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에서 나를 살린... 추억의 붕어 매운탕

by Chong Sook Lee


(이미지출처:인터넷)


오늘은 왠지 새빨간 매운탕이 먹고 싶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듬뿍 넣고 된장 한 숟갈로 비린내를 잡은 매운탕이 먹고 싶은데 당장 재료가 없어 만들지는 못해도 지나간 추억으로 먹어본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쩔쩔맬 때 식당에 가서 먹은 매운탕도 맛있었지만 그 옛날 남편이 냇가에서 잡은 붕어로 매운탕을 끓여먹던 생각이 난다. 살다 보면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입덧에 시달리며 깔아져 누워있을 때 나를 살려냈던 붕어탕에 대한 추억이다.




잠이 쏟아진다. 낮이나 밤이나 졸려서 견딜 수 없다. 잠이 쏟아져도 이렇게 쏟아질 수 있는지 걸으면서도 졸리다. 동네에 얼굴 하얀 서울 색시가 시골에 들어와 수예점을 한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이 바쁘게 들랑거리는데 잠이 쏟아진다. 손님이고 뭐고 다 귀찮고 그저 드러누워 잠이나 자고 싶다. 몸은 마를 대로 말라 내 키에 44kg까지 내려가 뼈와 가죽만 남아 걸으면 휘청거렸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이 안되어 힘들어하며 살아서인지 자꾸만 체중이 떨어졌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어도 애가 안 생긴다며 걱정하시던 시어머니 말씀에 아기가 들었는지 임신이 되었다.


기다리던 임신이 되었는데 졸리고 메슥거려 아무것도 먹지 못 한 채 몇 날 며칠이 간다. 일어나면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 뭐라도 먹으면 똥물까지 토해 낸다. 그래도 배 속에 아기를 생각하며 먹고 토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았다. 아무것도 못 먹는 나를 위해 남편이 시간을 내어 동네에 있는 냇가에 가서 붕어 몇 마리를 잡아 내장 빼고 지느러미 떼고 깨끗이 손질을 해주었다. 옛날부터 붕어를 폭 고아서 먹으면 기운 없을 때 기운 나게 하는 보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매운탕을 끓여보지 않았지만 대충 이것저것 넣어 매운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서 먹으면 입덧이 덜할까 하는 생각에 일단은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고추장을 풀어 넣고 끓이다가 손질해 놓은 붕어를 집어넣어 끓였다. 얇게 썬 감자와 양파 마늘과 생강 그리고 대파를 넣고 삶아놓은 국수를 한주먹 넣어 휘휘 저어 간을 하고 양념을 넣어 끓였다.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만사가 귀찮았는데 냄새가 회가 동해 맛을 보았는데 토하지 않는다. 몇 달 동안 음식을 못 먹고 입으로 들어가면 영락없이 토해 냈는데 이상하게 안 토한다. 한 번 두 번 간을 보는데 맛있다. 그릇에 담아 조금씩 몇 번을 먹어도 토하지 않고 잘 넘어간다. 이상하다. 왜 안 토하지? 토하려는데 안 토하고 잘 먹는다.


그렇게 해서 붕어 매운탕 몇 그릇을 먹었다. 그것으로 입덧이 다 끝났는 줄 알고 다음날 아침을 먹으려는데 다시 비위가 상한다. 또 시작이다. 입덧이 끝난 게 아니고 붕어탕만 달랜다. 그때만 해도 자연이 깨끗해서 비 오는 날 냇가에 가면 손바닥 만한 붕어들을 손으로도 잡을 수 있었다. 입덧을 다시 시작하고 며칠 동안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는 나를 본 남편이 다시 냇가로 가서 붕어 몇 마리를 잡아다 손질을 해주길래 기운 없는 몸으로 다시 매운탕을 끓였다. 곧 죽을 듯이 토하며 깔아져서 누워있던 나는 매운탕을 끓여먹고 다시 살아났다.


며칠 못 먹었던 배를 채우기라도 하듯이 몇 그릇을 먹고 입맛을 되찾아 견딜만하게 되었다. 마침 겨울이 되어 남편이 더 이상 붕어를 잡지 못하게 되었고 친정엄마가 해주신 붕어만 한 새끼 조기를 매콤하게 찜을 해주셔서 몇 번 먹고 났더니 드디어 그 무서운 입덧이 나에게 떨어져 나갔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에 입덧만 안 하면 애 열명도 낳겠다고 했는데 그 말도 둘째가 거꾸로 있다 보니 꿈에 불과했다. 둘째도 셋째도 입덧을 심하게 했다. 둘째 때는 너무나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 밤마다 산더미 같은 음식 꿈을 꾸고 먹는 대로 토하며 간신히 고비를 넘겨 둘째를 낳았다.


셋째 역시 입덧이 심해서 토할 때마다 남편이 등을 두드려주는 것을 본 두 살짜리 큰애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려 주었던 생각이 난다. 배 속에 아기가 무엇을 안다고 붕어탕만 고집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 옛날에 냇가에서 남편이 잡아온 붕어가 나를 살린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자연산 붕어탕이었다. 뱃속에서 붕어탕을 좋아했던 큰아들이 마흔이 되어 4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먹은 붕어 매운탕은 아직도 눈에 선하여 이야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음식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던 시절에 대충 해서 만들어 먹은 게 너무 맛있었다며 향수에 젖어 남편과 나는 지금도 이야기한다.


그때 입덧이 너무 심해 이대로 죽을지 모르겠다고 힘들어했는데 붕어 몇 마리가 나를 살렸으니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붕어가 없었다면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생각하니 냇가에 있던 붕어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에 너무 고맙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추억의 매운탕을 먹으며 아련한 20대의 청춘이 되어본다.


삶이란 이렇게 생각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매운탕을 생각하며 41년 전으로 돌아갔다 오니 저녁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운탕 재료를 준비했을 텐데 오늘은 그저 추억의 붕어 매운탕으로 배를 채운다.



(이미지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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