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 한 그릇이... 날려버린 코로나 불안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바람이 미친 듯이 분다. 세상이 뒤집힐 듯이 불어대는 바람으로 지붕에 있던 눈과 땅에 있던 눈이 이리저리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간다. 웬 바람이 이토록 부는지 모르겠다. 1년이 넘도록 불어대는 코로나라는 바람이 잠잠해지지 않고 계속 분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피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데 꼼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극성을 떤다. 1년을 괴롭혔으면 그만 불어도 되는데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를 하늘에서 눈처럼 뿌리는 것처럼 세상으로 번지는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지쳐간다. 무엇을 해도 막을 수도 없거니와 백신을 맞아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해도 차도가 없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가니 도통 대책이 없다.


동부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정해졌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꼼짝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헷갈린다. 사람이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뜰이 있는 사람은 바람이라도 쐬 지만 아파트 단칸방에 사는 사람은 어쩌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감방으로 변해가고 자유도 없고 법과 제도만 있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지켜야 하는 사람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 말라고 해도 몰래한다. 세상이 점점 이상해진다.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을 닮아간다. 바람이 멈추는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은 시원한 김칫국이 먹고 싶다. 멸치 몇 마리에 다시마 한 조각 넣고 국물을 만들어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두부도 가늘게 썰어 넣어 만든 김칫국을 먹고 싶다. 콩나물을 넣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대는데 콩나물을 사러 가는 것은 무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장김치가 익어가고 여러 종류의 김치가 상에 올라와 있어도 김칫국은 여전히 향수를 불러온다. 세상이 아무리 코로나로 몸살을 앓아도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었던 김칫국 맛은 잊을 수 없다. 나는 아이로 돌아간다. 집집마다 끓이는 김칫국 냄새가 골목을 들어서면 진동을 하고 텅 빈 뱃속에서 회가 동한다. 층계를 오르고 집에 가는 동안 이마에는 땀이 나고 입에서는 침이 고인다.


하얀 흰쌀밥에 김칫국 한 그릇 이면 다른 반찬 다 필요 없다.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녹는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김칫국 한 그릇에 삶이 다시 시작된다. 하루 종일 살기 위해 힘든 일을 한 사람도, 넥타이를 매고 상사들 눈치를 보던 사람도 김칫국 한 그릇에 설움을 말아먹으며 내일을 산다. 맵지도 짜지도 않게 심심하게 끓여 만든 김칫국에 밥을 말아먹으면 세상이 입에서 다 녹아내린다. 고기보다 맛있고 생선보다 맛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시원하고 좋다. 먹으면 답답하던 마음이 뚫리고 행복하다. 부모님 생각도 나고 옛날에 살던 고향 생각도 난다.


커다란 솥에 끓여서 식구들마다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반 정도 남는다. 그러면 밀가루 반죽을 해서 쓱쓱 밀어 만든 손 칼국수를 넣어 김치 칼국수를 해 먹는다. 매일 먹는 김치가 뭐 그리도 맛있는지 추운 겨울 밥상에는 육 남매의 푸짐한 정이 오고 간다. 산아제한이 시작되기 전에는 보통 한집에 7-8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2대 3대가 모여도 몇 명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없는 집안에 아이들은 많다'는 욕 아닌 욕을 먹던 그 시절이 좋았다. 사람 사는데 요란 벅적지근하게 살아야 사는 맛이 있다. '다 저 먹을 복은 타고난다'며 생기는대로 아이를 낳던 때가 좋았다.


삼촌도 이모도 그리고 고모도 없이 혼자 자라는 요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돈이 없어도 정이라는 것을 주고받으며 살면 사랑도 많이 받고 추억도 많이 생기는데 그런 세상이 없어졌다. 그나마 우리를 끝까지 만나게 해주는 김칫국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바람 불고 추운 날 김칫국 한 그릇에 세월을 돌아가 어릴 적 추억을 불러온다. 아련히 떠오르는 그 옛날이 웃음 되어 살아난다. 스토브에서 끓어오르는 김칫국의 신 냄새가 집안을 깨우고 침샘을 자극한다. 바람이 불어 코로나를 다 날려 보내기를 바라며 맛있게 끓여진 김칫국을 먹느라 손과 입이 바빠진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디를 가는 것도 다 불안한 현실에서 다른 것은 못해도 먹는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다. 김칫국 한 그릇에 잠시라도 코로나의 불안에서 벗어나 본다.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애원하는 슬픈 얼굴이 생각난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칫국을 먹으며 당분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어도 될 듯하다. 빨리빨리 코로나를 벗어나는 일상이 되면 좋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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