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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Sep 24. 2020

가을을 만나고... 가슴 가득 가을을 안고 왔다


(사진:이종숙)




야생동물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어본다. 산짐승이 어디선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올 것 같다. 겨우 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숲 속의 오솔길을 걷는데 어느새 낙엽이 많이 떨어져 길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길을 따라 걸어 본다. 산책길에서 보던 것과는 딴판이다. 나무들이 이파리를 다 떨구고 나목으로 서있거나 꼭대기 몇 잎만 바람에 흔들린다. 그나마 키 작은 나무들은 단풍잎을 달고 맵시를 자랑한다.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샛노란 단풍과 파란 하늘은 완벽한 조합이다. 오늘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노랗고 빨간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숲 속의 길을 따라 앞으로 간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길가에 누워있는 나무들을 본다. 수십 년 동안 산을 지키다 넘어진지도 오래된 굵은 나무 들이다. 길가는 사람들의 의자가 되어 쉬었다 가기도 하고, 계단이 되어 오르내린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 마리의 야생동물이 되어 걸으며 계곡 옆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물 위에 하늘이 내려앉아 쉬고 있다. 물에 비친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계곡의 물이 소곤대며 흘러간다. 여름이 떠난 자리에 계곡물도 조용히 수다를 떤다. 어느새 가을이 왔는지 숲 속은 낙엽으로 덮였다. 삼거리를 지나며 어느 길이 가는 길인지 고심하며 길을 따라 걷는다. 숲이 깊어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기에 조심조심 걷는다. 보너스 같은 좋은 날씨에 집에 있을 수 없다. 어차피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야생동물이 되어 숲 속을 뒤지는 것도 재밌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볕이 쏟아진다. 단풍잎이 떨어지며 어깨를 툭 치며 아는 체한다. 모자 위에도 떨어지고 발 앞에도 떨어지며  장난을 친다. 개구쟁이들이 있어 숲 속을 걷는데 심심치 않다. 한없이 걸어간다. 편하게 닦아놓은 산책길에서 가질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신이 없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봄나물을 뜯던 추억이 새롭다. 나물만 보고 산골짜기를 헤매며 해지는 줄도 몰랐던 봄이었다. 여름에는 모기들이 자기들 구역을 침범한다고 떼로 몰려드는 바람에 숲 속으로 들어갈 꿈도 못 꾸었다. 멀리 취나물이 보여도 모기들 극성에 도저히 숲 속의 오솔길을 걷지 못했는데 오늘은 완벽하다. 모기도 없고 이런저런 벌레도 없으니 걷기가 좋다. 얼마 가지 않아 이 아름다운 숲 속은 하얀 눈으로 덮일 것이다. 낙엽 밟는 소리에 다람쥐가 놀래서 나무로 올라가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찍으려면 찍으라고 꼼짝 않고 있다. 계속 오솔길을 걷는다.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이다.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며 흐르는 계곡물을 보는 것만도 행복하다. 멀리 여행을 갈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더 이상 좋은 곳이 없다.






멀리 모르는 곳으로 가는 여행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조촐한 숲은 아무 때나 올 수 있어 좋다. 오늘 못 오면 내일 와도 되고 걷다가 비가 오면 집으로 바로 가면 되기에 좋다. 아이들 모두 살기 바빠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잘살아야 한다. 먼 곳에 여행을 못 간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차피 인생은 여행인데 아침에 일어나 하루하루 여행 온 듯 살면 된다. 여행을 가도 먹고 자고 구경하며 사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먹고 자고 구경을 다니면 그것이 여행이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도 좋다. 남편과 함께 집 가까이에 있는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한국도 가고, 먼저 떠난 부모 형제들과 만나고,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걷는다.


코로나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여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슬프지만 우울해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렇게 하루하루 세월이 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안 되는 것을 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코로나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언젠가 는 극복의 날도 올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더 무서운 일이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다 생각하면 고통이고  다행이다 생각하면 감사하다. 청결하게 하고 거리를 두며 조심하면 되는 코로나이지만 더 험악한 세균이 아니었기에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나무들이 살고 죽으면서 이 거대한 숲을 이룬다. 그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 없이 어쩌면 이리도 다 다른지 모른다. 색도, 모양도, 크기도, 다 다르다. 일찍 오는 것이 있고 오래도록 버티는 것이 있다.



(사진:이종숙)



알 수 없는 풀과 나무들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생물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동물들도 그들의 길을 걷는다. 서로가 서로를  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그들도 밥그릇이 중요해 먹고 먹히지만 인간의 세계처럼 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끝없는 욕심으로 싸우는데 그들은 배가 부르면 만족한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봄에 걷던 길이 보인다. 겨울의 끝 같던 봄이 여름의 옷을 입고 가을을 맞아 울긋불긋 예쁘게 치장을 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 계곡의 물이 졸졸졸 흘러가고 세상은 온통 총천연색이다. 누가 색을 칠한 것도 아닌데 계절 따라 멋진 그림이 그려진다. 창조주는 훌륭한 화가이다.  물감도 필요 없고, 종이도 필요 없이 세상을 돌아가며 멋지게 그린다. 길을 따라, 세월 따라 걸어온 남편과 나의 얼굴과 머리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얼굴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웃음을 그리며 살아보자. 오솔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길인 듯 하지만 다른 길이고 오르다 보면 평지가 있어 숨을 고른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숲 안에 다 있다. 힘들어 쉬고 싶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평지가 지루 할 때쯤엔 오르막 길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한참을 걸어도 멀리 가지 못한다. 야생동물이 만들어 놓은 길이기에 그들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길이 없는듯해도 돌아서면 또 다른 길로 연결되어 있다. 오르고 내려가고 를 반복하다 보니 오솔길의 끝이 보인다. 숲을 벗어나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가을이 부르는 소리에 가을을 만나고 가을을 가슴 하나 가득 안고 집을 향한다.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나날 속에 우리를 찾아온 행복을 만날 수 있다.


하늘이 파랗게 웃으며 우리를 반기고 나를 찾아온 오늘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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