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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Mar 29. 2021

No Plan is our plan

 오늘의 나를 있게한 우리의 선택

No Plan is our plan

우리 가족에게 가훈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No Plan is Our Plan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오해는 마세요. 그저 무계획적으로 놀고 먹자는 한탕주의는 아니랍니다. No Plan is our plan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건 남편과 제가 처음 만나서 면서 부터 였습니다. 캐나다 어학연수 끝무렵에 만난 우리는 딱 2개월 반을 만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아무리 좋다해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하는데, 한국과 스위스 사이의 그 먼 거리를 우리가 극복할 수 있을까? 각자의 자리도 돌아가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어쩌지? 이 많은 난관을 극복한다 해도 우리는 다시 볼수 있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걱정....그 때 우리가 서로를 격려하던 말이 No Plan is our plan 이었습니다. 너는 너의 집으로,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가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자.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우리는 그 후로 3년이란 시간동안 연애를 하고, 그 후 11년째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으며, 4개국을 넘나드는 이사를 하면서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고 있습니다.


미리 계산된 가능성, 그게 전부일까요?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기 전,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쳐보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당시 우리가 가늠할수 있었던 우리의 가능성은 아마 0.00000001 정도, 뭐 개미 눈꼽만 했겠죠. 없다시피한 그 가능성을 보고는 지레 낙담하고 걱정하면서 우리 사이를 비관했겠죠. 그러다 헤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때 미리 계산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무리 내가 켜켜이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착실히 쌓아 왔다 하여도, 그것을 바탕으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내일, 내일 모레, 내년이라는 시간 곳곳에 숨어 기다리고 있는게 삶이잖아요. 머리로는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믿지 못하는 것 뿐이죠.  어릴적 소풍가면 종종 하던 보물찾기 놀이 기억나세요? 우리의 인생이라는 소풍길에도 이런 예상치 못한 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어요.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장 빠른시간에 가장 안전하게 가는 길을 미리 계산에 놓고 그 길로만 간다면,   풀섶 돌맹이 아래에,  고목나무 껍질 사이에 숨어있는 보물쪽지는 발견할수 없겠죠. 그리고 그 보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건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보물찾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수 없는 것들이고요.


No Plan 말고 Yes Plan 갖고 싶다고!!!

말이 씨가  된다고 하죠? 우리가 하도 No Plan is our plan이라고 하고 다녀서 그런지 우리 가족은 아직도 장기계획을 세울수 없는 떠돌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남편은 학위와 연구생활을 위해 보통 2-3년 단위로 대학을 옮겨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이사를 다니게 되었는데, 이사도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사가는 수준이 아니라, 대륙과 바다를 넘나드는 스케일로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남편과 둘이서 호기롭게 잘 돌아 다녔습니다. 각자 20킬로짜리 가방 두개만 야무지게 싸면 불편하지 않게 이사짐을 챙길 수 있었고, 새로운 곳에 가서는 내 몸과 마음만 잘 건사하면 문제 될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2년전, 3달 만에 갑자기 남편의 다음번 직장이 독일로 결정되면서 처음으로 이제 NO Plan 말고 YES Plan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No Plan 유목생활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애들이 둘이다 보니 이삿짐은 무슨 버섯인 마냥 소리없이 곱절도 넘게 불어나 있고,  애들 유치원, 학교, 병원 등등 헤쳐나가야 할 서류와 온갖 행정 절차는 스무고개 수수께끼 마냥 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어라고는 구텐탁, 당케 밖에 모르던 저는 하루 아침에 말그대로 눈뜬 봉사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한바탕 이사소동을 치른 후, 문맹 신세를 벗어나고자 어학원에서 독일어 왕 초보반에 등록하고 나오는데 괜히 기운이 빠졌습니다. 나, 지금 독일어 처음부터 배워서 언제 잘 할수 있게 될까? 그게 가능하기는 해? 언제 또 이사갈 줄 모르는데 이거 배워서 소용이나 있을까? 가능성을 점쳐보니 괜히 움츠러들고, 움츠러드니 안락한 둥지를 틀어 평생 그 안에 날 살게 해줄 아주 장기적이고 탄탄한 Plan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행복에서 멀어지는 가장 쉬운 방법

이상하게 시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탄탄한 플랜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는 우울해 졌습니다. 왠지 나만 그런게 없는것 같고, 앞으로도 갖기 힘들것 같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행복하지 못할것만 같은 그런 우울함. 그런 우울한 생각이 해도 짧고 낮은 구름으로 온 세상이 음산한 겨울에 들어 저는 말 그대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 봐도 우중충, 커튼을 제껴 창밖을 바라봐도 우중충, 땅에는 헐벗은 나무와 누래져버린 풀들로  우중충, 해가 있는 지 없는지 희뿌연한 하늘도 우중충....정말 내일에 대한 기대나 설렘은 내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온 세상을 쥐어 짜 본들 한방울도 나오지 않을것 같았습니다. 아 이럴땐 왜 그 흔하디 흔한 햇님도 얼굴을 비춰주지 않는 거야? 내가 지금 갖고 있는건 살기위해 당연한 거고, 난 지금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그 무언가가 필요해. 그래야 내가 진정 행복해 질 수 있어. 난 견고한 장기 플랜이 필요하고, 햇살 가득한 날씨가 필요해. 행복해지려면,,,,그러나 전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플랜은 No Plan

하지만 그런 안전빵 플랜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요? 없죠, 없어요. 특히나 외국에서 이리저리 이사 다녀야 하는 삶을 선택한 제 인생에는 더더군다나 없겠지요. 비단 저 뿐이겠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어릴적 장래희망을 이룬 친구들 이라 하더라도 내일은 알수 없는 거 잖아요. 아무리 튼튼 탄탄 천하무적의 둥지를 지었다 하더라도 태풍이 불면 흔들리기 마련이고, 떨어지는 우박이나 나무 열매에 군데군데 구멍도 날테고 시간이 지나면 낡다 못해 삭아 없어지는건 당연한 건데... 그런건 없는 거죠? 없는 거라고 믿어요. 2년 전만에도 이렇게 독일에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보다 2년 전에는미국으로 이사가리라 상상도 못했고, 그보다 2해 전에는 제 인생에 제 직장이 없는 날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으니까요. 만약 제가 완벽한 플랜이 있었고, 그 안에서만이 행복할 수 있는 인생계획이 있었다면 오늘의 행복한 저는 없는 거겠죠? 새로운 곳에서 잘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행복,  다 커서 맛보는 문맹탈출의 짜릿함, 여기서도 뭐든 씩씩하게 잘 해보려하는 나를 발견할때 느끼는 대견함 등등. 예상치도, 계산치도 못했던 선물같은 오늘의 행복함. 이게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잖아요. 또 이게 2등짜리행복도 아니잖아요.그래서 다시 No Plan is our plan을 외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같은 지금 이순간에 감사하며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물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를는 미래에 대해 약간의 대비는 해야 겠지만,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대비는 반도 더 해놓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번생에는 NO Plan이 제게는 가장 좋은 Plan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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