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이 부른다.
2023년 4월, 6개월간 매주 함평으로 향했던 여정이 끝났다. 기본학교를 졸업식에서 각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의 마지막에 난 이렇게 발표하며 다짐했었다.
건너가자. 두렵더라도 이 따뜻한 번데기에서 나가자. 그리고 내 본능을 믿고 욕망에 달려들어 보자. 내가 나방이든 나비이든 그것도 아닌 그저 벌레였어도 이 껍질을 찢고 나가 욕망에 돌진해 볼 테다. 그렇다면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교사로서의 삶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안정적인 직업인가? 그래 이게 바로 내 껍질이구나. 내가 날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구나. 빠르게 결론이 났다.
"교사를 그만둬야겠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기본학교 친구들 말고 거의 모든 친구가 미쳤냐는 반응이었다. 바로 이거다. 내가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아르헨티나로 향할 때의 반응.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친구들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이게 맞다! 이 결정이 또 어떤 두려움과 핑계로 물러서기 전에 밀어붙여야 했다. 실질적으로 교사 생활을 마치게 되는 2024년 1월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내가 가기 꺼려하는 곳으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비자고 입국수속이고 가기 참 번거로워 나에게 '여행'으로서는 딱히 매력도가 없다. 이상하게 미국으로 향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마침 에어프레미야라는 항공사가 새로이 취항하며 저렴한 티켓이 나왔다. 티켓을 둘러보다 LA행 티켓을 구매했다. LA에 좋은 기억이 없는데, 그냥 LA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난 스탑오버를 위해 LA에 두어 번 간 적이 있다. 좋은 기억이 없다. 공항 직원들은 불친절하고, 대기시간은 속절없이 길어졌다. 그런데도 그냥 LA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동일이에게 LA에 가게 되었다. 학교 교사는 그만둘 것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게 너 CES 보러 가냐고 되물었다.
CES? 그게 뭔데?
'세계가전박람회! 너 VR에 관심 있다며~'
아 그거 알아 그걸 LA에서 해?
'아니 라스베이거스!'
아 나 LA 간다니까!
'LA랑 라스베이거스 바로 옆이야'
아!?????
그렇다. 내 본능이 날 CES로 이끄는구나. 신비롭게도 그래서 난 CES로 향하기로 했다. 신비로운 이유는 내가 평소에 VR 노래를 부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난 차세대 미디어기기는 분명 VR이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고 다녔고 VR과 축구를 연결하고 싶다는 뚜렷하지 않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신비로운 힘은 내 주변에게도 영향을 줬다. 기본학교 동기이자 섬세이 회사 대표인 창혁이 형에게 이 말을 전했다.
형 나 저번에 LA행 비행기표 샀다고 했잖아. 그때 CES 한데 그거 보러 갈 거야
'아 그 날짜래? 들어봤지~ 좋겠네. 나도 같이 보러 갈까?'
아니 형은 나가야지. 출품을 해야지. 섬세히 끌고 나가야지. 거기에 그냥 성수동 테라리움을 만들어!
기획할 것도 없구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갑자기 애드리브로 생각난 아이디어를 1시간가량 쏟아냈다. 창혁이 형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줬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한낱 교사인 사람이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신나게 떠드는데 창혁이 형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태며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사실 허공에 떠다닌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결국 다 비슷비슷하지만 그걸 캐치해서 실행하는 사람이 임자란 말이다. 내가 아니었어도 분명 누군가 창혁이 형에게 CES에 대해서 말했을 거다. 그걸 캐치하고 실행에 옮기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대단했다. 반대로 나에게도 이런 아이디어를 던지는 사람이 분명 존재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듣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아이디어를 받아내는 귀를 키워야겠다고 반성한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나는 내일 라스베가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