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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나눔 Nov 13. 2022

세 잎 클로버

       

우리는 누구나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고 한참 들판을 헤메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외치면 더 눈이 벌개서 찾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지 못했다.

드물게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기념하듯이 책갈피에 넣어 두던지, 고이 모셔두었다.

찾아온 행운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듯이.

반면, 세 잎 클로버는 지천에 널려 있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고 책깔피에 넣고 고이 보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파리 하나가 모자라서 슬픈 식물이여!


그런데, 만일 네 잎 클로버가 지천에 널려있고 세 잎 클로버를 발견하기 어렵다면, 상황이 정반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세 잎 클로버를 발견하면 환호를 지르고 행운의 상징은 뒤바뀔 것이다.

이 사례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행운이란 ‘드물게 발생되는 좋은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럼, 행운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일상’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다.

네 잎 클로버를 오랫동안 찾아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평소와 같은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에게 ‘일상’이 언제부터인가 행운의 반대로 다가 왔다.

그리고 그 일상에 대한 부정이 더 깊어지면 결국 ‘불행’의 동의어로 까지 변할 수 있다.

마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과 같다.

이것은 침체와 무료가 우울로 변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네 잎 클로버를 행운, 세 잎 클로버를 불행하다는 구도를 형성하면, 우리는 전체적으로 불행해지기 쉽다.

네 잎 클로버는 자주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네 잎 클로버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된다.

대신에 세 잎 클로버를 가지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발견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현명하다.

이것을 ‘일상의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일상은 반복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이나 이벤트가 제외된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제 겪었던 일들을 오늘 또 겪는다. 작년에 겪었던 일들을 금년에 또 겪는다.

수험생이라면, 매일 도서관을 가는 경험을 반복한다.

전업주부라면, 남편을 배웅한 후, 빨래하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저녁 준비를 하는 경험이 반복된다.

직장인이라면,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유사한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다.

사업가라면 수년째 같은 고객들을 위해서 서비스를 한다.

주부로서, 남편으로서, 수험생으로서, 학생으로서, 사업가로서, 직장인으로서 유사한 것들을 반복적으로 겪는다.

그것을 일상이라고 하고 재미없고 무료하고, 더 나아가서는 불행하다고까지 느낀다.


그래서 일상의 재발견이 필요한 것이다.

세 잎 클로버를 가지고도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법.

이것을 위해서는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바라보고 듣고 접촉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어제와 거의 똑같은 하루이지만, 자세히 집중하면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제와 같은 창가에 다가온 햇살이지만, 분명 이 햇살은 어제의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똑같아 보이는 만원 전철 안도 어제와는 분명히 다르다.

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동료들의 웃음소리, 커피의 농도,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고객들의 목소리는 어제의 그것들이 분명히 아니다.

더 자세히 몰두하면, 나 자신도 기분, 복장, 마음가짐, 내적 성장 등 어제의 내가 분명 아니다.

모두가 세 잎 클로버들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네 잎 클로버와 같다.     


우리는 즐기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경기를 즐긴다. 그리고 탁월한 역량을 발휘 한다.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선수인 손흥민은 경기를 즐기고 있다.

팀이 경기에 진 날은 상심하는 빛이 보이지만, 상대편 선수들과 허그를 하고 관중에 인사를 하며, 다음 날 연습할 때는 곧바로 웃음을 되찾는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경기의 승패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했다면, 당당하고 즐기라고 주문했다.

그는 의기소침 하기보다 경기 자체에 의미를 두며 잘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해 나간다.

탁월한 스프츠 스타들을 보면, 자신감이 있고 경기를 즐긴다.

잘해서 즐기게 된 것인가, 아니면 즐겨서 잘하게 된 것인가?

둘이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일상은 누구보다도 반복적이고 무료해 보인다.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서 유사한 훈련을 하고 절제된 식사를 하고, 유사한 시간에 자며 개인의 자유가 통제된 일상을 반복 한다.

그들이 그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행을 느꼈다면, 그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세 잎 클로버를 매일 재발견했고 행운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행복을 거머지게 되었다.


사업가의 세 잎 클로버는 조금 다르다.

사업 환경은 매번 바뀐다.

내가 주원인인 된 환경과 함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환경, 즉 금리, 환율, 물가, 물류 비용, 정부 정책, 국가간 갈등 등도 적지 않게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의 변화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건일 수 있지만, 사업가에게는 ‘일상’이다.

어제의 사업 환경은 오늘과 다른 일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고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업가의 하루는 반복된다.

그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면, 행복에서 멀어진다.

사업가 중에 활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으며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세 잎 클로버를 받아 의미를 부여하고 행운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 느낌에 영향받는 사람들이 회사에 모여들고 회사는 번영한다.

일상의 재해석이 즐거움을 가져오고 즐거움이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세 잎 클로버를 매일 재발견했고 행운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행복을 거머지게 되었다.


세 잎 클로버는 자족하는 삶이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것이다.

특히,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저항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부정할 수는 없고 바꿀 수는 없다.

부모님이 물려준 DNA를 바꿀 수 없다.

천재 지변을 탓할 수는 없다.

나의 현재는 주어진 것들과 내가 만든 것들의 합이다.

그래서 나의 현재에 경의를 표하자.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면, 스스로를 위안하고 현재에 웃음을 보내자.

나의 현재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새로운 발견을 하자.

물론, 불만을 가지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노력은 좋은 것이다. 무언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권장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족은 발전을 위한 노력이 배제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해온 것들을 누리는 것이고 또다른 도약을 위한 멈춤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통해서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행복의 척도로 삼지 않으려는 다짐이다.

비교에 의한 충족은 또 다른 갈망을 낳아서 결코 행복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 잎 클로버는 감사다.

주어진 것에 고마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식이라면 부모님에게 받을 재산이 없음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나를 태어나게 하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하자.

이룬 것이 없다고 느낄 때, 건강한 몸이 있다면 그것에 감사하자.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갈 곳이 있음에 감사하고 동료들과 함께 일함에 감사하자. 고객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나간 한가한 시간에 클래식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줄거움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자.

세계 6위의 국방력과 11위의 국력을 보유하여 어느 나라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국가가 있음에 감사하자.

세계 1위의 인터넷 속도로 끊김없이 어느 곳에 있든지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국토의 70%가 산으로 덮여 있어서 어느 곳에 살든지, 특히 대도시에서도 전철로 이동하여 등산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우리 고유의 언어가 있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것에 감사하자.

굶지 않고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전쟁의 폐허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가장 빨리 부유하게 된 것과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된 것에 감사하자.

감사는 파면 팔수록 솟아나는 샘과 같다.

우리가 파지않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흙으로 덮으려고 할 때도 있다.


세 잎 클로버는 지천에 널려있다.

누군가는 세 잎 클로버를 밟고 다니며 여전히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메고 있다.

지천에 널려있는 행운은 그냥 밟혀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세 잎 클로버를 들고 기뻐하며 환희를 느낀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 만든다.

일상이 네 잎 클로버가 되는 것이다.

일상이 행운의 연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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