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ng Sook Lee Jul 03. 2020

바깥 식구들의 안부 전합니다


하늘이 아직도 비를 안고 있다.(사진:이종숙)




비가 온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계속 내린다. 잠깐이 라도 동네를 돌며 바람 좀 쐬고 싶은데 틈을 안 준다. 도대체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비가 있길래 이토록 내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밖을 내다본다. 우리 집을 둘러싸고 밖에 서있는 나무들이 흠뻑 젖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등 굽은 소나무가 비를 흠뻑 맞고 솔방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잔디를 적신다. 그런데 아까부터 나뭇가지에 새끼 까마귀 한 마리가 꼼짝 않고 죽은 듯 가만히 앉아 있다. 아직 어려서 잘 날지 못하고 비에 흠뻑 젖은 채 나무에서 앉아있고 엄마 까마귀는 전봇대에 앉아서 잔소리를 한다. 비에 젖은 새끼 까마귀가 걱정이 되는지 계속 뭐라고 짖어대고, 간간히 가까이에 날아와서 보고 간다. 까마귀의 모정도 남다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끼 까마귀는 가만히 앉아서 졸고 있다. 비 오는 날은 어디 걸을 수가 없으니 이렇게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세상을 구경한다.


집안에서는 남편과 나만이 살고 있지만 집 밖에서 우리를 지켜주며 살아가는 바깥 식구들이 많이 있다. 오랜만에 우리 바깥 식구들 안부나 전해야겠다. 날씨가 좋은 날은 가까이 가서 이파리도 만져보고 나뭇가지도 보듬으며 이야기하지만 오늘은 그냥 쳐다본다. 창문 옆에서 바람을 막아주며 햇빛도 가려주는 밥풀꽃 나무는 참새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다. 참새들은 일 년 내내 그 나무 안에서 살림을 한다. 사랑하고, 싸우고, 쫓아다니고  장난하며, 재미있게 살아간다. 추위를 피하고, 더위를 피하며, 가지를 오르내리며 수다를 떨고, 낮잠을 잔다. 커다란 새들을 피해 숨고, 자주 방문하는 토끼 아저씨와 숨바꼭질을 하며 논다. 옆에 서 있는 전나무에 놀러 가서 까치도 만나고 어쩌다 찾아오는 로빈이나 블루제이 하고도 사이좋게 논다. 그 옆에 오래된 전나무가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병이 들어 커다란 나무가 여기저기 아파하며 죽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하늘을 찌를 듯이 꼿꼿하게 서 있지만 죽은 가지를 이제는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채 버티고 있다. 머지않아 수명을 다할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그 옆에 땅바닥에 엎드려서 얌전을 떠는 앉은뱅이 소나무는 나무 아래에 둥굴레와 어성초를 기르느라 바쁘다. 아침저녁으로 햇볕을 나누고, 더운 한낮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비바람도 막아주고 빗물도 조금씩 떨어뜨려 목마를 때 목을 축여준다. 정성을 들여 키워 하얀 꽃이 피면 행복해서 커다란 팔을 벌려 안아 준다. 집 앞의 자작나무는 나날이 늙어가지만 어디 아픈데 없이 하루하루 잘 넘어간다. 병들고 죽은 나뭇가지가 몇 개 있어 남편이 몇 년 전에 가지 치기를 해 주었더니 올해는 꽃도 피고, 아파리도 무성하게 제 할 일을 하며 살아 다행이다. 나무가 힘들어하면 안타까운데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어 정말 고맙다.



원추리꽃이 활짝 피었다. *사진:이종숙)



늙은 소나무 가지에는 아직도 새끼 까마귀가 앉아 있는데 어디를 다쳤는지 여전히 꼼짝 않는다. 그 옆에 서있는 개나리 나무는 지난달까지 말라비틀어져 죽은 듯 서 있어서 남편이 열심히 물을 주었더니 꽃 몇 개 피고 이파리만 무성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어  다행이다. 이사온지 몇 년 안되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목이 말랐는지 매일 남편이 주는 물을 마시고 지금은 정정하다. 그 옆에 뒤뜰로 들어가면 라일락 나무는 꽃이 하나둘 지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고별을 하고 떠나 외롭게 서 있다. 그래도 맞은편에 있는 장미와 원추리의  얼굴을 보며 외로움을 이겨 내는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장미가 시원 찮은  느낌이 든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벌레가 먹어 이파리가 구멍이 생기고 꽃도 잘 못 핀다. 예년 같으면 벽에 빨간 물이 들 정도로 많은 꽃이 피었는데 꽃도 별로 없고 비실비실 한다.


