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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21. 2020

가을이 가듯... 코로나도 아주 가버렸으면 좋겠다


올해 농사진 사과 (사진:이종숙)




가을이 간다. 겨울이 온다. 먼지 같은 눈이 내린다. 오고 싶지 않은데 할 수 없이 오는 것처럼 천천다. 땅에 떨어지며 녹아서 눈이 온 것 같지 않지만 겨울의 모습은 역력하다. 겨울이 그냥 가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이 다. 한번 오면 쉽사리 가지 않는 끈질긴 손님인 겨울이라 오기 전부터 손사래를 쳐도 기어이 온다.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겨울이 싫다고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밀어버릴 수도 없다. 기왕 왔으니 얌전히 있다 갔으면 하는데 모른다. 겨울이 얌전해봤자 여전히 춥지만 눈이라도 조금 왔으면 좋을 텐데 그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도 10월 중순에 눈이 많이 왔는데 올해도 벌써 여기저기 눈이 왔다고 하는데 올해는 어떤 겨울이 될지 모르겠다. 나무들이 옷을 벗고 겨울을 맞으며 서있다. 나무들도 춥겠지만 벗은 채로 추운 겨울을 견디며 살아간다.


한번 온 겨울은 떠나려 하지 않고 5월 말까지 웅크리고 있다가 폭설을 한번 더 뿌리고 간다. 봄을 기다리다 지쳐 봄이라 생각하고 모종을 심으면 용케 알고 눈이 내린다. 몇 달 안 되는 봄 여름에 채소를 길러 먹으려고 부지런을 피면 으레 눈이 와서 얼려 죽이는 일생겨서 유혹을 뿌리치며 기다린다. 가라는 겨울은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오라는 봄은 오려하지 않는 봄은 봄 같지 않게 왔다 가고 여름이 온다. 그나마 여름에는 뜨겁고 더운 날이 있어 야채도 자라고 나름대로 여름의 할 일을 한다. 더운 날 덥기도 하지만 금방 가버릴 여름이기에 추운 겨울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참고 지내다 보면 8월 중순부터 서서히 추워지면서 나무에 단풍도 들고 가을이 시작된다. 한창 여름인데 8월 중순에 가을이 오고 있는 모습을 보며 9월을 맞는다.


이제 아름다운 가을이 오려나 하면 난데없이 눈이 와서 예쁜 색의 단풍은 꽁꽁 얼고 겨울이 시작되는데 올해는 다행히 가을이 버티고 있어 제대로 된 가을을 보냈다. 나무들이 단풍을 다 떨어뜨린 이곳에 이제 겨울이 와도 할 말은 없지만 막상 눈이 온다니 싫어도 겨울을 맞이 해야 할 것 같다. 어제 기상예보를 들으니 영하로 떨어진다 한다. 이제 겨울준비를 거의 끝내고 나머지 할 일은 사과를 추수하는 일만 남았었다. 뒤뜰에 사과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그중 하나는 조생종으로 8월 말이면 다 떨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만생종으로 10 월말이나 11월 초에 날씨가 추워져서 서리가 오고 눈이 내려야만 신맛이 없어지고 달게 되는 사과다. 다른 나무들은 단풍 든 이파리를 다 떨어 뜨리고 있는데 만생종 사과나무는 아직도 시퍼런 이파리를 달고 청년처럼 젊음을 과시하고 크고 작은 사과를 매달고 있다.


