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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15. 2020

독박 육아의 소리 없는 외침

뭐 어때!

엄마들의 독박 육아. 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는 의미다. 이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로 보자면 아빠들은 항상 회사 일에 바빠서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거였다. 이 당연했던 일을 당연하게 보지 않게 된 건 언제였을까. 나는 새벽 1시까지 이어진 독박 육아를 하며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오후 6시. 신랑에게서 조금은 늦겠다는 카톡이 왔다. 그래, 22일까지는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던 그였다. 아주 쿨하게 9시?라고 물으니 그에게서 답이 왔다. “그럼 나야 땡큐고!” 뭐지, 회식 자리도 아닌데 뭐가 땡큐란 말이지. 늦게 온다는 신랑을 기다릴 필요 없이 아이들을 서둘러 저녁을 먹였다. 따뜻한 물로 물놀이를 즐긴 둘째 녀석은 씻고 나오자마자 사르르 잠이 든다. 오! 좋은데? 가끔은 신랑이 늦게 와주면 긴긴 육아가 짧게 끝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어서 아빠가 없으면 오히려 타협이 잘 되고 말을 더 잘 듣는 편이다. 아빠를 기다리는 큰 아이가 있었지만 큰 아이쯤이야. 내가 9시?라고 물은 건 회사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9시로 예상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 9시 30분까지는 그의 부재를 허용해주겠다는 거다. 9시가 되니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30분만 버티자 하면서도 1분, 1분이 더디게 흘러갔다.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왜 안 오지?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를 않는다. 또 시작이다.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말을 하지 않는 것. 전화를 하면 바쁘다고 받지 않는 것. 설사 통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것. 그는 또 똑같은 행동을 보일 거라 짐작이 되었다. 전화를 받지 않더니 카톡이 온다.


“아직 출발하지 못했어.”

“왜? 내가 허락한 시간은 9시 반까지인데.” 

“10시 반에 출발할 거야.” 


다시 기다린다. 이제 곧 10시 반이니까 마무리를 하고 있는 거겠구나. 늦은 시각이니까 차가 밀리지 않으면 11시에는 오겠지. 나는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을 하며 조금만 버티자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밀린 과제들이 있었다. 12시가 되기 전에 마무리를 해야 했기에 아이에게는 또 “잠깐만”을 되풀이하며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이제 12시가 넘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 폭발하기 직전이다. 불과 며칠 전에 최소한 하루 5시간이라도 내 시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던 나였다. 이리 처참히 짓밟혀도 되는 건가.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오는지 왜 안 오는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신랑은 요즘 국책과제를 하느라 바쁘다. 팀원들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고 있다.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내가 전화를 하니 그 또한 불편하고 귀찮았을 테다. 화를 내는 나에게 그 또한 퉁퉁거림으로 답변을 했다.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적어도 미안해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신랑은 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 사이 잠들었던 둘째는 개운한 낮잠(?)에서 일어나 다시 아침인마냥 온 집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신랑은 미안한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다음날부터 2박 3일 출장을 가야 한다고 말을 했다. 뭣이라. 그럼 나는 오늘부터 4일 동안 독박이란 말인가. 나는 신랑에게 또 퍼부었다. 


“우리가 둘 다 직장인이라고 생각해봐. 나도 중요한 회의가 잡혀있으면 어쩔래? 이렇게 출장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어? 내가 지금 얼마나 바쁜 상황인데!” 


신랑의 표정만 봐도 그의 말이 상상이 갔다.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해야 해?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닌데?”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항상 그가 나에게 해왔던 말들이기에. 


나는 실제로 이번 주에 너무 바쁘다. 주문은 한 번에 20건이 들어와 있고,  그동안 미루고 미루기만 했던 그림책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하루 과제를 소화하면서 밀린 강의를 듣고 주문 건을 제작하고, 그림책테라피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모든 것이 목요일이 D-day인데 출장 기간도 하필 그 시기다. 이건 일하지 말라는 건가? 항상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 그는 회사 일로 바쁘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사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린 서로에게 로또라고. 안 맞아도 이리 안 맞을 수가 있나!








사토 신 글ㅣ돌리 그림ㅣ오지은 옮김ㅣ길벗어린이



그림책 『뭐 어때!』는 늦잠을 자 회사에 지각하게 된 ‘적당’씨의 출근길에 대한 이야기다. 특별할 게 없는 뻔한 일상 속에서의 출근길도 ‘적당’씨가 하면 특별해진다. 어차피 늦은 출근. ‘적당’씨는 서둘러 급하게 출근하는 길이 아닌 흘러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 상황을 즐기며 출근길에 나선다. 신문을 보다가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버스에 가방을 두고 내리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어이없고 짜증 나는 상황에서 멘탈이 나갔겠지만 ‘적당’씨는 끄떡없다. 바뀐 상황마다 “뭐 어때!”라고 외치는 ‘적당’씨. 그는 무사히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내가 신랑에게 화가 나는 건 내가 해야 할 일과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 사이에 두려움과 심리적 압박감이 커서이기도 하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보장받지 못함에 더 화가 났을 거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적당’씨처럼 “뭐 어때!”를 외친다면 어떨까. 너무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담이 되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적당히’라는 말은 때로는 책임을 다 하지 않는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떤 일에서든 ‘적당히’를 맞추기는 꽤나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앞으로 3일간의 독박 육아 타임. 

뭐 어때! 아이들과 즐겁게 놀면 되지! 

뭐 어때! 과제는 할 수 있는 것만큼 내면 되지! 

뭐 어때! 밀린 강의는 어차피 그동안 못 들었던 거였는데! 

뭐 어때! 그림책테라피는 나 또한 힐링하려고 하는 거 아냐? 순간을 즐기면 되지!     


일상에서의 “뭐 어때!”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거둬두고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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