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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14. 2021

오늘을 위한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사진:이종숙)


텃밭에 자라는 야채들이 너무 예쁘다. 새싹들이 세상에 나오고 자라는 것을 보면 예쁘고 귀엽게 잘 자라는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보는 것 같다. 작은 씨앗이 흙속에서 영양분을 먹으며 새 생명으로 세상에 나오는 모습은 정말 신비롭다. 보이지 않는 흙속에도 생과 사가 있고 아픔과 고통이 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삶이 있다. 씨를 뿌리고 며칠 안되었는데 손톱 만한 싹이 돋아나 좋아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눈이 와서 다 죽었다 생각하고 체념했는데 생명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그 매서운 바람과 차디찬 눈 속에서도 죽지 않고 버티며 자란다.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다. 비가 오고 바람 불어도 약하디 약한 뿌리로 넘어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보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죽을 듯하던 것들이 곤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을 보면 기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손톱보다 더 작은 이 제법 자라서 밭을 빼곡히 채우는 것을 바라본다. 저마다의 최선의 모습을 자랑하며 의젓하게 서 있는다. 눈부신 햇살을 받고 바람으로 강해져서 뿌리와 줄기는 나날이 굵어진다. 아침저녁으로 정성 들여 물을 주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듯이  예쁘게 자라 주어 너무 예쁘다. 깻잎과 부추, 쑥갓 그리고 호박과 파가 한쪽에서 자라고 갓과 상추 그리고 열무가 나란히 자라는 텃밭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도 행복하다. 고추 모종을 화분에 하나씩 여섯 개 심었는데 며칠 동안 비가 와서 기온이 내려가서 가을이 온 것으로 착각을 했는지 꽃이 피었다. 자라지도 않고 벌써 꽃을 피면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고추가 다 알아서 하겠지만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해마다 큰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추워도 걱정을 하게 된다.


 사다 먹으면 간단할 텐데 굳이 텃밭농사를 지으며 걱정하는 내가 웃긴다. 물값이 더 들어갈 텐데 굳이 이것저것 기르는 것은 그냥 자라는 것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달팽이 때문에 망쳤는데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것은 세상사 만이 아니고 땅속 사정도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난주에 며칠 동안 비가 오더 니 하루는 난데없이 콩알만 한 우박이 오는 것을 보며 한심했는데 그것도 잘 넘겼다. 창조주는 인간이 견딜 만큼의 고통만 준다더니 자연에게도 그런가 보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단순해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소리를 듣고 하늘을 보며 날씨를 이야기한다. 담장에 앉아서 짝을 부르는 새를 구경하고 지나가는 차를 바라본다. 뒤뜰에 앉아서 날아가는 새를 보고 꿀을 빨아먹는 벌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의자 밑으로 개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젊을 때를 생각한다.


(사진:이종숙)


영원히 살 것처럼 악착을 떨며 살았는데 아마도 젊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밭에 있는 야채들도 살기 위해 보이지 않게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어느 날 성장이 멈추며 열매를 맺으며  살아온 날을 뒤돌아 볼 것이다.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20대 청춘에 이민을 와서 그 힘든 삶을 어찌 살았는지 보이지 않는 이의 사랑의 손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세월도 그렇게 지나간 것처럼 앞으로의 삶도 나 혼자 만의 힘으로는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 믿음으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내게 온 모든 것들은 내가 뿌린 씨에서 얻은 열매다. 크고 작은 결과가 좋고 싫음을 떠나 축복이라 생각하며 오직 감사해야 한다. 갖지 못한 것에 연연하며 불평할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을 지키며 살아갈 때 참된 평화가 되어 돌아온다. 세상에 나와 여름 한철 살다가는 채소들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듯 내게 온 날들은 더없이 귀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파릇파릇한  채소들이 삶의 기쁨을 가르쳐준다. 사람들이 먹는 것으로 끝나는 그들의 삶에서 교훈을 얻는다. 햇살과 물과 바람과 비가 그들을 살게 하듯이 사람은 사랑과 감사와 배려로 위안을 받으며 살아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자랄 만큼 자라고 열매를 맺고 떠나는 그들처럼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생로병사의 이치를 따라 살다 보면 가야 할 길이 보인다. 하루를 살던, 백 년을 살던 삶이 있으므로 죽음 또한 맞아야 한다. 가지런히 서있는 야채를 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싱싱하게 자라는 것이 있고 벌레들이 먹어서 여기저기 구멍이 난 게 있다. 크게 자라는 것이 있고 제대로 잘 자라고 는 게 있다. 같은 햇볕을 받고 물을 마시는데 크고 작은 게 있고 일찍 죽는 게 있다.


너무 촘촘히 바짝 있어서 뽑아줘야 하는 것도 있고 멀리 혼자 있으며 잘 자라 꽃을 피우는 것도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씨를 뿌린다고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는  쑥갓이 안 나오더니 올해는 들깨가 하나도 안 나온다. 땅도 사람처럼 쉬었다 가야 하는가 보다.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과 대화하며 오늘 하루도 잘 넘어간다. 세대가 교체하듯이 석양은 내일을 위해 넘어가고 오늘의 태양이 되어 다시 떠오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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