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동시장 갈까?
라는 남편의 말에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시댁 작은아버님 내외분이 오시기로 되어 있어서 명분 있는 맞장구를 쳤더니 남편의 어깨가 춤을 춘다.
평소 남편은 전통시장을 좋아해서 근처에만 가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사람이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시장 상인이셨던 시부모님의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집 근처 시장을 드나들며 익숙한 냄새와 인정에 길들여진 탓이려니 짐작했다.
그런 이유인지 서울에 있는 남대문시장, 광장시장, 통인시장, 경동시장은 물론이고 부산에 여행을 가더라도 국제시장, 깡통시장, 자갈치시장 등을 빼놓지 않는다.
전망 좋은 관광지나 핫플레이스를 가고 싶은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아 심통이 난 적도 종종 있었다.
남편이 운전을 해서 주말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하니 종로를 지나 경동시장까지 막힘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약령시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조금 걸어 나와 경동시장과 마주한 횡단보도에 멈춰 섰다.
서울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경동시장'은 오래된 시장 특유의 분위기 그대로 마치 외부와 단절된 다른 세상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낡은 경동시장 2층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눈에 띈 동그란 스타벅스 마크만 말끔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1960년에 지어진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서 매장명 자체도 이렇게 되어 있었다.
일찍 집을 나섰던 우리 부부는 티타임을 핑계 삼아 호기심을 데리고 스타벅스가 있는 2층으로 첫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자 극장 느낌을 그대로 살린 묵직한 출입문을 만났고 레트로 감성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매장에 들어서기에 앞서 '금성전파사 새로고침 센터’라는 LG전자 팝업부스도 추억을 부르는 볼거리였다.
전시된 브라운관 TV들을 보면서 어릴 적 시간여행을 온 듯한 반갑고 정겨운 마음에 감탄사가 나왔다.
생각보다 스타벅스 내부는 넓고 웅장한 데다 2층은 오페라극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층고가 높아 보였다.
이른 아침이어서 운 좋게 빈 테이블이 있었겠다 싶을 정도로 독특한 인테리어와 감성을 즐기며 따뜻한 커피잔을 들었다.
계단을 내려와 본격적인 경동시장 장보기에 돌입했다.
남편은 장바구니 대용으로 커다란 등산배낭을 메고 바퀴 달린 접이식 카트까지 손에 들었다.
내가 서울페이로 물건값 계산을 하고 있으면 알아서 척척 빛의 속도로 나누어 담아 주었다.
전통시장 나들이를 할 때면 평소답지 않게 놀랍도록 잔소리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된다.
역시 좋아하고 끌리는 전통시장에서는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하는 남편이 신기해서 웃음이 났다.
남편과 경동시장 장보기를 경험한 지도 벌써 세 번째다.
워낙 넓고 방대한 시장이다 보니 올 때마다 새롭고 반가운 식재료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었다.
길 눈이 밝은 남편 덕분에 된장과 장아찌 등을 파는 곳을 찾아 오랜 손맛의 할머니 된장을 살 수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다진 청양고추와 매실청과 참기름을 넣어 쌈장을 만들었더니 놀라운 장맛이 났다.
어쩌면 재구매를 위해 계속 경동시장을 찾게 될 맛있는 이유가 될 듯싶었다.
처음 경동시장을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다녀와서는 투박한 봉지에 담긴 식재료들을 일일이 꺼내서 소분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귀찮았었다.
하지만 나의 귀찮음을 삼킨 가장 큰 매력은 온라인 새벽배송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착한 가격과 재료의 신선함을 직접 보게 되는 즐거움이었다.
무거워서 차마 더 담지 못한 식재료들이 눈에 밟힐 정도였다.
냉장, 냉동식품이나 밀키트 같은 즉석요리보다는 로컬푸드와 푸드마일리지를 자랑하는 싱싱한 식재료들과 눈을 맞추는 건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전통시장 장보기는 탄소발자국을 줄인다는 뿌듯함과 흉내 낼 수 없는 장인의 손맛 때문에 왠지 자석처럼 이끌렸다.
오늘은 양념게장과 양념깻잎, 파김치와 강된장, 조기 20마리와 서대 10마리, 찐 옥수수와 모시송편, 과일 등이 장바구니에 담겼다.
시장투어로 입꼬리가 올라간 남편과 함께 착한 식재료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달리는 차창 밖에는 파란 가을하늘과 어울린 흥인지문(동대문)과 성곽의 멋진 풍경까지 덤으로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