약이라도 뿌려주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다. 그나마 여름도 얼마 안 남았으니  내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옆에 서있는 사과나무 두 그루는 여전히 사이좋게 잘 자라고 있다. 더 커다란 사과를 매달라고 신경을 써서 꽃을 피우며 벌도 많이 초대해서 사과가 작은 자두만큼 자랐는데 아직은 파랗지만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먹을 생각으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옆에 의젓하게 서있는 마가목 나무는 올해는 유난히 꽃이 많아 나무 아래서 그네를 타고 있으면 머리에도, 옷에도 하얗게 꽃으로 예쁜 옷을 입혀 주었다. 아마도 그 많은 꽃이 열매가 되어 한 겨울에 빨간 열매를 달고 예쁘게 눈을 맞으며 서 있을 것이다. 그 옆에 하얀 꽃을 피고 까만 열매를 맺는  밥풀꽃 나무도 잘 자란다. 가지가 이리저리 마구 자라도 그늘이 좋아 그냥 놔두었는 데 지난번 애들이 담을 페인트 할 때 가지 몇 개를 잘라주었더니 왠지 휑하다.



앵두가 많이 열렸다.(사진:이종숙)



그래도 길가를 가려 주고, 마가목 나무에 바짝 붙어서 새들을 맞는 모습이 귀엽다. 앵두나무 하나는 뒷문 입구 계단 옆에서 엄청나게 많은 앵두를 가지마다 무겁게 달고 서있다. 조금 있으면 앵두가 빨갛게 익어 나의 손과 입을 바쁘게 할 것이다. 새콤달콤한 맛으로 나의 윙크도 많이 받으며 애교를 떨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차고 뒤에 있는 앵두나무는 참새들의 보금자리다. 참새들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장난치면서 나무를 오르내리고 신나는 수다로 아침저녁 시끌시끌하다. 그 옆에는 산딸기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해마다 딸기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해는 딸기가 많이 달려서 산딸기 술을 담가서 마셔보니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많은 나무가 우리를 지켜주고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나무도 작았는데 아이들이 자라니 세월 따라 나무들도 늙어가 허리도 휘고, 등도 굽었다. 부엌 창문으로 뒤뜰을 보니 까치 두 마리가 담에 앉아 낮잠을 자고 있는데 다른 까치 한 마리가 와서 방해를 하는지 성질을 내며 털을 바짝 세우며 쫓아간다.


다시 돌아와 뒤뜰을 천천히 걸어 다닌다. 까치도 엄청 텃새를 하며 제 구역을 지키는 모습이 사람과 다르지 않다. 비 오는 아침 하릴없이 빈둥대며 창밖을 내다보는 재미도 괜찮다. 바깥 식구들이 많은 이곳에 이사 온 뒤부터는 굳이 공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해마다 철 따라 옷을 갈아입고 벗으며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들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파란 잎으로 봄을 알리고, 여름에 꽃과 열매를 보여준다. 가을엔 울긋불긋 아름답게 치장하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흰 눈이 쌓여있는 겨울에도  바깥 식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함께한 세월이 오래되어 이제는 떠나려야 떠날 수 없이 정이 들었다. 집도, 우리도, 나이가 들어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어느 날 더 이상 바깥일을 하지 못하면 떠나겠지만 아직은 괜찮다. 바깥일이 힘들면 천천히 하면 된다.


조금씩 나눠서 하면 된다. 이제 천천히 하는 것이 조금씩 몸에 배어가고 마음도 느긋해져 간다. 몸이 다 알아서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팔팔하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날에 부모님이  무엇을 하실 때 천천히 하셔서 답답했는데 나도 그렇게 되어간다. 서두를 것 없이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 아프지 않고 사는 것이 최고다. 한평생 급하게 뛰어왔는데 놀면서 편하게 살아도 하나도 미안할 것 없다. 퇴직 후 몇 달을 아무 일도 안 하고 노는 것이 이상했는데 지금은 많이 뻔뻔해졌다. 오히려 나이 들어 늦게 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소풍 나와 놀지도 못하고 가면 재미가 없잖은가? 남은 여생 신나게 놀다가 간이 되면 집에 가리라. 비 온 덕분에 바깥 식구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저녁때가 되어간다. 이제 이만큼 왔으니 비가 그쳤으면 좋으련만 그것 또한 내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욕심내지 말자.



그래도 최선을 다해 피는 장미(사진:이종숙)
작가의 이전글 길을 잃고 길을 찾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