잘 입고 다녔는데 다리가 부은 쪽 다리는 너무 타이트해서 안 입는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심하게 움직인 것도 없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음식도 조심하고, 일도 심하게 하지 않는데 어쩌면 평소 나의 생활 습관으로 인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유난히 가을날씨가 좋다. 여름 내내 무엇이 그리 바쁜 지 두어 달 동안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무릎이 아프거나 신경통 에는 수영이 좋다고 하는데 다니는 수영장은 수리를 한다고 문을 닫았다.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수영장은 지은 지 43년이 되어 여러 가지로 노후되었지만 가봐야겠다. 우리 집 길 건너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지나 큰길을 한번 건너가면 체육관이 있으니 수영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수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물에 담그면 통증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간다.


햇살이 맑고 하늘은 푸르다. 평소 이맘때 같으면 강으로, 숲으로 가을을 만나러 이곳저곳 신나게 걸어 다닐 때이지만 무릎이 속을 썩이니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중이고 오전이라 그런지 체육관이 한산하다. 오후에는 여러 가지 강습이 있고, 학생들이 많이 오는데 텅 비어 한두 명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온 곳이라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풀어본다. 무릎이 조금 아픈데 온몸의 신경이 온통 무릎으로 쏠려 있다. 걸을 때도, 층계를 오르고 내릴 때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큰 병이라면 모를까 약간의 통증이 있는 상태에 조금 부었을 뿐인데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에서 하는 운동 몇 가지를 반복하며 몸을 풀고 수영을 해 본다. 평소에 다니는 곳은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건물이라서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데 비해 넓은 수영장을 혼자 차지하며 자유롭게 수영을 하니 좋다. 그야말로 황제수영을 한다. 수영을 하고 중간중간에 무릎 운동을 하고 난 뒤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여행도 좋고, 골프도 좋지만 몸이 찌뿌둥한 날은 이렇게 수영으로 몸을 푸는 것도 괜찮다. 무릎 통증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은 아니지만 며칠 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


수영을 마치고 집을 향해 걸어본다. 어느새 가을이 정말 무르익어 간다. 세상이 노랗게 익어가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까마귀와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놀이터에는 까치가 앉아서 논다. 학교 바로 옆에서 살아온 세월이 35년이다. 세 아이들이 다녔고, 손주들이 놀러 오면 가서 노는 곳이다. 한적한 놀이터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본다. 세월이 가고, 내가 가도 남아있을 놀이터에는 수많은 추억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세상이 좋아서 인지 아이들을 일일이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저녁 늦게 밖에서 뛰어놀다 와도 걱정 없던 시절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침 일찍 일을 나가면 아이들이 일어나서 시리얼 한 그릇씩 먹고 문을 잠그고 학교를 갔다. 열쇠를 목에 걸고 학교 끝나면 세 아이들이 함께 집으로 오곤 했는데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픈 무릎을 달래려고 의자에 앉았는데 추억 속으로 달려간다. 그 많은 세월이 가고 어느새 노인이 된 자신을 본다.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것도 한때인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마음 편하고 몸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으로 산다. 아이들 모두 각자 잘 살아가니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만 바란다.


나이 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세월은 그냥 가지 않는다.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베짱이처럼 살걸 개미처럼 살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어본다. 왜 나이가 들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며 사는 이유를 알겠다. 무릎 조금 아프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 그리 걱정은 안 한다. 가을이라고 나무들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쁜 듯이 물을 들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연두색 새싹이 나와 예쁘다고 했는데 계절은 또 다른 계절을 받아들인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하나둘 익어가고 떨어진다. 사과꽃이 필 때마다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려 몇 개밖에 달리지 않았지만 곱게 익어가는 사과가 담장에 걸터앉아 웃는다. 해걸이를 하는 사과나무이니 내년에는 더 많이 달릴 거라 믿는다. 뒤뜰에서 우리 집을 지켜주는 마가목 나무가 빨간 열매를 잔뜩 달고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든다. 힘들어도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세를 똑바로 하다 보면 다리가 나으리라 소망해 본다. 햇살이 곱게 어깨에 앉고 살며시 땅에 눕는다. 풍요로운 이 아름다운 가을에 모든 이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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