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에 눈이 떠졌다. 해가 뜨는 시각에 잠이 깨서 하루를 시작한다. 밖은 이미 훤하게 먼동이 트고 해는 새로운 하루를 데리고 하늘을 발갛게 물들였다. 새들이 식구들과 아침밥을 먹느라고 시끌시끌하다. 참새가 제일 많고 까치와 까마귀 그리고 블루 제이와 로빈이 우리 집 뜰에서 기거하며 우리와 함께 산다. 아침마다 그들의 잔치가 시작되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하루가 시작된다.
요즘엔 백야현상으로 5시쯤에 일찍 해가 뜨고 밤 10시쯤에 늦게 해가 진다. 거의 16시간이 넘게 환하여 밤이 되어도 그리 어둡지 않다. 이민 온 첫 해에 안 그래도 그리움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는데 밤이 되어도 어둡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잠을 자야 하는데 백야현상 때문에 밖이 환하고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달은 왜 그리 밝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어 해가 뜨는 것이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밤을 지새우고 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꼭두새벽인데 새들은 그야말로 대낮 인양 떠들며 식구를 부르고 이거 먹어라 여기 맛있는 거 많다 이리 와서 봐라 하며 난리가 났다. 올해 47살이 된 우리 집 주위에 열 다섯 그루 이상의 나무가 집을 둘러싸고 있어서 새들이 많이 온다. 그동안 사과나무에 집도 짓고 새끼 까마귀가 날을 수 있을 때까지 소나무에서 기거하다 가기도 했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앉기 좋아하는 까치와 까마귀는 사이좋게 잘 놀지만 먹을 것 앞에 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털을 세우며 싸운다. 이른 봄에 텃밭을 갈아 놓으면 여러 가지 벌레들이 많은데 까치가 차지하고 아무도 못 오게 하며 텃밭을 점령한다. 그래도 참새들은 틈틈이 몰래 드나들며 벌레들을 잡아먹고 까마귀는 싸우면서도 배를 채우는 것을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을 것 앞에서는 양보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떠들던 새들은 휴식을 취하는지 지금은 조용하고 언제 그들의 잔치가 있었는지 자취도 없다. 짐승들의 세계는 밥그릇 가지고 목숨 내놓고 싸우다가 배가 부르면 평화가 있는데 욕심 많은 인간사회는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인간은 먹을 것이고 입을 것이고 쌓아놓고 살면서도 더 많이 갖기를 바라며 만족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배가 불러도 먹고 과식해서 고생하는데 배가 부르면 미련 없는 짐승들한테배워야 한다.
새 한 마리가 계속 목청을 높이며 아직 오지 않은 식구를 부르는 소리로 동네를 깨우더니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28도가 된다는 일기예보다. 이렇게 더운 날이 며칠이나 더 있을지 모르니 오늘은 선텐을 해야 한다. 짧은 옷을 입고 마음껏 비타민 D를 섭취해야겠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뼈가 약하여 비타민을 따로 섭취하며 산다.
지난번 눈이 온 길을 걸어가다 발이 삐끗한 친구는 뼈에 금이 가서 거의 두 달 반을 꼼짝 못 하고 살다가 엊그제 에어 부츠를 벗었다 한다. 한번 잘못으로 봄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견뎌야 했을 그 친구가 지금은 좋아하는 골프를 칠 수 있어 다행이다. 한 번의 실수로 오래 고생했는데 햇볕을 많이 쬐고 뼈가 튼튼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가 구름 속으로 잠시 쉬러 들어갔는지 하늘은 구름을 덮고 있다. 조금 있으면 파란 얼굴을 하고 나올 것이다. 특별히 할 일 없는 날이지만 무언가 할 일을 찾으며 산다. 어느새 6월이 되었고 해 놓은 것도 별로 없이 보내는 세월이다. 허무하다기보다 이런 삶이 좋다. 하릴없이 하고 싶은 것 하고 급하지 않게 천천히 돌아가는 삶이 좋다.
살려고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고 살아남지 못할까 봐 밤잠 설치지 않고 사는 지금이 좋다. 경쟁하지 않고 남 잘되는 게 보기 좋고 잘하는 사람들에게 칭찬하고 손뼉 쳐 추며 사는 지금의 삶이 좋다. 남편과 함께 걷고 의지하고 웃고 드라마 보며 아무런 특별한 일없이 소소하게 사는 일상이 좋다. 매일매일 글을 쓰며 마음을 전하고, 글이 안 써질 때는 그림을 그리며 캔버스에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산다.
세월은 제 갈길을 가고 나는 내 삶을 살면서 고맙게도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는 새로운 하루를 만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