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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Dec 02. 2020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담그지 못하는 이유




12월 1일이다. 3주 있으면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간다. 둘째가 거꾸로 있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셋째도 역시 수술을 해야 한다. 산후조리를 해줄 사람이 없으니 아기 낳기 전 김치라도 담아 놓아야 한다. 마침 김장 거리가 와서 장을 보러 갔는데 김장 배추를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린애들 둘 데리고 남산 만한 배로 앉아서 김치 속을 넣을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나고 겁부터 난다. 배추김치는 먹고 싶을 때  한통씩 사다가 담아 먹으면 되니 손이 덜 갈 것 같은 총각무를 3박스를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깨끗이 씻어서 절였다가 준비해 놓은 양념으로 버무려서 김치통에 담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막상 집에 와서 풀어놓고 보니 여기저기 누렁 잎도 보이고 총각무가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일일이 다듬어야 하는데 뱃속의 아기는 눕고 싶다고 하기 전부터 꿈틀댄다.


밤일을 하는 남편은 출근했고  1살짜리와  2살짜리 두 아들이 아파트 복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밤을 새우고 오는 남편은 아침에 와서 잠을 자야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할 시간이 없다. 그릇에 물을 받고 총각무를 하나하나 다듬어 깨끗이 씻어야 하는데 자꾸만 지저분한 것들이 보인다. 배는 무겁고 허리는 아프고 하루 종일 뛰어논 아이들을 재워야 하는데 할 일은 끝이 나지 않는다. 일단은 허리부터 잡아야 한다. 안 그러면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이 꿈틀댄다. 아들 둘을 데리고 누워서 총각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는데 김치를 담으러 일어나야 하는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다리는 뚱뚱 붓고 배는 무겁고 뱃속의 아기는 발길로 배를 펑펑 차며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그래도 일어나서 총각김치를 담아야 한다. 다시 싱크대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일일이 하나하나 다듬는다.


몇 개 안되리라 생각했던 총각 무가 물을 만나니 싱싱하게 살아나 산 것의 몇 배가 되는 것처럼 산더미같이 불어나서 나를 쳐다본다. 아이들은 자고 남편은 일을 하고 나도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총각무와 씨름을 한다. 간신히 다 다듬고 씻어서 소금에 절여놓고 찹쌀풀을 끓이고 양념을 준비한다. 다 절은 다음 아침에 양념과 섞어서 김치통에 넣으면 된다. 힘들면 남편 보고하라면 된다. 잠은 쏟아지고 배는 더 무거워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다. 일단은 어느 정도 해 놓았으니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하며 잤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푹 절여졌어야 할 총각무가 시퍼렇게 다시 살아나서 총각무 밭으로 가려고 한다. 소금이 적어서 하나도 절여지지 않았다. 다시 절여야 한다. 소금을 듬뿍 넣어 꼭꼭 눌러 놓고 한숨 더 자고 나니 시퍼렇던 총각무가 숨이 죽었다.


뱃속의 아기는 이리저리 발길질하고 김치는 담가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엄마가 옆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결혼해서 2년 동안 큰동서가 김장을 해 주셔서 받아만 먹고 이민을 왔다. 김장을 내 손으로 해보지 않아 자신이 없었는데 총각무를 좋아해서 우습게 보고 담그려고 했던 것인데 너무 힘들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기 낳고 집에 와 김치라도 있으면 밥만 해서 먹으면 될 것 같았는데 총각김치 담그기가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 다듬어도 더러운 것이 보이고  씻고 씻어도 한이 없다. 절였는데 다시 살아나고 몸은 무겁고 엄마 생각이 절로 나지만 엄마는 한국에 계신다. 괜히 눈물이 난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간신히 양념으로 버무려서 김치통에 넣어 놓고 3주 뒤에 입원 날짜가 되어 병원에 가서 셋째를 낳았다.


퇴원하고 집에 오니 김치가 딱 알맞게 익었다. 산후조리해줄 사람 하나 없는데 수술 후 아픈 배를 만지며 힘들게 담은 김치를 먹는데 눈물이 난다. 연년생으로 3년 동안 아이 셋을 낳으며 돌봐주는 이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살아온 지난날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지만 배는 고프고 시간 되면 젖은 불어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아들들은 새 아기가 왔다고 좋아한다. 눈도 찔러보고 아기 입에다 손가락도 넣어보며 신기해한다.






37년 전 12월 1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배속에서 발길질하던 아기는 딸이었고 3주 있으면 38살이 된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이 없다고 이런저런 세월 속에 오늘을 맞는다. 총각김치는 환장하지만 총각김치를 담그지 않는 이유는 해마다 오늘이 되면 힘들었던 그날의 내가 아직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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