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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Sep 16. 2024

언니와 오이소박이

아파트 입구에 있는 교회건물 안에는 나의 아지트가 되어준 조용한 카페가 있다.

체육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티타임 약속 때문에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페로 연결된 통로문을 열고 1층 계단으로 올라왔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언니는 두 팔에 가려진 하얀색 노트북 위에 펼쳐놓은 책을 마주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책상을 톡톡 치자 고개를 들고 “왔어요?” 하며 웃는다.

 


    

언니와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다.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 존대를 하며 어느 정도의 거리와 선을 지키는 조금은 특별하지편하고 익숙한 관계다.

나이 차이도 제법 있는 언니라서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도 좋은데 언니는 달랐다.

아무리 동생이어도 일방적으로 대화를 주도하거나 연장자라는 권위를 앞세우지도 않았다.


상대가 얘기하지 않는 예민한 부분을 일부러 캐묻는 법도 드물었다.

보통 여자들의 흔한 대화 속에 등장하는 가진 것에 대한 과시나 불필요한 자랑도 하지 않았다.

친한 사이에 생기는 사소한 오해나 미묘한 질투심이 거들지 않으니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관계가 된 셈이다.



 

언니는 얼마 전 관심 있는 분야의 시험에 도전할 정도로 늦은 나이에도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시험이 끝난 여유로움으로 오랜만에 찻잔을 마주하며 서로의 근황토크를 주고받았다.

다가 올 추석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는 명절음식 준비와 요리에 대한 대화흘렀다.


나보다 훨씬 전업주부로 선배인 언니는 추석에 가족들을 위해 LA갈비와 고구마줄기 김치를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는 넘사벽이다.

언니는 오이소박이까지 만들 생각이라며 곧 마트에 들를 예정이라고 했다.

     

‘오이소박이’라는 말에 왠지 친근해서 귀가 더 열렸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에게 유일하게 배웠던 김치가 오이소박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석연휴엔 시댁식구들과 가까운 펜션에서 1박 2일로 바비큐파티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곁들일 메뉴를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음이 통했던 우리는 교회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가까운 이마트로 향했다.

구입목록 위주로 망설임 없이 카트에 담는 장보기 습관도 우리의 관계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언니를 먼저 내려주고 도착한 집의 식탁 위에 오이소박이 재료들을 내려놓았다.

오이소박이 도전이 부담 없는 이유는 재료들의 단출함에 있다.

오이, 부추, 양파, 당근이 순서대로 싱크대에서 세척과 헹굼을 경험하고 도마 위에 올랐다.

     

오이는 양쪽 꽁지를 자르고 삼등분해서 열십자로 칼집을 넣는다.

열십자 모양은 주방집개를 V자로 눕혀서 그 사이에 자른 오이를 세워 놓고 칼집을 넣으면 밑동이 잘려나갈 걱정이 없다.

칼집 낸 오이 사이사이에는 굵은소금을 넣어준다.

신화당과 소금을 녹인 물 한 컵 정도를 살살 뿌려주고 약 2시간 후에 절여진 오이를 물로 헹궈준다.

2cm 크기로 썬 부추와 가늘게 채 썬 양파와 당근을 갖은양념(고춧가루, 까나리액젓, 마늘, 생강, 매실액 등)과 함께 잘 섞어서 준비해 둔다.

추가로 밀가루풀을 만들어 세 스푼 정도 넣어주면 양념이 꾸덕해서 좋은데 없어도 무방하다.

여기까지 준비가 되면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온 거나 다름없다.

     

칼집 낸 쪽이 아래로 가도록 물기를 뺀 오이에 부드럽게 숙성된 양념소를 켜켜이 넣어준다.

밀폐용기에 차곡차곡 담기는 오이소박이의 가지런함이 아주 흐뭇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된다.

완성된 오이소박이 사진을 형님과 시누이들이 있는 채팅방에 올렸다.

비주얼은 벌써 맛있어 보인다며 엄지 척이 올라왔다.

며칠 후 시댁 가족모임에서 오이소박이 맛의 평가는 어떨지 조심스럽다.

     

오이소박이 속 양념들이 만들어 낼 숙성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일은 마음속 응원을 보태는 것뿐이다.

‘맛있게 했고 맛있게 익는 중이고 결국 있게 될 것이다’ 

     

x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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