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3-25.
새해맞이 산책을 나섰다.
이곳에 터를 잡았지만 상주하는 상태가 아니라 간혹 내려오면 집과 살림살이 때문에 산책이나 구경을 다닐 여유가 없었다. 한겨울이라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여유롭게 마을 산책이나 하자는 의견을 모으고 두 집에서 함께 마을로 걸어서 내려갔다. 차로 다녔을 때와 걸어서 다닐 때의 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은 느긋하게 관찰하는 기분으로 운동도 하고, 나는 오랜만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었다.
우복동은 행정동이나 법정동이 아니다. 어쩌면 역사 속에 묻혀있는 지명이다.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조선십승지의 하나로 이곳을 우복동이라고 불렀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곳이 그 우복동이 맞다고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5km 정도 떨어진 상주 화북면 일대와 용유리도 우복동이라고 한다.
다만 나는 우리가 있는 광정 마을과 그 안쪽을 우복동이라고 우기고 싶다. 도로명 주소가 만들어질 때 선견지명이 있는 누군가가 이곳을 지나는 길을 우복동길이라고 명명했다. 나는 우복동길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돔이 설치되고 바로 도로명 주소를 신청해서 받았다. 이제는 지번 대신 도로명주소로도 검색이 되고 택배 주소로 입력할 수 있게 되었다.
우복동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을의 끝부분에 부도탑이 있다. 아마도 원적사 소유 토지로 스님들의 부도탑일 것이다. 별도의 설명이 없고 표지석도 없다.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다. 기회가 되면 원적사 스님께 여쭤봐야겠다.
이 골짜기의 가장 안쪽 마을은 동쪽은 문경 농암 내서리이고, 서쪽은 상주 화북 용유리다. 작은 냇가(계곡)를 경계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간을 우복동길이 지나고 이 길은 상주시 관할이다. 우리 밭을 지나는 우복동길은 우리 관할인데 왜 민간토지가 길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우복동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병천 녹색농촌체험마을이라는 곳은 영농조합에서 농작물을 선별하는 창고가 있는 곳이다. 옆에는 계곡물을 모아두는 계류지를 만들어져 있다. 이용객들에게 비용도 받았던 곳 같다. 그 앞에는 청화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역사성은 크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 지었다는 안내문이 있지만 안내문도 정자도 관리가 되지 않고 있고 낡은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조금 더 내려가면 내서리 광정 마을(문경시 농암면)이 나타난다. 상당히 오랜 기간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느낌이 확드는 옛고을이다. 입구에는 성황당(서낭당)과 당산나무도 있고, 보호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마을이라는 느낌이다.
이곳에는 복수초가 있다고 한다. 복과 장수, 그리고 부유와 행복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하니 어느 겨울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안내판을 보면 직업병이 도진다. 분명 문경시에서 제작한 것 같은데 오류들이 있다. 영조대왕을 왕조대왕으로, 영도대와로 표시되어 있다. 평산 신씨가 주로 살고 있다를 평산 신씨로 주로 살고 있다고 오타도 보인다. 좀 더 신경을 쓰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시루봉이 잘 보인다. 산 능선에 우뚝 선 암석이 꼭 시루를 닮았다고 하여 시루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루같이 보인다. 언젠가 한 번 올라가 볼 생각이다. 아마도 시루봉에 올라가 보면 이곳이 소의 뱃속 같은 모습일 것이다. 우복동(牛腹洞)은 소의 배(애기보, 자궁)처럼 안전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지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산책과 출사, 관찰과 탐구,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야 해본다. 조선십승지 우복동의 면면을 기록으로 남길까도 생각하고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 좀 더 확대하면 속리산 동쪽 화북면 일대인 용유리와 동천, 그리고 농암면 내서리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