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본 것을 기억하는 초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주어렸을 때 빼고는 보았던 것은 오랫동안 기억한다. 인간의 눈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보고 살아간다. 눈을 감으면 눈의 기억력이 살아서 움직이며 영혼은 그 기억으로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간다. '눈에 선하다'는 말처럼 눈으로 찍은 세상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간다. 눈은 머리로 가슴으로 기억을 전하며 그리움과 슬픔을 따라다닌다. 생전 생각지 못한 사람이나 장소가 꿈에 나타나는 것은 언젠가의 기억으로 눈이 기억하며 찾아가는 것이다. 어제밤 꿈에 일 년 전에 돌아가신 형제님이 보였다. 작년 이맘때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평소에 생각지도 않은 그분이 나타나 예전처럼 친절하신 모습이 보여 마치 생시에 그분을 만나고 온 것처럼 생생한 꿈을 꾸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건강하고 명랑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분의 딸에게 전화를 해서 기일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3일 전이라 해서 깜짝 놀랐다.기일에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보니 아마도 그분이 천국에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지고, 무심한 세월이 말없이 왔다 가는 것처럼 오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헤어짐이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민생활 40년이 지나니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많은 분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게 된다. 한 살짜리 큰애와 우리가 지금 사는 도시로 이사 왔을 때는 둘째의 산달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인 우리는 한인성당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신자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얼굴엔 기미가 새까맣게 끼어있고 배는 남산만 해가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한 살짜리 아들을 쫓아다니며, 직업도 없이 두려움에 걱정만 하던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시던 분들이 기억난다. 빈털터리에게 무어라도 빼앗길까 봐 슬그머니 도망가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우리들의 초라한 행색을 보면 그럴 만도 했을 거라며 세월이 흐른 후에 나름대로 그들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차츰 조금씩 사람들을 알아가고 없는 사정을 아는 주위분들은 옛날 그분들이 처음 이민 와서 고생했던 생각이 난다며 시간 날 때마다 우리들을 초대하고 용기를 주셨다. 그중 한 분이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늘 친절하게 대해 주시고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며 친형제 같이 잘해주시던 그분 부부를 우리 둘째 유아 영세 때 대부모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둘째의 대부님 이였지만 우리 아이들 모두의 대부모님이고 우리에게는 형님이고 언니였다.
시골에서 사업을 하시며 틈나는 대로 시내에 오시면 우리가 운영하는 식당에 오셔서 그간의 소식을 서로 전하며 식사도 하시고, 맛있는 것이나 귀한 것이 있으면 틈틈이 챙겨주셨던 분들인데 3년 전 부인을 먼저 보내시고 지병으로 양로원에서 지내시다가 가셨다.나이 80도 채 안되신 분인데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셨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틈틈이 방문을 했다. 어느 날은 맑은 정신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세상 이야기를 하셔서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다. 슬하에 1남 2녀가 있지만 아이들 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다반사였다. 이야기를 좋아하시더니 편찮으시기 몇 년 전 에는 문학지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을 하신 후 여러 가지 재미있는 글을 써서 지역신문에 발표도 하시며 문학인으로써 활동도 많이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병마가 찾아와 몸이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하며 치매까지 오게 되었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몸이 건강하던 사람이 병마로 맥없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인간의 능력이 유한함을 느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위로하고 옆에서 힘이 되어 주셨던 분인데 부인이 급성 간암으로 2년 동안 고생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도 죄인가 봐요". 하시며 힘들어하시던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통곡을 했다. 인정도 많고 착하시기만 했던 분들인데 자매님도, 형제님도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이 정말 처참해 보였다. 정말 그분들처럼 열심히 산 사람들도 없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고통 속에 살다가야 했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러다 마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생긴다. 손가락 하나가 아파도 온몸 전신이 다 아픈 것 같은데 병에 걸려 손을 쓸 수 없을 때 얼마나 참혹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라색 라일락이 만발한 6월 하늘은 눈부시게 청명하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는 것은 슬프지만 이렇게나마 꿈으로 영혼이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꿈에 젊고 건강하던 옛날의 모습으로 보여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나도 둘째를 낳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떠나신 것은 서운하지만 더 이상의 아픔도, 고통도 없는 곳으로 가셨기에 좋은 날들과 아름다운 기억들만 생각하고, 힘들고 괴로웠던 날들일랑 지워 버려야 한다. 그리 넉넉하지 않았어도 웃음과 유머로 사시면서 힘겨운 주위분들에게 인정을 나누며 희망을 선사하며 살다가신 아름다운 삶... 생전에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 속에 열정적으로 살다 가신 형제자매님이 새삼 그리워지는 날이다.사람은 어려웠을 때 위로하고 도와주었던 이웃들을 늘 기억하며 산다.
그 고마움을 물질적으로 갚을 수는 없어도 늘 가슴속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때의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혹시라도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서 그 옛날의 고마움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음을 전함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흔하고 편하지만 옛날에는 걸레조차 귀하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청소를 다니고 철공장에 다니면서 악착같이 살기 위해 애쓰셨는데 퇴직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들었다.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시다가 돈이 모아지니 시외로 나가서 큰 가게를 운영하시며 돈도 벌고 자리도 잡았지만 가게가 바쁜 관계로 마음편히 놀지 못하셨다.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이제 살만하다는 생각을 할 때 형제분이 편찮으시니 자매님은 남편의 병시중을 들며 혼자 사업을 이끌어 가시느라 신경을 많이 쓰셨다. 결국에 자매님은 간암 판정을 받으시고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우리는 틈틈이 그분들을 방문 하였지만 자매님이 돌아가신 뒤 2년 만에 결국 형제님도 떠나셨다.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지만 고생만 죽도록 하며 살다가 병을 앓다 허무하게 떠나신 그분들이 가여워 목놓아 울며 보내던 날이 일 년이라는 시간이 가는 동안 산자들은 망자를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꿈에라도 만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웃고 만나니 너무 좋다. 삶과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만들지만 눈의 기억은 생사를 뛰어넘으며 만남을 지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