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다고, 재밌었다고 말하며... 집을 향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그냥 나왔다. 남편과 유채꽃구경을 하려고 무작정 나왔다. 그날이 그날 같은 생활이라 잠깐 바람을 쐬면서 들판을 구경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남편도 흔쾌히 찬성을 한다. 파란 하늘과 푸르른 들판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계절이 바뀔 때 아니면 심심한 날 남편과 나는 곧잘 운전을 하고 교외로 나간다. 시내에서 복잡한 차들을 피해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고 호수는 파랗다 못해 검푸르고 맑다.



(사진:이종숙)



고속도로 길 가에 노란 들꽃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들판은 참으로 평화롭다. 노란 유채꽃이 눈에 노랑물을 들일 듯이 들판을 덮고 예쁜 자태를 자랑하고 피어있다. 이곳은 산이 없고 평야가 많다. 록키산을 가려면 여기서 차로 4시간 정도 차로 가야 산구경을 할 수 있다.



(사진:이종숙)



그곳에 가는 것도 좋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가까운 교외로 나오는 것도 나름 기분전환이 된다. 화물을 나르는 기차가 지나간다. 백여 칸이 넘는 기차는 끝이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어지럽다. 다행히 기차가 다른 길로 가기에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없어 우리 갈길을 간다. 사방에 유채꽃이 만발해 보기 좋은데 내려서 사진 찍을만한 곳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사진:이종숙)


옛날 식당 건물이 서 있다. 아마도 백 년은 넘은 듯이 초라하고 허술한데 아무도 없다. 아마도 코로나 19로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는지 쓸쓸해 보인다. 커다란 곡식 창고가 여러 개가 있는 농가를 지나간다. 꽤나 돈이 많은 부자인가 보다. 무슨 회사인지 몇 개의 건물을 돌아가며 담이 삥 둘러 싸이고 문까지 닫혀있다. 여러 번 지나치면서 보았을 텐데 볼 때마다 새삼스레 멋있다. 아마도 인간의 눈은 계절에 따라, 생각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지나 보다.



(서진:이종숙)


그냥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유채밭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창조주는 땅 위에 그림을 그리며 계절마다 행복할 것이다. 들꽃은 들꽃대로, 잡풀은 잡풀대로 한 해를 충실히 산다. 군데군데 집들이 보이고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세상 걱정 근심이 다 없어진다. 사람들은 특별한 걱정은 없어도 마음은 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산다.



(사진:이종숙)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걱정인 우리네 인생에 걱정조차 없다면 또한 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노란 유채밭을 보며 가는 길은 한가하다. 토요일 오전인데 고속도로는 오가는 차가 없어 참 조용하다. 시내가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닐 수 있는 데 아직도 코로나 19의 여파로 외출을 절제하는 것이 느껴진다. 주말에는 주유소나 식당을 찾은 사람도 많았는데 몇 개의 차들이 주차장에 쓸쓸히 서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도 얼마 보이지 않는다.



(사진:이종숙)



나무가 가득한 마을을 지나가니 예쁜 교회건물이 보인다. 교인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 마을인데 교회는 제법 크게 보인다. 마을이 생기면 제일 먼저 교회와 학교가 생기듯이 꽤나 오래된 교회일 것이다. 사람이 살고, 배우며, 마음을 의지하는 종교를 갖고 신앙을 키워나가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하는 마음 또한 신앙과 종교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진다. 화창한 날보다 구름 낀 날이 운전하기엔 훨씬 좋다. 숲 속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을 지나간다.



(사진:이종숙)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동네나 고속도로나 사람들이 나와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기름을 유출하는 기계가 들판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기름으로 먹고사는 이곳인데 기름값이 곤두박질을 친다. 아무리 싸도 살 사람이 없어 돈을 얹혀 주며 파는 현상까지 갔다가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불경기가 계속되고 일할 곳은 없고 전염병은 아직도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그래도 들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름을 자랑하며 제 할 일을 한다. 이렇게 한 번씩 나와서 바람을 쐬고 가면 무언가 치유가 되는지 마음이 평화롭다. 이길로 쭈욱 가면 어디가 될까?



(사진:이종숙)


수많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그곳은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연결된다. 멀리 사는 딸이 갑자기 더 보고 싶다. 이대로 그냥 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오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아무런 할 일도 없고 가야 할 곳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지만 쉽게 떠나지 못하고 산다. 떠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전염병이 발목을 잡는다. 고속도로 근처에 있는 화장실도 거의 닫혀있는 지금 상황에 길을 떠나 멀리 가기는 어렵고 다음을 기약한다.



(사진:이종숙)


한없이 이어진 들판을 바라보며 머지않아 추수할 시기도 다가오면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없어지고 텅 빈 들판만이 쓸쓸하게 남게 될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부터 허전하다.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때가 되면 없어진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머물기를 꿈꾼다. 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간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비가 많이 올 듯 구름이 자꾸 모여들어 하늘을 덮는다. 노란 유채꽃에 반해서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면서 못 보았던 것들을 보며 간다. 당분간 이 길을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눈 안에 소중한 기억을 실컷 많이 담아가자. 이 길은 이미 추억이 되어간다.



(사진:이종숙)


라디오에서 몇십 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이가 들어도 남편과 나는 노래가 유행하던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명동과 광화문을 걷는다. 을지로와 충무로를 걷고 즐겨가던 다방을 이야기한다. 인생과 철학을 논하고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던 시절로 돌아간다. 노인이 되어도 마음만은 청춘이라며 깔깔대며 노래에 맞추어 어깨춤을 춘다. 한 방울, 두 방울 유리창에 비가 떨어진다. 우연히 나선 나들이를 끝내고 돌아가는 마음이 가볍다. 내가 떠나는 날도 이런 마음 이리라.


잘살았다고,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집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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