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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06. 2020

그냥... 몸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사진:이종숙)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서머타임이 끝나서 한 시간을 뒤로 돌렸더니 시차가 생겼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이렇게 며칠간의 시차를 겪는다. 사람의 몸은 정밀한 기계라고 하지만 이토록 예민한 줄 몰랐다. 한 시간이 뒤로 갔다고 평소 자던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졸려서 한 시간 일찍 잤더니 새벽에 깨어 잠이 안 온다. 한 시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별것 아닌데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잠이 안 오니 한심하다. 한국이 갈 때마다 시차로 고생을 하던 생각이 난다. 이곳과 한국은 겨울에는 16시간, 여름에는 15시간의 시간 차이가 난다. 이곳이 아침이면 한국은 밤이다. 오후에  도착하면 식구들과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면 잠이 온다. 참으려 해도 잠에 곯아떨어져 자고 나면 새벽 2시에 잠이 깬다.


식구들은 다 자고 있는데 나는 말똥말똥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식구들 일어날 때는 피곤이 몰려온다. 시차로 식욕도 떨어진다. 잘 시간에 먹어야 하고 먹을 시간에 자게 되니 몸은 정신이 없다. 그래도 시차 극복을 위해 참고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다니다 보면 영락없이 저녁 먹을 시간에는 잠이 쏟아진다. 그렇게 1주일 정도 지나다 보면 시차에 적응하여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먹게 된다. 며칠을 그렇게 살다 보면 이곳에 날짜가 된다. 이곳에 와서도 시차 때문에 걸어가면서 깜박하고 앉아 있다가도 깜박하며 며칠 동안 고생을 한다. 거기에 비하면 한 시간 돌아갔다고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의 몸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워낙에 초저녁 잠이 많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지만 새벽 4시 반에 깨어 앉아 있으려니 황당하다. 한 시간을 몸이 받아들이기는 힘이 드나 보다.


베개에 머리만 대고 있어도 잘 자는 나인데 잠이 십리는 달아났다. 유튜브를  보고 브런치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이것저것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옛날에 보았던 시어머니의 모습이다. 오래전 시어머님이 한 달 예정으로 캐나다에 오셨는데 매일매일 잠에 취해서 주무시기만 했다. 왜 그렇게 주무시냐고 여쭸더니 나이가 들면 잠이 많아진다고 하셨다. 시차 때문에 그런 줄 모르고 나이가 들면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루 종일 병든 닭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맥없이 졸기만 하시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주무시는 정도가 아니라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한밤중처럼 잠에 빠진 채 주무시곤 했다. 그때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졸린 이유를 나도 몰랐고 어머니도 모르셨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2주간 낮에 주무시더니 그 뒤로 괜찮아져서 남은 2주는 여기저기 구경을 하시다 한국으로 들어가셨다. 시차 때문에 힘들어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철없던 그때는 매일매일 졸려서 쩔쩔매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로 시차는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이곳은 땅덩어리가 크고 넓다 보니 주에 따라 날씨도 다르고 시차도 난다. 오랜만에 딸네 집에 갔을 때도 1시간의 시차로 새벽에 일어나고 밤에 잠을 못 자는 나의 체질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 잘 때 일어나서 부스럭거리고 남들 놀 때 잠을 자면 이래저래 민폐인데도 시차에 예민한 나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한 시간 거저 얻었다고 좋아하는 것은 하루뿐이고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은근히 괴롭힌다. 처음에 몰랐을 때는 일이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해마다 서머타임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마다 피곤한 것은 시차 때문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진:이종숙)



잠이란 그토록 중요하다. 조금 졸려도 못 참고 조금 모자라도  몸이 안다. 세상에 어느 고문보다 견딜 수 없는 게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배고픈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쏟아지는 잠을 막을 길이 없다. 오래전, 온 식구가 한국에 다녀오던 날 미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는데 연결 시간이 8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밥 먹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몇 시간을 보냈는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만사가 다 귀찮았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신나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놀더니  어느 순간 의자에 앉아서 졸기 시작했다. 미국은 낮이었지만 한국에서 적응된 시간으로 밤이 된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의자에 머리를 박고 세상모르고 잤다. 짐을 가져가거나 말거나 비행기 시간을 놓치거나 말고나 다들 곯아떨어진 채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행기 시간이 되었다. 간신히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때 졸렸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정신을 빼가도록 졸려서 고생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버티다 보면 며칠 지나면 슬그머니 없어지는 것을 알기에 그냥 기다린다. 밖을 내다본다.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아침이 올 것 같지 않다. 오가는 차 소리도 없고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릴뿐 동네는 고요하다. 텔레비전을 켰다. 특별히 나오는 뉴스도 없고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떠들어댄다. 누가 되어도 서민들에게 관심 밖의 일이지만 나라마다 원하는 사람이 다르다. 누가 되든 좋고 나쁜 점이 반반일 텐데 일단은 한국과 캐나다에 이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거리는 코로나를 극복하여 일상을 되찾는 것인데 코로나가 없어진다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이  너무 멀리 와 있다. 텔레비전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광고로 바쁘다.


실업률이 역사상 최고많아졌고 불경기로 사람들은 울상인데 여전히 물건을 사라고 부축 인다. 코로나가 있어도 크리스마스 상품들은 이미 상점에 꽉 차게 진열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코로나가 있던 없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족이 여럿이 함께 만날 수 없고 멀리 휴가를 가지 못하지만 애나 어른이나 그냥 보낼 수 없는 날이 크리스마스다. 벌써부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했다. 어제 산책을 나갔는데 나무에 장식을 걸어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가 너무 오래 있으니 사람들도 무언가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를 시도하는 것 같다. 잠이 안 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다 보니 아침이 되었다. 남편도 시차 때문에 꼭두새벽에 일어났는데 다행히 다시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이제 서서히 일어나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어간다. 이렇게 며칠 자다 깨다 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리라 생각된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까짓 한 시간의 시차에도 데모를 한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났으니 오늘 저녁에는 분명히 8시도 못되어 자자고 할 것이다.


그냥 몸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서로 편하다.


코로나없는 크리스마스이기를 바란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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