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친구 두 명을 초대해서 오랜만에 집밥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화장실 거울에 튄 작은 얼룩도 입김을 불어 휴지로 깨끗이 닦았다.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거실과 주방을 오가는 발걸음은 빨리 감기를 한 듯 바빠졌다.
비상계엄해제 이후 사회적 큰 이슈 앞에서 친구들 모임조차 조심스러운 연말연시가 되었다.
내일 있을 대통령 탄핵 2차 국회 표결을 앞두고 불확실한 뒤숭숭함이 마음을 눌렀다.
한 친구는 여의도를 통과해서 마포대교를 건너오는 버스를 타야 했다.
혹시 모를 교통 변수를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 친구가 제일 먼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친구들과 향이 좋은 따뜻한 녹차를 웰컴티로 마시며 서로서로 반가움의 눈빛을 교환했다.
식탁에는 조촐한 반찬과 잘 숙성된 김장김치를 놓고 곰탕에 밥을 말아 점심도 뚝딱 먹었다.
창밖 햇살이 환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무렵 우린 소화도 시킬 겸 가까운 집 근처를 걷기로 했다.
새롭게 조성된 효창공원 둘레길을 걸으며 나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동네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후문을 걸어 나와서 경로당 앞을 지나면 투박하고 작은 모퉁이 텃밭이 나왔다.
시선을 훔치는 예쁜 꽃들이 피었다가 다시 녹색 쌈채소들로 채워지곤 했던 아름다운 지구 한 모퉁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버스 정류소가 있는 계단을 내려오면 새로 포장된 일방통행로와 깔끔히 정비된 거주자 우선 주차구획선을 볼 수 있었다.
필요이상으로 넓었던 일방통행로를 좁히고 양쪽 보도의 폭을 확장시켜서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고 있었다.
예전엔 주차된 차들 때문에 파묻힌 시야가 불안했었고 비좁은 보도가 불편했던 곳이었다.
친구들은 집 가까운 곳에 이런 공원 둘레길이 부럽다며 기대 이상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며 대한노인회입구를 지나자 특별한 간판의 중국집인 ‘신성각’이 나왔다
수요미식회에도 나왔었고 수타짜장면을 파는 since 1981년이라고 쓰인 노포맛집이었다.
다른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80년대 그대로의 간판과 맛과 착한 가격으로 남다른 신념이 느껴지는 곳이다.
외관이 독특한 디자인의 ‘BAROS’라는 하얀 건물은 개그우먼(안선영)이 건물주라고 ‘효공김밥’ 할머니가 귀띔해 주신적이 있다.
‘OTO커피’, ‘고효동커피’ 등 동네 브런치카페들도 왼편에서 우리가 걷는 속도대로 스쳐갔다.
멀리 구립 용산노인전문요양원 간판이 큰 글씨로 보이기 시작했다.
워낙 대기인원이 많아 입소가 힘들다며 100세의 친정엄마를 모시는 옆집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떠올랐다.
우린 요양원 맞은편에 있는 공원출입구로 들어갔다.
걸음을 따라오는 낙엽의 바스락 소리는 걷기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
농구장과 놀이터가 아래로 보이는 평지에 이르면 조금 생뚱맞게 커다란 ‘원효대사’ 동상이 나타난다.
원효대사 동상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오곤 했다.
80년대에 발표된 민혜경의 ‘서기 2000년’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간
우리는 로켓을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이하생략)
노랫말 속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가득 담겨서 어린 나이에 기대감이 높았었나 보다.
초등학교 5학년때 나와 반친구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런 약속을 했었다.
"우리 반은 서기 2000년 1월 1일 낮 12시 정각에 효창공원 원효대사 동상 앞에서 만나는 거다!"
몇 명이나 그 약속을 기억하고 기다렸을지 원효대사 동상에게 묻고 싶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소환되는 순수하고 풋풋했던 어릴 적 기억이었다.
원효대사 동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약속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비슷한 생각이 끼어들었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약속한 서기 2000년의 만남은 순수한 희망을 미래에 확인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어른이 되어 내일(2024년 12월 14일 오후 4시)의 시간적 의미는 그 시절 마음과 닿아있었다.
오늘도 촛불집회가 있는 여의도 교통상황을 생각해서 친구들을 조금 일찍 배웅해 주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