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할 일이 없어 소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있다. 급할 것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어서 오늘은 그냥 쉰다. 구석구석 찾아보면 내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많지만 오늘은 유 박사와 구박사를 만나며 손가락 운동이나 해야겠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 이것저것 살핀다. 지속되는 코로나는 일상화가 되어가고 마스크를 쓰는 것도 이제 습관화가 되었다. 외출할 때 모자 쓰고 안경 쓰고 마스크 쓰면 화장도 필요 없다. 사람들도 만나면 거리를 두고 주먹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헤어진다. 오히려 마스크를 쓰면 마음이 편하기까지 하다.
사람의 버릇이나 습관이 시간이 길어지니까 당연하게 여겨진다. 가면무도회가 생각난다. 사람이 얼굴을 가리면 용감해져서 무엇이나 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하며 다른 사람이 된다. 마스크가 하나의 가면이 되어간다.
도저히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거리에 사람이 걸어가는데 얼굴에 까만색 마스크를 쓰고 까만색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데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성별조차 모르겠다. 웃음도 울음도 보이지 않는 로봇이 걸어가는 것 같다.
미래의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아 섬찟하다. 로봇시장이 발전한다고 한다. 앞으로 인력이 모자라 웬만하면 로봇이 인력을 보충한다고 하는데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아질 것을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다. 드론이 하늘을 떠다니며 사진을 찍고 물건을 나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만들지 못한 것들을 수년 안에 만들어지고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게 변한다. 나도 변해야 하는데 안된다. 세상이 편해져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간다. 모든 게 전기로 연결되어 스위치 하나면 다 해결된다.
몸의 근육은 운동을 해서 키워야 하는데 움직이기 싫어 앉아만 있다. 어쩌다 오래 걷게 되면 온몸이 다 아프다. 몸을 움직이며 하던 것들을 머리를 써야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상의 언어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져 소통을 할 수 없게 되니 모르는 사람만 답답하다.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배우고 나누며 살았는데 혼자 사는 세상이 되었다. 혼자 검색하고 혼자 앉아서 세상을 본다. 사회성도 떨어지고 삶의 질도 달라져간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워야 재미도 있고 지혜도 생기는데 혼자 해결하며 살아간다.옛날에는 어른들에게 배웠는데 지금은 어른이라도 가르칠 게 없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며 배우는 세상에 어른이라도 모르면 애들에게 배워야 한다.
지금은 공자왈 맹자왈 시대가 아니다.
그나마 유 박사와 구박사가 묻는 말에 정답을 가르쳐주기에 다행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할 줄 모르는 요리도 차근차근 잘 가르쳐주니 정말 좋은 세상이다. 하려 들면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다. 한국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영어나 한자를 많이 사용한다.
세상이 하나가 되어간다. 서양과 동양의 기준이 따로 없고 남녀가 구분이 없어진다. 남자들도 요리를 하고 여자들도 중장비를 운전한다. 백 년 사이에 세상은 요지경이 되었다. 상상도 못 하던 세상이 되어 적응하며 살아간다. 살아생전에 그런 세상 구경을 하며 살 수 있어 좋다.
살기 바빠서 아무것도 못하고 살았는데 요즘에는 원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좋다.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에 상관없이 하면 된다. 나이 들었다고 못할 게 없다. 머리를 쓰고 연구를 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천천히 하면 된다.
학교에 가서 배우지 않아도 구 박사가 다 가르쳐주고 유 박사가 다 보여 준다. 오늘도 나는 소파에서 편안하게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본다. 세상 사는 지혜도 배우고 역사도 배우며 나날이 발전한다. 더하기 빼기와 곱하기 나누기도 계산기가 다 해주고 손가락 하나로 명령하면 답이 나오는 세상이다.
모르기에 어렵지만 배우면 된다. 모르면 물어보고 해 보면 못할 게 없다. 남들이 하는데 나도 하면 된다. 누워서 뒹굴거리며 이것저것 들춰보니 다시 자신이 생긴다.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 천천히 장이나 봐야겠다. 운동 겸 동네 슈퍼로 걸어간다.
하늘이 맑고 푸르다. 좋게 생각하고 세상을 보자. 어차피 세상은 변한다. 나도 변해야 산다. 세월 따라, 세상 따라 살아가야 한다. 거부할 수 없으니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고 산다. 개성도 없고 감정도 없어진다. 소위 말하는 좀비가 되어간다. 좀비가 되지 않으면 꼼짝 못 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사회는 개인의 의무보다 집단의 권리를 위주로 한다. 말 잘 듣는 좀비가 많을수록 사회의 질서는 잡힌다. 좀비가 되기를 거부하면 갈 곳이 없다. 법과 규율로 규제하고 자유는 사라지는 세상이다. 생각하면 복잡하다. 코미디를 보고 웃고, 맛있는 것 먹으며 기쁘게 살면 된다.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가을이 가고 있다. 그만큼 봄도 가까워진다. 따스한 세상이 올 때까지 마음 편하게 유 박사와 구박사를 만나며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