이제 눈이 온다니 추수를 할 시간이다. 날씨가 추워지지만 맛있는 사과를 먹기 위해 하루하루 미루어 왔는데 눈이 온다니 추수를 했다. 아무래도 눈이 오고 날씨가 추면 남편과 내가 밖에서 일하기에 힘들 것 같아 다 땄다. 빨갛게 익은 사과들은 벌써 까치들이 찍어 먹어 버렸고 이파리에 숨어서 익어 가는 사과는 까치가 못 보아서 우리 차례가 되었다. 새들도 맛있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안다. 커다란 그릇으로 두 개를 땃는데 그중  좋고 큰 사과들을 골라서 앞집과 옆집에 한 봉지씩 가져다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사과로 여러 가지 간식을 만들어 먹기 때문에 갖다 주었더니 엄청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과 나눠 먹고 싶어도 맛이 시고 달지 않아 주는 사람도 미안하고 받아도 먹지 않고 버리게 된다 생각하니 힘이 들어도 껍질을 벗겨 삶아 얼려서 무언가라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과파이도 있고 사과 빵이나 머핀도 있고 사과로 만드는 여러 가지 디저트도 있으니 얼려만 놓으면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어쨌든 이른 봄에 가지치기를 해주면 5월 말이나 6월 초에 사과 꽃이 열린다. 사과를 굵게 열게 하기 위해 사과꽃을 솎아주면 사과가 열리고 여름 내내 조금씩 자란다. 어느 날 보면 제법 굵어진 사과가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리고 빨갛게 익어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다. 이젠 사과 농사도 끝나고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장작을 때면서 낭만의 겨울을 내면 된다. 꾸물대는 눈은 여전히 올까 말까 하며 먼지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라일락 나무에 붙어있던 단풍잎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진다. 봄에 벌레 때문에 자라지 못하다가 남편이 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주어 다시 살아나 꽃을 피웠던 장미꽃도 이젠 마지막이다. 그냥 놔두면 얼어 죽는다며 남편이 장미꽃을 잘라서 한아름 안겨주어 화병에 꽂아 놓으니 집안이 환하다.




(사진:이종숙)




여름 막바지에 이번 추위가 지나가고 나면 '인디언 서머'찾아오면 좋겠다. 인디언 서머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반짝하며 찾아오는 늦여름 같은 날씨에 미처 하지 못한 가을 청소를 한다. 부지런한 남편이 낙엽은 긁었지만  겨울이 온다고 하니 괜히 심란하다. 10월 하순에 하얀 눈이 쌓여 봄까지 있을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걱정이다. 걱정한다고 겨울이 오지 않지만 겨울이 싫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겨울엔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코로나가 오기 전이니까 생활이  아주 자유로웠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다니며 세상이 참 살기 좋아져서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때나 어디든 가고 오고 하며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언제까지나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오늘 못하면 내일 하리라 미루고 살아도 되는 줄 알았다. 겨울이 깊어가고 봄을 기다리던 3월 중순에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뺏았다. 가고 오는 것을 금지하고 만남을 통제하며 외출을 자제하라는 정부시책을 따라야 했다.


하늘길도, 바닷길도 막히고 세상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게 7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세상은 새로운 일상을 만나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외출도, 만남도 필요 없이 온라인의 시대가 되었다. 날씨가 추워도, 눈이 많이 와도 걱정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온라인으로 여행을 다니고, 온라인으로 쇼를 보며 살아간다. 밖에서 하던 것들은 하루아침에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유형의 삶이 생겨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코로나가  없어지면 좋겠지만 새로운 어떤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겨울이 오는 것이 싫지만 코로나는 더 싫다. 사람을 집안에 가둬놓고 발목을 잡는 코로나는 정말 싫다. 추워도 좋다. 눈이 많이 와도 좋다. 코로나만 없어지면 겨울이 길어도 좋다. 어쩌면 세상은 코로나의 생활을 미리 알았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인공지능은 몇 년 전부터 우리 생활에 조금씩 파고들었다. 영상으로 멀리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고 택배로 배달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드론을 가지고 놀았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은행업무를 했다. 생각해보니 몇 년 동안의 연습기간을 통해 사람들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수 있게 교육시켰던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태풍도 많았고 화재도 많았던 해였다. 수해도 컸고 산림의 손실도 컸다. 울고 웃는 세상이지만 어서 빨리 코로나로부터 해방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해본다. 가을 따라 코로나도 아주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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