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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19. 2024

내가 사는... 나만의 특별한 삶



날씨는 청명한데 바람이 차다. 곱게 들은 단풍잎은 힘없이 떨어져 몇 개 남은 이파리가 쓸쓸해 보인다. 막바지에 다다른 가을이 마지막 짐을 싼다. 밤에 비가 내려서 길이 축축하고 뒹굴어 다니던 낙엽은 길바닥에 붙어 누워있다. 이제는 나목이 더 많아 언제 눈이 와도 이상하지 않다. 봄이 온다고 좋아했는데 가을이 가는 소리가 사박사박 들린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황량하다 못해 쓸쓸하지만 곧 하얀 눈으로 겨울잠을 잘 것이다.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 년이라는 세월이 수십번 지나는 세월이 간다. 가는 세월이 아운 것은 늙어가는 것이라지만 서운한 마음은 숨길수도 없다. 아무리 잘 살아온 사람이라도 짧아져 가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오면 가고, 얻으면 잃고, 쌓으면 버려야 하는 것이 진리지만 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하늘은 파랗고 어제 내린 비로 계곡물은 힘차게 흐른다. 떨어진 낙엽이 모여서 어디론가 하염없이 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갈 곳이 있어서 가는 것인지 아니면 흐르는 물이 데리고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많던 이파리들이 다 떨어진 숲은 휑하고 조용하다. 고요한 숲 속에서 다람쥐만 바쁘게 움직인다.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거린다. 나무사이로 숲을 비추는 햇살이 눈부시다. 몇 년을 다닌 곳인데 올 때마다 새로운 마음에 설렌다. 오며 가며 지나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서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도 한다. 혼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는 버섯 이야기를 잘한다.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알아내는 방법과 먹는 법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조상이 우크레인이고 푸로기를 좋아한다고 하며 툭 튀어나온 배를 툭툭 치며 웃고 지나간다. 우체부를 하던 사람이 지나가며 오랜만이라고 하니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자주 못 나온다고 서 멀리 가지 말고 짧게 걸어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야기하며 지나친다. 사람 사는 게 별것 없다. 젊을 때는 늙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세월 따라 늙어간다. 사는 동안 참 많은 일들로 바쁘게 살았는데 추수 끝난 늦가을 같은 나이가 되었다. 무릎이 고장이 나서 걷는 것이 힘든 뒤부터는 평소 걷는 것의 반도 못 걷는다. 대신 수영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전에는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느니 수영을 하는 게 낫다고 큰소리치던 나였는데 수영도 좋지만 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체육관이 바로 집 앞에 있어서 남편과 둘이 아침마다  체육관에 걸어간다. 남편은 피트니스로 가고 나는 수영장에 가서 물속에서 운동을 하면 개운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오기는 귀찮지만 막상 나와서 몸을 풀면 하루종일 몸이 가볍다. 아무래도 물속에서 하는 운동이라 몸에 부담을 덜 주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지루하지 않아 좋다. 사람이 사는 동안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또한 필요하다. 취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퇴직을 한 뒤에는 내 안에 있던 취미들이 하나둘 나와 놀기 시작하며 삶의 재미를 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가 아니라서 부담도 없다. 머릿속에서 잠자는 이야기를 꺼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집중하고 잡념이 없어진다. 수영을 하고 숲 속을 걸으며 나는 나무가 되고 풀이되고 새가 된다. 자연과 함께 할 때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어진다. 흐르는 계곡을 따라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걸을 때가 참 좋다. 여행하는 계절이지만 가까운 숲으로 가면 어디 유명지로 여행 온 기분이 든다. 사람도 별로 없어 조용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숲 속의 요정이라도 되는 것 같다. 걷다 보니 나무로 엮어 좋은 집 한 가 보인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나무집을 지어 놓은 것이다. 여름에 벌들이 지어놓은 벌집이 보이고, 딱따구리 새가 나무를 찍어대는 소리도 들린다. 보이지 않는 숲 속에 사는 생물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재미있는 곳이다. 멀리 지 않아도 매일, 매 순간이 새로워서 여행 온 것 같아서 여행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오랜 시간 비행기에 앉아서 힘들게 갈 필요도 없고, 모르는 곳에 가서 우물쭈물하며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 없어 좋다. 아침에는 아침대로, 오후에는 오후대로, 숲이 말하고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걷는 이 순간은 숲과 하나가 된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도 다르고 좋아하는 취향도 다르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멋진 물건을 사며 행복해한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고, 잘하 못하 상관없자신이 좋은 것을 하며 즐거워하면 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해서도 아니다. 좋은 것을 하며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가 간다. 곱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을 춘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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