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다. 사랑도 미움도 원망도 후회도 영원하지 않다. 세월 따라 희미해지고 흐릿해지고 묽어진다. 꽃이 피었다 지는 시간은 열흘밖에 안되고 사람도 길게 살아도 100년도 못살고 간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명이 길지도 않고 가난하다고 명이 짧지도 않다. 그래도 태어나 살다 간 사람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기억되어 그리움이 되어 산다. 귀중한 물건들은 사람들이 보존하고 계승되어 오래도록 남아 있고 사람은 떠나간 뒤에도 그리움으로 산다. 20대 초반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만 해도 망자를 병풍 뒤에 모셨다.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할머니는 산사람과 똑같이 반듯하게 누워계셨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전혀 죽은 모습이 보이지 않아 엉뚱하게도 나는 오랫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지도 오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 나는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할머니가 보고 싶다.
아버지가 5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두 아들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셨다. 아버지가 엄마와 결혼하시면서 작은 아들과 사시다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상경하고 자리 잡는 동안 우리들을 1년 동안 봐주셨다. 그 1년 동안 할머니와 살던 때가 늘 그립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을 학교 보내주시고 밥해주시며 돌봐주시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서울에는 어쩌다 놀러 오셨는데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살림을 해 주시러 오셨다. 그때 내 나이 13살 중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누워계신 엄마 대신 연로하신 할머니가 살림하시는 게 내 눈에도 안쓰러워 보였는지 할머니가 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같이 했다. 이불빨래도 도와드리고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쫓아다니며 틈틈이 도와드렸더니 할머니는 어린 게 철이 들었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던 생각이 난다.
그 뒤로 할머니는 작은 아버지 집에서 사시다가 72살에 돌아가셨다. 그때는 사람들이 수명이 짧아서 칠순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환갑잔치를 크게 해 주며 70이 넘으면 장수했다고 하던 세상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내게 특별한 존재여서 늘 생각나고 그립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반 백 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내 가슴속에 살아 계신다. 특별하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데 할머니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사실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었다. 무심한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한없이 쌓인다. 봄이 되니 나비들이 많이 날아다닌다. 돌아가시고 일 년 뒤에 형제들과 함께 성묘를 하러 갔는데 난데없이 샛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나비를 보는데 아버지가 나비가 되어 우리를 만나러 오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나비는 한참을 우리들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우리가 떠날 때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는데 이상하게 나비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머니처럼 아버지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보면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뒤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병으로 죽었는데 노래를 유난히 잘하던 동생이라 유행가를 들을 때마다 동생이 생각나고 그립다. 아파하면서도 살고 싶어 하던 생각이 나고 괴로워하던 생각이 나서 잊히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이름을 남기지 않았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래도록 길이 남아 죽은 다음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가슴에 남아 기억된다. 가까이는 보모 형제를 비롯해서 친구 친척들은 물론 좋아하는 예술가와 작가들은 오래오래 남는다. 지나가버리고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라도 마음속에 남아서 기억된다는 것은 참 아름답다.
오래전 아들이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새 차를 살 수가 없어 중고차를 사야 되는 상황이 생겼다. 마침 가까운 동네에 차를 팔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차를 한번 타보고 바로 의심 없이 샀다. 타고 일을 가는데 연기가 나서 간신히 집에 와서 그 사람한테 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네 탈 때는 아무 이상 없었다며 시침을 떼고 반환해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몇 번 고치다가 그대로 가다가는 돈이 엄청 들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새 차를 산적이 있다. 그런데 그 뒤로 인도 사람을 보거나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때 그 차 사건 생각이 나서 괘씸한 생각이 들며 잊을 수가 없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의 이름도 마음속에 남아 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고 좋은 영향을 준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지나간 것은 잊히지만 그리움은 살아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며 자손들에게 말이나 글로 전해 진다.
사랑하는 사람은 좋은 기억만 남아 아름답기만 하다. 생각할수록 만나고 싶고 꿈에서도 보고 싶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보나 생각이 나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런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수명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슴속에 남아 있는 수명은 길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해도 가슴속에 있는 사랑은 떼어낼 수도 없고 가져갈 수도 없다. 하늘처럼 땅처럼 마음에 남아 언제나 함께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그립고 세상을 멋지게 살다 간 동생이 그립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이 보이지 않고 만날 수 없다고 아주 간 것은 아니다. 살아있어도 못 만나고 안 만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 살아서 못 만나고 바빠서 못 만나고 언제나 만날 수 있기에 내일로 미루며 산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언젠가는 다 만난다.
기억 속에서 만나고, 사진 속에서 만나고, 주고받은 물건에서도 만나기 때문에 영원히 산다고 하나보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꿈속으로 찾아와서 만난다. 요즘엔 꿈이 많아졌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도 알게 모르게 사람들과 교류하며 소통하고 사는지 꿈을 통해서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영혼이 나를 데리고 다닌다.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속에 그리움이 되어 영원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