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살아내기로 결심한 날

무너진 삶 위에서 기록을 선택하다.

by 초연

프롤로그

다시 살아내기로 결심한 날


20대 후반, 나는 비주류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강의를 하던 시절


나는 한때 적당히 벌고 잘 살고 싶었다.
더 많이 가지는 삶도, 더 빨리 성공하는 삶도 아니었다.



숨 쉴 수 있고, 내 속도로 살 수 있는 삶.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원했다.


도시에서 시간과 돈에 쫓기며 사는 삶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집과 차를 사기 위해 청춘을 모두 바치고 싶지 않았고, 점심시간 한 시간 남짓한 틈에 줄을 서서 밥을 먹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불편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도 더 이상은 견디고 싶지 않았다.


삶을 영위할 만큼만 일하고, 남는 시간은 잉여롭게 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뱃속이 편안한 밥상을 차리며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사람이었다.

촉은 빠르지만 그만큼 에너지도 빨리 소모됐다.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오면 금세 방전됐고, 서울과 경기를 오가며 미팅과 일을 하고 나면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졌다.


무리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대중교통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호르몬 균형이 무너지며 극심한 무기력과 우울에 빠지곤 했다.


끼니를 대충 넘기거나 식습관이 흐트러지면 면역력은 바로 떨어졌고, 비염은 점점 심해졌다.


생사를 오가는 큰 병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신호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갉아먹었다.


나는 늘 “괜찮은 척” 살아왔지만, 몸은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노매드의 삶
다운로드 (6).jfif 호주 밴 라이프 시절


돈이 조금 생기면 여행을 떠났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돌아와 벌었다.

돈이 없는데도 떠나고 싶을 때는 돈을 쓰지 않는 방법을 찾아 길을 나섰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내가 꽃필 수 있는 환경을 찾기 위해


나는 계속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여행 중에는 몸이 아프지 않았다.


지나가는 감기나 식중독 정도를 제외하면 일상을 방해할 만큼의 고통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아팠던 건, 내가 살아가던 방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행하며 발견한 가장 큰 행복은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삶.

그 단순한 선택권이 나에게는 자유이자 회복이었다.


한동안은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더 이상 떠나고 싶은 나라가 없어졌고,
여행의 흥미가 사라지자 정착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떠올랐다.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던 어느 시기,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가를 하려는 결심을 했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떠오른 단 하나의 장면이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냈다.


‘엄마가 되고 싶다.’


그 생각 하나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여자혼자 귀촌을 결심하다


혼자 도시에서 내려가서 시골집을 하나 구해서 내 삶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실험해보고 싶었다.


오래된 집에 손을 대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살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충만한 시기였다.


그 삶이 옳다고 믿었고,그 믿음 위에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삶은 늘 예상과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시골살이의 낭만과 현실, 그리고 고립감이 불러온 깊은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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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 팬데믹을 지나며 나는 준비되지 않은 현실과 마주했다.

고립은 반복되었고, 흐려진 판단 속에서 내린 선택들은
종종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금이 갔고, 돈 앞에서는 자주 무너졌다.


우울은 소리 없이 스며들어 일상을 잠식했다.


모든게 꼬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나는 무너져갔다.


이 글은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 쓰는 회복담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버티는 중이고, 완전히 다시 서지 못했다.


다만 어느날 문득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렇게 살다간 진짜 망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하루 하루 살아가는게 너무 힘들어졌다.


매일 같이 악몽을 꾸고 꿈 속에서도 사기 친 사람들과 싸우며 눈을 뜨는 아침은 너무나도 괴롭고 피곤했다.

만성 피로와 우울한 얼굴, 어느것도 집중 하지 못하고 속 시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다.


도망치듯 잊는 대신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씩 바라보고

다시 놓아보기로 했다.


이 기록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돈, 관계, 몸, 마음, 삶.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구조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지금 그것들을 어떻게 다시 배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


답을 주기 위해 쓰지 않는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이 길 어딘가에서 멈춰 선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 쓴다.


이 연재의 끝에서
나는 완성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 분명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잘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중인 사람의 기록이다.


그동안 잘 사는 '척' 하며,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묵혀있던 감정들이 썪어서 곪아버린 후에

어떻게 몸과 마음이 망가지게 되었는지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 한 인간과 한 가정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첫 문장을 적는다.


완성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흩어졌던 나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


잘 살아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이 글이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기를,
대단한 답을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이 기록을 읽다 자기 마음의 소리를 잠시라도 들을 수 있다면,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고,

자주 흔들리며,
여전히 서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내기로 결심한 사람으로서
이 과정을 숨기지 않고 남기고 싶었다.


가슴을 닫고 버텨온 시간만큼
이제는 가슴의 언어로 말해보고 싶다.


서로를 고치려 들지 않아도,
정답을 내놓지 않아도,

그저 진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관계를
다시 믿어보고 싶다.


부디 이 글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누군가와
조용히 손을 맞잡는 계기가 되기를.


말을 아껴왔던 가슴들이

조금씩 다시 따뜻해질 수 있기를.


그렇게,
가슴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들과
연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새해가 벌써 한달이나 지났지만

입춘이 시작 되기 전이라 안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본다.

다시 살리는 그 길을 향해.



*매주 일요일 밤 연재 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