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혼자서 두런두런

by Chong Sook Lee


집앞의 소나무가 눈위에 누워있다.(사진:이종숙)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새들은 새벽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잠꼬대 소리만 조금씩 들린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먹느라고 분주하더니 조용해졌다. 어젯밤에 바람이 불고 진눈깨비가 온다고 하더니 마당을 보니 아무것도 안 왔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간이라 밖은 깜깜하고 세상은 아직 잠들어있고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버스만 다닌다. 동네로 다니는 버스길이 가까이 있어 살까 말까 하던 집을 사서 살아온 지도 오래되었다. 살다 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와도 제설작업을 빨리 해주고, 봄에는 겨울이 남겨놓은 쓰레기를 커다란 청소차로 깨끗이 치워 준다.


그것을 보고 때로는 단점이 장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내년 봄부터는 정류장이 폐쇄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옆에 있을 때는 없었으면 하던 정류장이 막상 없어진다 하니 서운하다. 나이 들어가는데 버스를 탈 때가 생길 수도 있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앞으로 이 집에서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데 버스정류장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다고 미리 걱정을 하는지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동네가 참 조용하다. 이곳에 살던 아이들이 다 성장하고 노인들은 집을 지키며 산다. 동네 끄트머리에 노인 혼자 집을 지키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내놓고 어디론가 가고 없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이사와 살고 조금씩 세대가 바뀌고 있다. 어느 날 이곳도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집저집 불빛이 켜진다. 하루가 시작이 되는 모양이다. 뛰어노는 아이들은 없어도 차들이 오고 간다. 사람 사는 게 무엇인지 새로운 날을 맞고 하루를 살아가는데 매일의 삶이 다르다. 싫증이 날만도 한데 여전히 지속된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일을 하며 다른 길을 걸어간다. 사람이 몇십 년 동안 살아가는 이유다. 벌써 1월도 중순이다. 세월 속에 세월을 만나며 산다.


길 건너에 서 있는 꺽다리 가로등이 불 빛을 잃어가 본연의 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루가 밝아오고 나무들은 그냥 제 자리를 지킨 채 서 있는다. 눈 속에 파묻혀 봄을 준비하고 있는지 꼼짝하지 않는다. 어느 날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겨울이 싫지만 겨울이 오지 않으면 봄도 오지 않는다.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은데 봄은 때가 되어야 온다. 올 때와 갈 때를 아는 자연이 다 알아서 하는데 인간이 안달한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우리는 편하고 좋은데 한쪽에서는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반반이다. 한쪽이 웃으면 한쪽은 울고, 한쪽이 좋으면 한쪽은 싫다고 한다.


세상이 공평하다는 말이 맞지 않다고 했는데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으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도 철들어 간다. 철들지 말아야 하는데 왜 자꾸 철이 드는지 모르겠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서쪽 하늘에 구름으로 깜깜하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잠잠하던 나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당에 있는 그네도 저 혼자 흔든다. 뭐라도 올 것 같은 하늘이다. 천지가 뒤집힐 것처럼 바람이 불어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난로 뚜껑이 열린다. 눈이 온다. 세상이 다 하얗게 퍼붓는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멀쩡 하던 날이 갑자기 난리를 친다. 어제 와야 할 것을 오늘 쏟아내는지 굉장하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더니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하기야 작년 오늘은 멕시코 여행을 하고 집에 온 날인데 그날은 날씨가 영하 39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 날씨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만사 다행이라 생각하면 된다. 서운할 것도 없고 미련 둘 것도 없다. 눈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어떤 날이 될지 실로 궁금하다. 눈이 오지만 나름대로 멋진 날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눈도 안 오고 바람도 불지 않고 춥지도 않으면 좋겠지만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사람은 산다. 겨울이 있기에 기다림을 배우며 산다. 하루 종일 올 것 같은 눈을 보며 오랜만에 혼자만의 새벽 단상에 잠겨본다.




어차피 눈보라가 무섭게 불어오는데 산책을 나가기도 뭐하니 눈 핑계로 그동안 밀렸던 드라마도 보고, 보고 싶던 영화도 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밀린 청소나 하자.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모자라다. 눈이 오거나 바람 불거나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집안일 눈치를 보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단다. 날씨 타령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시작하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살아온 날들이 쌓여간다. 밖에 내리는 눈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데 눈 오는 날 집안 청소나 해야겠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미루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미루다 보면 나중에 큰일 나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가 되기 전에 오늘 지금 뭐라도 하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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