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어디서 왔나요? 언제 가시나요? 아무도 기다리지도 않는 그대는 왜 여기에 오셨나요? 여기저기 꽃소식이 전해지는데 봄은커녕 이곳은 한 겨울이다. 소리 없이 살며시 오는 눈이 언제 멈추려는지 적당히 내려야 할 텐데 한번 오기 시작한 눈은 그칠 줄 모른다. 어제 오후부터 오기 시작하여 밤새 내린 눈은 아직도 쏟아낼 눈이 남았는지 오늘 하루 종일 내린다. 올 겨울은 정말 따뜻하게 잘 넘어갔다. 눈도 별로 안 오고 날씨도 따뜻해서 겨울이 이만하면 살 것 같았는데 하늘도 사람처럼 가슴에 담아두지 못할 때가 있나 보다. 겨울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들어서 좋다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눈이 안 오기를 은근히 바란다. 별로 반갑지 않은 눈이다. 앞으로 눈이 얼마나 더 올지 모르지만 비나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겨울에 날씨가 푸근하여 비가 오면 더 큰일이다. 몇 년 전 겨울이 따뜻하여 눈이 녹아 빙판이 지는 바람에 남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던 기억이 난다.
하늘에 있던 구름 덩어리가 땅으로 내려온 것처럼 하얀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집 앞에 서 있는 등 굽은 소나무가 눈을 업고 있고, 늙은 자작나무 가지에도 눈이 편안히 앉아 있다. 이토록 많은 눈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밖을 내다본다. 하늘은 무심한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눈이 온 후에는 그저 집안에 꼼짝 않고 있는 게 대수이다. 걷다가 넘어지면 다치고 운전하다 자칫 잘못하여 사고라도 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눈이 많이 온 날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벌써 30년 전 일이다. 그날도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뒤뜰에 눈을 한쪽으로 모아 산처럼 밀어 놨는데 아이들이 그곳에 굴을 파서 얼음집을 만들었다. 세 아이들이 힘을 합치니 나름대로 튼튼한 집이 되었고 속으로 널찍한 방도 하나 만들었다. 세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보며 집으로 들어 간 나는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 보니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는 것도 몰랐다. 부리나케 나가서 애들을 불러도 아무 소리가 없어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얼음집을 보니 다 주저앉아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집 주위를 돌며 애들을 찾고 있는데 눈 쌓인 곳에서 눈이 조금씩 움직이며 눈덩이가 옆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며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때서야 혹시 하는 생각에 뛰어가 보니 얼음집이 무너져 아이들이 갇힌 채 밖으로 나오기 위해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삽으로 입구를 내어 아이들이 나와 별일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 하다. 그 아이들 이 커서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아 그때 아이들의 나이가 되어간다. 세월은 무심하게 30년이란 시간을 삼켜 버리고 아이들도 그때 나의 나이가 되었다. 눈이 오니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 오르고 그리운 추억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언젠가는 아이들도 제 아이들과 함께 얼음집을 지으며 옛날 어릴 적 이야기를 해 주며 웃으리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눈이 오면 남편을 도와 눈을 치고 출근을 해야 했다. 나는 차고 쪽과 뒤뜰을 맡아서 친다. 그날도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급하게 눈을 치기 시작했다. 몇 미터 앞에서 남편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찢는다. 나는 "남자도 넘어지네?" 하며 놀렸다. 그 후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나 역시 뒤로 발랑 넘어졌지만 얼떨결에 일어나 눈을 마저 치고 출근했다. 급하게 오느라 다친 줄도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아침에 남편을 놀렸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못 하고 하루를 넘겼다. 입이 방정이라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퇴근길에 하소연을 했더니 "남 놀리면 다 죄받는 거야." 라며 남편이 놀리던 생각이 난다.
눈을 다 쏟아 낸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족히 30-40 센티는 넘게 온 것 같다. 부지런한 남편은 벌써 눈을 치기 시작했으니 나도 빨리 거드는 시늉이나 해야겠다. 우리 집은 코너 집이라서 눈치울 곳이 많다. 차고와 집 주위의 눈을 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다. 눈이 멎은 뒤 48시간 안에 눈을 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는 법이 있으니 일단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을 먼저 치워야 한다. 여기저기 눈 때문에 전쟁이다. 지난달은며칠 째 기록을 깨는 한파와 폭설로 나라가 들썩거렸다. 뉴스로 보았던 캐나다 동부에 폭설이 75 센티가 넘게 온 곳이 있다 한다. 도시가 눈 속에 파묻혔다. 집도 차도 모두 눈이 덮어 버렸다. 군인들까지 동원되어 눈을 치우던 모습에 비하면 이곳에 온 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도 걱정, 눈이 너무 안 와도 걱정이다. 걱정을 달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더니 정말 오나가나 걱정거리다.어디서 왔다가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처럼 이곳의 겨울은 어디서 왔다 언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