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과 재회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따스한 봄날이다.

나무 끝에 연둣빛 싹이 하나둘 돋아나는 창밖을 보고 서있는 연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예정일이 일주일 남았는데 며칠 전에 신호가 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병원으로 달려와 엄마가 된 것이 연아는 꿈만 같았다. 아이를 낳으려면 1주일이 남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진통을 12시간 하다가 이슬이 비쳐 병원에 왔다. 남편도, 친정엄마도 없이 지구가 두 번 돌며 엄마가 되었다.




산모님, 아들입니다. 축하드려요.

정신없이 낳은 아기를 가슴에 안겨주고 금방 아기를 데려간 간호원의 말을 듣고 잠이 들었는데 몇 시간 뒤에 간호원이 아기를 데려다준다.


젖 먹일 시간입니다.


어떻게 젖을 먹여야 하는지 아기도 연아도 모른다. 아직 덥지 않은 계절인데 아기와 연아는 땀을 흘리며 젖을 먹이고 젖을 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기는 배가 고프고 젖은 퉁퉁 불어 갈 즈음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한다. 조금 먹더니 아기는 잠에 곯아떨어져 더 이상 젖을 빨지 않아 아기를 안고 보다가 연아도 깜빡 잠 속에 빠져든다. 자다 말고 깜짝 놀라 깬 연아는 아직도 깊이 자고 있는 아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높은 침대 위에서 아기를 딱딱한 바닥에 떨어뜨렸으면 어쩌려고 잠이 들은 자신을 생각하니 한심했다. 아무런 일도 없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아기를 낳은 날 저녁 무렵 연아의 남편이 일을 마치고 병원에 왔다.


당신 수고했어 고마워

우리 아기가 잘생겼네.

고생 많았지? 미안해. 회사가 바빠 오지도 못하고

정말 미안해.

응. 괜찮아요. 지금 왔잖아요.


연아는 남편과 함께 앙증맞은 작은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본다. 천진난만하게 잠에 빠져들어 자는 아기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9개월의 임신기간 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봄눈 녹듯 다 사라지고 눈앞에서 자고 있는 아이만 바라보면 너무나 행복하다.


입덧을 심하게 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연아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논바닥에서 잡은 붕어로 만든 매운탕뿐이었다. 먹는 대로 토하고 누워있으면 세상이 노랗다. 세상에 먹을게 천지인 데 어쩌자고 그녀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지 답답하다. 그렇게 막달이 되어갈 즈음 입덧은 끝났지만 남편을 따라 먼 곳으로 와야 했던 날들이 생각난다.




아기가 황달기가 있네요.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3일 정도 특별한 치료를 받으면 되니 걱정 마세요. 차를 준비하시고 보호자와 함께 갈 준비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남편이 금방 와서 아기를 데리고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큰 도시로 가서 아이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연아는 너무나 슬펐다. 큰 병이 아니고 황달기가 조금 있는 것뿐인데 왜 그리도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젖은 불어 아파오고 아기를 두고 오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연아는 배가 고프다. 오다가 식당에 들려서 햄버거를 사서 먹는데 어찌나 맛이 있는지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나 하며 맛있게 먹었다. 배가 부르니 다시 아기 생각이 나서 연아는 또 울기 시작했다. 올 때마다 퉁퉁 불은 젖은 흘러내려 가슴을 적신다. 하늘은 무심하게 파랗고 거리에 차들은 앞뒤로 바쁘게 달려간다. 한참을 달려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늦은 밤이었다. 연아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고 연아는 병원에서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꿈속은 부모형제들이 잔치를 한다. 음식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곳에서 연아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 곳을 몰라 갈팡질팡하며 헤매다가 꿈을 깼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아기를 볼 수 없다. 아기가 잘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그립다. 잔디는 아직 누런색이고 들판은 여전히 봄이 오지 않았어도 봄이 온 것은 확실하다. 나무들이 파릇파릇 하나둘 싹이 뜨고 양지쪽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일모레면 아기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는데 시간이 느리게 간다. 보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데려올 수도 없는데 마냥 보고 싶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아기를 안고 싶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들판을 바라보는 연아는 그리운 사람들 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부모 형제 친구들이 보고 싶은데 철창 없는 감옥에 갇힌듯한 자신이 너무나 슬프다.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외로움 때문에 견딜 수 없어도 하소연할 그 누구도 없다.



간호원이 샤워를 하라고 한다. 옛날 같으면 삼칠일 동안 몸조리한다고 난리일 텐데 아기를 낳고 곧바로 샤워를 하고 얼음을 둥둥 띄운 찬물을 가져다준다. 상처를 빨리 낫게 도움이 된다고 하며 열심히 물통을 채워준다. 친정 엄마가 옆에 계셨으면 펄쩍 뛰실 일이지만 하라는 대로 한다. 빨리 나아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고 싶다. 하룻밤만 더 자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연아는 혼잣말을 하며 창밖을 본다.

아무도 옆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냥 모든 것을 놓아두고 고향 집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 가서 밥만 먹고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미래를 생각하여 떠나왔는데 낯설고 외딴 무인도 같은 곳에 홀로 떨어져 사는 무력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후회스럽다. 이제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현실이 싫다.


삶이란 무엇인가?

부모님의 딸로 태어나 철없이 살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을 하다가 친정엄마처럼 연아도 엄마가 되었지만 세상에 그 무엇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꼼짝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간호원이 점심을 가져다준다.

아기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픈 게 신기하다. 밥을 먹고 나면 아기 생각을 하며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어디서 나오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그토록 뜨겁던 태양은 석양이 되고 또 다른 하루가 막을 내린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그리운 아기를 만난다. 하루아침에 엄마가 되었는데 그 많은 애정이 어디에서 샘솟는지 알 수 없다. 연아는 퉁퉁 불어 아픈 젖을 기계로 짜내고 아기를 만나러 간다. 불과 며칠이라는 시간이 몇십 년이 된 것 같은데 세상은 어제 본모습 그대로다. 차들이 앞서고 뒤서며 오고 가고 나뭇잎은 새싹을 만드느라 바쁘다. 며칠 만에 아기를 만나 아기를 품에 안은 연아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일주일 안에 일어난 만남과 이별과 재회를 생각하며 연아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아무것도 모르고 곤히 자는 아기의 얼굴에 살며시 뽀뽀를 한다. 3일간의 이별이 막을 내리고 기쁨과 웃음이 넘치는 만남으로 연아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하다.


아가야 네가 있어 엄마는 너무 행복해. 사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야 할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