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지도 오래되었다. 부담 없는 친구들과 앉아서 수다를 떨다 보면 그중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그 많은 양의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내는지 궁금하다.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말을 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는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하여 스포츠와 여행까지 모르는 게 없다. 말하는 것을 보면 만능박사가 따로 없다.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대충만 아는 나와는 정말 다르다. 만나면 아니 만나기 전부터 이야기 들을 생각을 하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한다.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신이라도 들린듯하다. 입에서 거품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떠들어 댄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다가 피곤해서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돌려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라도 막힘없이 풀어내는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양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싫어하면서도 듣는 이유는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강연을 듣는 것처럼 옆에서 들으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 돌아서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귀만 먹먹할 뿐 아무런 감동도 기억도 없다. 수다를 위한 자리다. 만남은 주고받는 교류가 이루어지는 자리인데 혼자만의 쾌감을 위한 자리이기에 공감이 없다. 듣고 이야기하며 나누는 정서 없이 혼자만의 시간이다. 청중은 있어도 듣는 이가 없는 방송이고 관중이 있어도 보는 이가 없는 강연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듣는 사람이 없으면 허공에 흩어지는 미세먼지와 다름이 없다.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공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공해로 인하여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그래도 들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이야기도 많다. 대개 말이 많은 사람들은 유모 감각도 뛰어나 청중을 웃기기도 하고 폭 빠져들게도 만드는 재주가 있다. 혼자 떠드는 사람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지만 손짓 발짓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재미도 있다.말이 많은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관심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많아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 남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낸다. 머리도 명석하여 한번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다른 이에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다. 유행에도 민감하여 센스도 있고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 배울 것도 많다. 아는 게 많다 보니 둘러대기도 잘해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어 세상이 돌아가기도 한다. 배우지 않았어도 말재주가 많은 사람도 있고 많이 알아도 표현력이 약해서 가만히 있는 사람도 많다.
(사진:이종숙)
말이 많아도 이야기를 구수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의 이야기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가까웠던 아주머니한분은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아도 심금을 울려서 아직도 생각이 난다. 유식하지도 않은데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들이 진심이 넘쳐 돌아가신 지금도 간혹 그립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데 어릴 적 외삼촌이 구수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서 들었던 생각이 난다. 역사이야기나 사회 이야기를 해주시면 나도 커서 외삼촌 같이 아야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외삼촌의 이야기는 몇십 년 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생생하게 금방 일어난 일같이 이야기해주시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다. 아직도 외삼촌이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외삼촌은 연로하신데도 어릴 적이나 젊었을 때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다. 어쩌다 외삼촌을 만나면 맛있는 것도 사주시며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해주셔서 외삼촌은 어쩜 그렇게 기억도 잘하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가고 외삼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는데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부럽다. 그때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연로하신 분을 만나보니 어쩌면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라 치매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하며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하다 보면 기억력이 좋은 것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똑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보통 사람들은 어제 무엇을 했는지, 점심을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몇십 년 전의 일을 기가 막히게 기억하며 이야기하시는 그분을 보며 외삼촌의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나이가 들면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어제오늘 지금 당장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은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잊히지 않고, 어떤 것은 생각하려 해도 생각이 안 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있었던 일들도 나는 생각이 안 나는데 아이들은 일일이 기억하고 있기도 하고 나는 기억하는 것을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른 채 잊어버린다. 선천적으로 이야기꾼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기억력이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기억하게 되고 아는 것도 말로 표현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있다 보면 잊힐 것이다. 이야기가 혼자만의 수다가 되기보다는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되면 좋은데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에 그 또한 힘들다. 말하기 좋아하면 옆에서 들어주고 부담 가질 것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면 된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 우정도 생기고 사랑도 생기는데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말이 너무 없어도힘들긴 마찬가지지만 오히려 말 많은 사람 대하기가 덜 부담스럽긴 하다.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이다. 너무 지나쳐도 문제고 너무 모자라도 짜증 난다. 말을 할 때 말을 하고 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각자의 재량에 달려있으니 할 말은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본인의 스트레스를 풀며 사는 것도 현명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때로는 기분도 좋아진다. 어찌 되었든 사람을 만난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혼자 떠들어대며 말 많은 사람도 그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