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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Feb 26. 2021

엄마의 보름밥

나의 소울푸드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내 나이때도 동짓날과 정월대보름날에 팥죽을 직접 쑤고 오곡밥과 나물을 해서 온 가족이 모여 같이 먹었다. 그리고 옆집, 앞집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추운 겨울이 싫었지만 엄마가 해준 팥죽과 보름밥 덕에 어렸을 적 겨울의 기억은 따듯하고 정겨웠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서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혼자 나물을 만들고 팥죽을 쑬 엄두는 나지 않는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어디서 쉽게 사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왠만한 음식은 다 해먹지만 보름밥은 여럿이 모여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나 혼자 부산떨며 힘들게 준비해서 먹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 나는 무엇보다 사람없고 도움 받을 곳 없는 시골에서 혼자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너무 지치고 외로웠던 것 같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정성과 사랑이 담긴 밥상과 사람과의 대화와 잠시라도 숨 돌릴 여유가 너무나도 그립고 그리웠다. 매일 고갈되고 방전되는 체력과 채워지지 않는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달달한 간식을 달고 살기 시작했고 육퇴 후 하루의 피로를 씻기위해 마시는 맥주과 야식들은 내 몸과 마음을 점점 망가뜨리고 있었지만 무언가로 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는 외면하고 회피했다. 한구석에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과 에라 모르겠다고 포기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 두번 왔다리 갔다리 널 뛰기를 했다.


안되겠다 싶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육아와 지루한 결혼 생활이 나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부부생활보다 부모로 역할이 더 커져가면서 남편과 나도 서로 지쳐가고 있었고 나는 남편이 나보다 아이를 더 아끼고 챙기는게 점점 서운하고 서글펐다. 누군가의 보살핌과 누군가의 관심과 누군가의 사랑과 누군가의 인정이 너무나도 고픈 내가 보였다.


내 집이 아닌 공간에서 누군가가 잘 차려준 밥 한끼를 편한하게 먹고 싶었다. 아무 생각해도 엄마 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드라.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줬는데. 내가 인생을 잘 못 산건가. 별 생각이 다 들고 또 서글펐지만. 슬픔과 우울함은 떨쳐버리고 급하게 짐을 부랴 부랴 챙겨서 아이와 함께 엄마 집에 왔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나물을 불리고 오곡밥을 짓기 위해 준비하며 오늘은 엄마의 레시피를 머릿속과 마음 속에 꾹꾹 저장했다.아이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함께 보낸 정월 대보름. 내가 설날과 추석보다 더 좋아하는 명절. 아이는 엄마의 오곡밥이 맛있어보였는지 눈 앞에 이유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곡밥을 우걱 우걱 맛있게 먹는게 유난히도 사랑스럽던 하루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기억이 있다. 특히나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맛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찐하게 기억에 남는다. 쉽게 밖에서 사먹고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누군가 사랑을 담아서 만든 음식의 맛은 영혼이 외롭고 몸이 힘들때 더 고프고 그립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오랫동안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해서 한별이가 외할머니가 해준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감사하다. 나도 한별이에게도 외할머니의 맛을 잘 전해주는 엄마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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