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리가 저지른 모든 일들에게

by chouquette

한동안 취미로 물감 칠하기를 한 적이 있다.

칸마다 정해진 색의 번호가 있어서 맞는 번호의 물감을 채우기만 해도 그림이 완성되는 취미 키트.


쉽게 할 줄 알았는데 캔버스를 꺼내자마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취미용이라 장비 성능도 마뜩잖은데다 나뉜 구역이 너무 많았고 또 너무 작았다.


색칠을 하는 게아니라 점을 찍는 일이 다반사고, 붓이 섬세하지 않아 칠해지는 모양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잠깐 시선을 돌리면 하던 곳을 놓치기가 부지기수에 선을 넘어가 그냥 다른 색으로 덮어버린 곳도 많다. 작은 데에 익숙해지자 큰 모양은 하기 싫어서 미뤄두기도 하고, 한 군데만 보고 있는 게 지루해서 반대쪽을 기웃거린다. 나중에는 하다 하다 키트용 붓 대신 내가 쓰던 붓을 찾을 정도.


머리 좀 식히려다 이게 맞는 건가, 이게 뭐가 되기는 되나 싶을 때쯤 캔버스를 세워놓고 보면 결국 그림은 괜찮았다. 색칠 밖에는 한 게 없고 엉망진창 온갖 실수들이 있었는데도 완성하고 보니 그 정도는 별게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나 멀리서 보나 그냥 그림의 한 조각이었을 뿐.


내 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

때론 계획대로 안돼서 여러 번 덧칠하기도, 너무 넘쳐나서 그냥 잊어버리거나 다른 걸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잠시 방황하다 돌아오거나 또 어떤 것은 영원히 떠나기도한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재미를 느껴 푹 빠지기도 하는 뭐 그런 거.


내가 저지른 그 모든 일이 모여서 꽤 볼만한 내 인생을 만드는 거겠지.

그러니까 조금은 과감해져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다는 말을 에둘러 담아본다.

뭐가 됐든 결국 퍼즐의 한 조각 정도라면 훗날 실패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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