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도 세상은 돈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새해를 축복하며 서로를 기원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 달이라는 세월이 흘러 3월이 되었다. 어제와 오늘은 몇 시간 차이지만 3월이 되니 기분이 다르다. 매일매일 똑같은 날들 이건만 3월은 왠지모르게 기대가 새롭다. 밖은 여전히 눈이 쌓여 있고 겨울의 옷을 입고 있어 봄이 온 것 같진 않지만 세상은 활기차다. 얼어붙어 있던 대지도, 웅크리고 있던 나무도 봄을 맞기 위해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다. 부드러운 바람에 빈 가지 들은 하늘거리고 성급한 나무들은 움을 틔우느라 바쁘다. 아무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화창한 봄빛이 나의 눈을 창가로 자꾸 불러낸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봄기운이 돈다. 춥다는 핑계로 산책조차 나가지 않고 지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싱그러운 봄을 만나고 싶어 산책을 나섰다. 숲은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온통 하얀 눈으로 쌓여있다.


봄이 오려면 한 달 반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계곡은 이미 녹기 시작하여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산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물이 오솔길 쪽으로 올라와 물이 흥건하여 아주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여 넘어지면 옷이고 신발이고 다 젖을 것이다. 이제는 머지않아 계곡물이 흐르고 수달도 오리도 나와 놀 것이다. 장난꾸러기 수달은 어찌나 수영을 잘하는지 높은 계곡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는 몸에 무슨 모터를 단 듯이 물 파도를 일으키며 달린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정신없이 살 때도 자연은 한시도 멈추지 앓는다. 겨울이 오면. 봄을 준비하고 가을은 겨울을 준비한다. 어느새 숲은 봄 잔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매달아준 새 먹이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새들과 다람쥐들은 열심히 들랑날랑하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자연을 보존할 수 있는 것 같다.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한 나무들은 옆으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지난날 좋았던 날 들을 추억하며 편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다. 까치는 나무 꼭대기에서 짝을 부르며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다리를 건너며 계곡을 내려다보니 아직 꽁꽁 얼은 것 같다. 녹기 전에 얼음 위로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가고 싶어 몇 발자국 걷는데 우지직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얼음이 얇아져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아 길로 나와 걷는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싱그럽다. 아무도 없는 숲을 걸으며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민 온 날부터 퇴직하는 날까지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아파도 힘들어도 참고 살았다. 인종차별을 당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고 무시해도 웃으며 살았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미안했고 영어를 잘못해도 잘한다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감사했다. 선으로 갚으면 선이 돌아오고 악으로 갚으면 악이 돌아온다. 잘못해도 잘해도 웃음으로 소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며 죽기 살기로 살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기를 쓰며 했다. 하다 보니 세상 일 안 되는 게 없다는 것도 배웠다. 사업을 하는 동안 손님들이 우리 식당에 와서 이익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무엇이든지 듬뿍듬뿍 넉넉히 주었다. 가격은 싸게, 음식은 맛있게, 양은 많게, 서비스는 최고로 해주는 게 목적이었다. 잘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과의 융화가 더 중요한 것도 알았다. 그렇게 하니 우리가 식당을 그만두고 떠난 뒤에도 그립다는 사람이 많았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고 싶다고 퇴직하기를 바랐는데 세월이 가니 퇴직도 하게 되었다. 이제 돌아보면 내가 어찌 그 힘든 일을 하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음이란 참 좋은 것을 느낀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무서운 게 없고 매일이 힘들어도 새롭게 살아왔던 날이었다. 남들이 잘되면 축하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배우면 마음이 편하다.


나무들이 눈 속에서 추운 겨울을 내고도 의젓하게 서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대며 봄을 기다린다. 그들도 살기 위해 알게 모르게 열심히 살고 그곳에서 견디지 못하면 자연도태 되어 넘어짐을 안다. 넘어진 채로 누워서 눈을 맞고 비를 맞으며 썩어가고 다시 흙이 된다. 저 하얗게 쌓인 눈이 녹으면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온다. 숲이 우거져 오솔길이 안 보일 때는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걷는다. 얼마 있으면 눈이 녹고 길이 질퍽거리기 시작하고 바람이 불어 길이 마를 때까지 걷지 못한다. 자연의 지혜는 심오하다. 한꺼번에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조금씩 추워지고 천천히 따뜻해지면서 지구를 달래고 얼르며 예쁘게 가꾼다. 어쩌다 지구가 화가 나면 지진이나 토네이도 같은 자연재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주기도 한다.


멀쩡한 3월에 폭설이 오기도 하고 한여름에 우박이 오기도 하지만 세상살이가 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눈이 많이 와서 하루 이틀 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너무 가물어서 화재로 고생했는데 산림이 조금은 축축해져서 당분간 화재 걱정은 안 해도 될듯하다.



삶이란 그렇게 들쑥날쑥하다. 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게 삶이다. 어차피 나름대로 안 되는 것이라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싫다고 일어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삶을 끌어안으며 살 때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온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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