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이 생기고 잎과 줄기가 생기며 땅을 덮고 자라더니 노란 꽃을 피운다 종같이 생긴 꽃이 앞을 다투며 많이 핀다 수꽃이라 호박은 달리지 않아도 신기해서 자꾸 본다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 했던가 이리도 고운 꽃을 감히 그리 말할 수 있던가 저녁에는 수줍은 듯 오므리고 아침에는 해맑게 피어나는 노란색의 호박꽃 장미보다 못한 것 없고 목단보다 못하지 않다.
(사진:이종숙)
자세히 보니 호박꽃이 여간 예쁜 것이 아니다. 화사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노란색이다. 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호박꽃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행복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벌이 들락거리고 나비도 쉬었다 간다. 무슨 맛이 있을까 냄새를 맡아보니 달콤하기까지 하다. 꽃만 예쁜 게 아니고 냄새도 좋다. 지난번 호박꽃이 사과나무 아래에
나란히 두 개가 할짝 피었다.
다음날 나가보니 꽃이 없어졌다. 분명히 내가 보았는데 그 꽃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참 이상도 하지 내가 헛것을 본 것은 아닌데 꽃이 없어지다니 하며 자세히 근방을 살펴보니 달팽이란 놈이 와서 꽃을 먹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달팽이가 많이 생겨서 상추를 뜯어먹었는데 이놈들이 호박꽃까지 건들다니 괘씸하다. 노란 꽃이 예뻐서 그 맛있다는 호박꽃 튀김도 안 해 먹었는데 밤새 그놈들이 다 뜯어먹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러다 가는 달팽이가 무슨 일을 할지 모르니까 땅에 뻗어 가는 호박 줄기를 올라가게 사과나무 가지에 걸쳐 놓았다. 이젠 호박이 달팽이한테 뜯겨 먹히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집집마다 달팽이가 채소를 망쳤다고 속상해한다. 커피가루를 물에 섞어 뿌리면 좋다는 소리도 하고 달걀 껍데기를 으깨서 밭에 뿌려 주면 괜찮다고 하길래 그렇게 했는데 죽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사진:이종숙)
며칠 전에 어디서 씨가 날아와서 자라기 시작했는지 은행나무가 사과나무 아래서 손가락만큼 자라는 것이 보였다. 남편과 나는 은행나무가 왔다며 좋아했는데 며칠 뒤에 은행나무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잘못 봤나 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생각해보니 그것도 달팽이 짓이 분명했다. 호박꽃도, 상추도 먹는 놈이니 은행나무라고 안 먹을 리가 없다. 정말 괘씸하고 속이 상했다. 이곳에는 은행나무가 없는데 기후가 바뀌어서 왔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 연약한 것을 그놈의 달팽이가 홀딱 먹어 치운 것을 생각하니 약이 오른다. 그렇다고 그 많은 달팽이를 다 죽일 수도 없고 골치 덩어리다. 지인 말로는 마늘밭에는 달팽이가 없다고 하니 내년에는 마늘이나 심어봐야겠다. 달팽이가 봄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는데 여름에 비가 너무 많이 오며 더 많이 생겼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보기가 징그럽다. 그것도 산 생명이니 살려고 이것저것 먹는 것이지만 꾸물거리며 채소를 해치는 것은 정말 싫다. 달팽이를 생각하면 하루빨리 기온이 내려가길 바라다가도 호박이나 고추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여름이 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