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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n 29. 2020

시골살이 2년간의 변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  







2년 전 배낭 하나 메고 혼자 시골에 와서 살겠다고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왔다. 무모했고 대담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 작은 산골마을에- 배낭 하나 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가장 큰 것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많이 없다는 거였고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거였다. 10킬로가 조금 넘는 배낭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가능한 불필요한 짐은 줄여야만 했고 떠날 때마다 짐을 정리하고 버리는 것은 하나의 리츄얼처럼 반복되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많은 물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해졌고 나의 추억의 서랍 속에는 꺼내보고 싶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이 많이 쌓였다.





혼자 배낭 여행 하던  시절-





시골에 처음 배낭하나 메고 왔을 때. 침낭과 매트리스 하나로만 지냈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나름의 삶의 규칙을 정한 것 중에 하나는 되도록 새 물건을 사지 않기,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씩 몸을 움직이기, 가능한 정성껏 신선한 채식 위주의 밥을 차려먹기, 시간에 쫓겨서 살지 않기, 소비보다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나를 위한 일이었고 혼자 살면서도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켜나가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지내기 위한 생존능력을 하나씩 장착하며 살아왔었다. 언젠가 숲 속에서 혼자 나무를 떼면서 살아갈 상상을 하며-


혼자서도 부족함 없이 잘 지냈지만 같이 웃고 같이 밥을 먹고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이다. 혼자 있을 때는 깔깔거리며 웃을 수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먹어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없고, 감정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점점 삶이 건조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친구들이 놀러 오기는 했지만 자주 만날 수는 없었고 시골살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도 그 부분이었다. 아마도 그때쯤이었을까. 문득 가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서 4계절을 함께 보내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한 남자가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흔들리는 마음이 단단해지고 손을 잡고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할 때쯤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그리고 시골에 온 지 딱 2년 만에 아가를 만난다. 엄청난 변화다.





남편이 직접 손바느질해서 만드는 세상에 하나뿐인 배넷저고리-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남기고 싶었던 순간.



아가가 세상에 처음 나와서 입는 배넷 저고리를 바라보며 알수 없는 감정들이 뱃속을 간지럽혔다. 그런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살아있는것이 아닐까-





10개월간 아이를 품고 있는 시간동안 우리는 함께 많은 일을 해냈고 많은 감정들을 공유했다. 그것은 내가 연애할 때와는 분명 다른 감정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임신을 하고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안에는 산부인과가 없어서 전주까지 가서 진료를 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는 곳이 전주에는 없어서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청주에 있는 조산원을 다니면서 출산을 준비 중인데 다양한 선택권이 없다 보니 임산부들도 다른 대안은 쉽게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 많이 안타깝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내가 선택하듯, 아이를 출산하고 내가 삶을 마감하는 방식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었다.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삶을 따라는 것이 아닌 각자의 본성과 본질대로, 출산과 죽음에서도 가능한 의료진의 개입이 적고 나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시골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자랐으면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왔던 소신들을 잘 지켜가며 나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지만 조서연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일 수도. 그렇게 스스로 행복한 삶을 지으며 살아가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며. 앞으로 이곳에서 혼자가 아닌 셋이서 더 많은 행복을 지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으면 좋겠다. 먼 훗날 손에 쥘 수 있는 것보다 꺼내볼 수 있는 행복한 추억들이 더 많은 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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