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는 것은 사는 동안의 여행일 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것인데 왜 이토록 쌓아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방마다 서랍장과 옷장이 있다. 안방에 있는 서랍을 세어보니 화장대에 9개, 옷 넣는 서랍에 5개, 그리고 침대 밑에 12개의 서랍이 있다. 서랍에 넣어 정리하기 좋아 하나 둘 사다 보니 그렇게 서랍이 많다. 계절마다 종류마다 다르게 정리를 하니 사용하기는 좋지만 어떤 때는 굳이 이렇게까지 서랍에 쌓아 둘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빨래도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몇 가지 여유만 있으면 쌓아 놀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산다. 옷장에도 입지도 않으면서 고이고이 모셔서 걸어 놓고 쳐다만 본다. 앞으로 세상은 많이 변할 것이다. 파티도, 초대도 없는 영상 속의 만남이 되어간다. 벌써부터 졸업식이나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이나 교회 예배나 미사도 영상으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운동경기와 예술분야에서 하는 모든 것들은 무관객으로 전환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많은 옷도 필요가 없어진다. 해마다 성당에서 커다란 홀을 빌려 신자들의 화합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매번 같은 옷을 입고 파티에 갈 수 없어 몇 년에 한 번씩 산 드레스도 몇 개가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성당 신자들이 별로 협조가 안되어 운영진만 힘들어지니까 몇 년째 파티를 안 한다. 그러니 한 번밖에 안 입은 옷이라 버리기가 아까워 걸어놓고 있지만 그것도 애물단지다. 입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이 그것뿐이 아니니 정리를 해도 정리한 나만 알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것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만 치워 준다면 살기도 넓고 단순해질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안 한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못하게 될 때가 되기 전에 해야 할 텐데 버리고 정리를 할 때마다 이유가 있다.
걸어놓고, 집어넣고 하던 것들이 서랍과 옷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때로는 한 가지 찾기 위해 몇 개의 서랍을 열었다 닫아야 하는 때도 있다. 겨울이 길고 엄청 추운 이곳의 겨울을 넘기기 위하여 많은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밍크코트를 입었다. 한번 사면 평생 동안 추위를 막을 수 있어 엄청난 돈을 주고 너도 나도 장만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와서 옛날처럼 춥지도 않고, 동물 보호협회의 여러 가지 반론이 있고부터는 그것도 애물단지 가 되었다. 버리자니 들인 돈이 생각나지만 몇 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하며 입지도 않고 옷장만 차지하니 버려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생활에 버릴 것들 투성이다. 모든 것이 발달된 지금은 가볍고, 편하고, 예쁜 것들이 널려있다. 의류를 비롯하여 식기류의 발전으로 생활은 훨씬 좋아졌다. 무겁고, 두껍고, 육중한 멋이 아니고 센스 있고 기능성 있게 변한 시대다.
화사한 배추꽃이 해맑게 웃는다.(사진:이종숙)
세월이 가면 사람만 늙는 게 아니고 옷도, 그릇도 다 늙는다는 말처럼 세상도 낡고, 늙으며 세월 따라 새롭게 태어난다. 옛날 것을 고집하며 보존하고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것을 받아들임 또한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무시하던 시대는 갔다. 간단하고 깔끔하게 사는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양말이고 스카프고 서랍에 채워놓고 살 이유가 없다. 여름에 입을 옷을 꺼내며 오랫 만에 서랍을 뒤져보니 신지도, 입지도 않은 물건들이 많다. 물론 앞으로 살려면 여유가 있는 것도 필요하지만 몇십 년, 몇 백 년 살 것도 아니니 대충 정리를 해야 한다. 세월이 가면 또 다른 새물건이 나오고, 있던 것은 구식이 되어 새것이라도 못쓸 상황이 될 것이다.
옷장에서 입어주기를 기다리는 옷들에게도 미안하고,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않고 걸어두는 것도 일종의 낭비라서 틈틈이 자선단체에 가져다주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 나온다. 이번 기회에 큰 맘먹고 대청소를 해야 할 것 같다. 지난주 애들이 밖을 청소하며 나온 쓰레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해마다, 철마다 청소하고 정리를 하며 버렸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용기란 사는데도 필요하지만 버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버리지 않고 정리한다고 옮겨놓기만 하면 여전히 쓰레기를 안고 사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모든 것이 집 앞에 배달되는 세상에 물건을 쌓아놓고 사는 것은 난센스다. 오늘 입지 않은 것은 앞으로도 안 입거나 몇 번밖에 안 입을 것들이다. 미련 없이 버리자. 몇 번 안 입어 아깝다고, 새것이라고 미련을 갖지 말자.
신식도 기호에 맞지 않으면 싫다고 하는데 헌 것이나 오래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만든 쓰레기는 내가 치워야 한 다. 결국에 나의 쓰레기를 아이들이 치워야 하지만 웬만한 것들은 미리미리 치우면 그나마 깔끔하게 살다 갔다는 기억은 할 것이다. 이때나 저때나 쓴다고 모아 둔 것들이 이곳저곳 자리만 차지하고 결국엔 유통 날짜도 지나고 유행도 지난다. 세월이 가니 금보다 현금을 좋아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 세탁도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입고, 신다가 더러워지면 버리고 새 걸 사는 시대가 이미 와있다. 마르고 닳도록 쓰던 시대는 역사에만 남아 있을 뿐 사라진 지 오래다. 푸드 뱅크에 보내는 음식이나 물건도 이름 있는 고급이 아니면 안 가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나름대로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쓰레기 대란이 오는 날이 머지않았다는데 일찌감치 치울 것 치우며 간소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에 애착하지 않는 연습을 하며 욕심도 쓰레기에 함께 내다 버리자. 옷장만이 아니고 화장실마다 싱크대 밑에 물건을 넣어두는 널찍한 공간이 하나 씩 있다. 별별 오만가지가 들어가 있지만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꽉꽉 쟁여놓고 산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나 자신도 놀라는데 아이들이나 누가 볼까 무섭다. 오늘 당장은 못하더라도 생각이 반이니 하루빨리 실천해야겠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지금 시작해도 끝나지 않을 청소이니 하루가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