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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07. 2020

해마다 맞고 보내는... 가을이 떠나고 있다


(그림:이종숙)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집 앞의 백양나무가 노랗게 단풍이 들더니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 둘 땅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집집마다 낙엽을 쓸며 겨울을 준비한다. 몇 달 전에 복덕방에 내놓은 몇 집 건너 이웃집이 팔리고 새 주인이 이사를 오는지 골목길에 큰 트럭이 길을 막고 서 있다. 30년 동안 살던 사람은 재주가 좋아 많은 것을 고치고 손을 봐서 새로 이사 온 사람은 여러 가지로 편리할 것이다. 동네 집값이 우리가 우리 집을 샀을 때보다 4배가 올랐다. 코로나로, 불경기로 집을 사기도, 팔기도 힘들 텐데 산 사람이나 판 사람이나 서로 잘됐다. 31년 전  우리 집을 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많은 세월이 갔다. 집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우리 집을 샀던 때가 생각난다. 한번 보고 안 사겠다고 나갔던 집인데 두 번째 와서 집을 사고 31년을 넘게 살게 될 줄 몰랐다.


서른 한번째의 가을을 맞고 보내며 올해의 가을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오래 사는 동안 살기 싫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살아갈수록 좋아 지금은 세상 어느 집보다 좋다. 집의 나이는 46살이지만 그때만 해도 견고하게 집을 짓던 시대라 요즘 새로 짓는 집보다 훨씬 잘 지어졌다고 한다. 요즘에 짓는 집은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지만 바닥에 널따란 합판을 깔고, 그 옛날에는 쪽마루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깔아서 더 튼튼하다고  한다. 그때는 인구도 별로 없어 집값도 싸고 튼튼하고 큰집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지금은 인구도 많아지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집값이 많이 올랐다. 작은 집도 가격이 비싸 이사를 할 엄두도 못 낸다. 요즘엔 화려하고 예쁘게 집을 지어 보기에 좋지만 막상 살아보면 비좁아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는 말들을 한다.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아이들 없이 부부 둘만 사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라서 집 크기가 작아졌다.


우리는 앞뜰도 넓고 뒤뜰도 넓어서 사람들이 놀려 와서 넓어서 좋다고 놀란다. 코너 집이라서 옆에 뜰이 넓어 숲 속의 별장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앞에 커다란 소나무가 집을 감싸듯이 서있고 집 둘레에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자란다. 아이들이 잘 크고 식구들이 무병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항상 고맙다. 보통 2층 집은 계단이 가파르고 계단이 많은데 비해 우리 집은 4층으로 되어있어 계단도 가파르지 않다. 나이가 들면 단층짜리 집을 선호하는데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운동삼아 좋다. 위아래층에 커다란 마루가 각각 한개씩 있어 웬만큼 많은 사람들이 와도 복잡하지 않다. 방도 4 개가 있고, 화장실도 3개가 있고, 지하실도 있어서  세 아이들이 전부 와서 생활해도 불편하지도, 복잡하지 않다. 여름에 10명이 함께 5주 동안 생활하는데도 넓은 곳에서 잘 있다가 갔다.



(그림:이종숙)



계절이 바뀌듯이 집도 새주인을 만나고 옛날주인과 헤어진다. 이사 가고 이사오며 주인이 바뀌고 이웃도 바뀐다. 먼젓번에 옆집에 살던 사람은 생전 고치지 않고 살다 이사를 갔는데 이번에 온 사람은 이것저것 잘 고친다. 지붕도 새로 하더니 집을 페인트 하고 지금은 담을 고치느라 바쁘다. 너무 안 고쳐서 신경 쓰게 하거니 너무 고쳐서 신경 쓰게 한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니 내 맘 같지 않겠지만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아무쪼록 이웃끼리 사이가 좋아 서로 불편하지 않게 살기를 바란다.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고 비가 오며 바람이 불어오니 마음이 스산하다. 봄은 오기 전부터 희망이 생기는데 가을은 아무리 날씨가 화창해도 왠지 쓸쓸하다. 해도 짧고 빨리 어두워 사람들의 활동량이 줄어드니 동네는 조용한 산속 같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어려서 동네가 시끌시끌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이들은 다들 떠나고 노인들만 집을 지키며 사는 집이 많다.


집을 가지고 있으면 안팎으로 보수를 해주고 단장을 해야 하는데 남편이 해마다 조금씩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조금씩 겁이 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집에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집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니 건강하고 행복하다. 집이란 그저 편하면 된다. 좋은 집도, 비싼 집도 무리를 하면 건강을 상하는 법이다. 남들이 큰집 사서 이사 가고 예쁘게 차려놓고 사는 것을 보면 나도 이사 가고 싶던 시절이 있었는데 딴 집을 보고 오면 작은집이지만 우리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망설이다 주저 않고 살아왔는데 잘한 것 같다. 살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며 살지만 그래도 잘한 것이 있다면 이 집을 산 것이다. 사람도, 물건도 세월 따라 변하지만 이 집은 언제나 편하고 좋다. 등 굽은 소나무가 우리를 지켜주고 마가목 나무는 빨간 열매를 매달고 가을을 맞는다.


겨울에 새들이 얼마나 먹을지 모르지만 올해는 열매가 엄청나게 열렸다. 조촐하게 욕심 없이 살아가면 그것이 행복이 아닌가 한다. 어깨에 진 짐이 무거워 힘들었던 날도 있었지만 세월 따라 어깨의 짐도 가벼워지고  어느 날 새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날이 오면 그저 부담 없이 미련 없이 날아가면 된다. 그날까지 이곳을 지키며 해마다 피어나는 꽃과 열매를 만나며 살면 된다. 올 한 해가 어찌 지났는지 모르게 빨리 갔다. 코로나로 만남도 외출도 없이 무엇하며 살았는지 기억도 희미하지만 집 안팎을 돌아보며 가을이 가는 뜰을 바라본다. 비는 멈추고 하늘은 햇볕을 비추며 얼굴을 내민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낙엽은 여기저기 머물 곳을 찾아 헤매고 바람 따라 춤을 춘다. 해마다 맞고 보내는 가을이 떠나고 있다.



(그림: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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