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준 선물... 유채김치가 익어간다

by Chong Sook Lee


유난히 추웠던 올봄 날씨다. 5월이면 텃밭에 모종을 심어야 여름에 야채를 먹을 수 있는데 5월 말이 되어도 추웠다. 모종은 그렇더라도 씨라도 뿌리면 땅 속에서 자랄 것 같아 유채 씨를 뿌리고 흙을 덮어 놓았다. 보름정도 지나니 손톱만 한 싹이 난다. 싹들이 서로 살아 보려고 있는 힘을 다해 자라난다. 날씨도 추운데 비가 온다고 걱정하는 사이에 몰라보게 자랐다. 그 사이 모종을 심고 정성을 들이는 동안 유채가 부쩍 자랐다. 더 놔두면 씨를 맺고 억세질 것 같아 뽑아서 김치를 담가 본다.


콩나물 뿌리처럼 가느다란 하얀 뿌리가 땅속에서 빠져나온다. 실 같은 뿌리로 이파리를 지탱하고 살아온 것이다. 유채로 김치를 담가 먹거나 살짝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어도 맛있다. 이번에는 유채로 물김치를 담가 먹고 싶다. 남편과 함께 유채를 하나하나 뽑아서 다듬고 깨끗하게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다. 소금에 절이면 한 줌밖에 안 되겠지만 그런대로 수북하여 먹음직하다. 유채를 절이고 찹쌀 풀을 쑤어 식히는 동안 양념을 준비하여 놓는다. 빨강, 노랑, 파란색 고추와 양파와 파와 부추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놓는다.


양념을 준비하는 동안 차게 식은 풀국에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고 섞어 맛을 본다. 김치는 싱거우면 금방 쉬기 때문에 짭짜름하게 간을 하는 사이에 유채가 알맞게 절여져 있다. 절이기 전에 깨끗이 씻었지만 풀냄새가 나지 않게 살살 조심해서 한번 더 물로 헹구어 건져 물을 뺀다. 이제는 김치통에 절여진 배추 한 줌을 넣고 양념을 붓고 배추를 넣고 양념을 붓는 작업을 한다. 큰 배추는 양념을 배추에 비벼야 색이 곱고 양념이 배지만 어린 유채는 잘못하면 풀냄새가 나고 질겨지기 때문에 아기 다루듯 한 다음 김치를 살짝 눌러서 국물에 잠기게 한 다음 뚜껑을 덮어 실온에 하루 놓아두면 된다.


파릇파릇한 김치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고슬고슬한 밥에 얹어 먹고, 고추장에 비벼 먹어도 좋고, 국수를 말아먹어도 좋은 유채 김치를 보며 맛있게 먹을 생각에 침이 고인다. 텃밭 생각으로 바쁜 봄은 기다리는 마음으로 맞는다. 해마다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다 보면 왔다가는 봄이 아쉽지만 봄이 가야 여름이 오는 걸 안다. 추워도 봄은 봄이기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심은 모종이 이제는 덩달아 잘 자란다. 고추가 꽃을 피우고 토마토는 꽃이 핀자리에 열매를 매달고 있다. 오이도 꽃이 피더니 어느새 기다란 오이를 매달고 나 좀 봐 달라고 한다.


뒤늦게 얻어온 상추도 싱싱하게 자라고 추워서 기를 펴지 못하던 깻잎도 기지개를 켜며 커간다. 기다림에 우리를 지치게 한 봄은 해마다 근사한 선물을 주고 가는 것을 보면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가신 부모님의 삶이 보인다. 오직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오롯이 삶을 바치고 살아가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여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봄이 있기에 여름이 있고 여름이 있기에 가을과 겨울이 있어 또다시 봄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변하고 세상도 변하지만 먹고사는 것은 같다.


여름이 유난히 짧은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유채김치가 맛있게 익어간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한다. 유채 씨를 뿌리니 유채가 자라서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물만 먹고 자란 무농약 채소라서 엄청 연하다. 어찌나 연한지 쌈으로 몇 장 먹어보니 입에서 살살 녹는 듯 고소한 맛이 입안에 넘친다. 유채는 열무나 갓과 같은 맛이 나고 손가락만큼 자라면 꽃이 피기 때문에 어린잎을 뽑아서 김치를 담그면 된다. 야채가 흔하지 않은 이곳에서 늦은 봄에 뿌리면 여름 한철 맛있게 먹는 야채 중의 하나로 매력 있는 식재료이다. 텃밭에서 자라나는 야채를 먹으며 여름을 보내고 나면 또 기다려야 하는 봄이지만 사는 동안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어제는 오늘을 기다린 것 같이 오늘은 또 내일을 기다리며 산다. 기다림이 실망을 가져다 줄지 언정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사는 재미가 없으면 무슨 맛으로 살겠는가? 유채 씨를 뿌리고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자라기를 기다리고 김치가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희망이 생긴다. 텃밭이 준 선물... 유채 김치가 맛있게 익어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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