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줄 알았지만 별것들

by chouquette

유치가 빠지고 난 자리에 평생 쓸 이가 다시 자라는데 이것을 영구치라고 한다.

작은 어금니의 영구치가 없는 나는 유치가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게 도와야 해서 치과 문턱이 닳도록 다녔었다.


뭐 그렇다고 치과 냄새가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던 여행 전 날, 별안간 어마어마한 치통이 찾아왔고

4박 5일의 여행을 진통제와 함께 하고서야 겨우 유치를 보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다니. 내가 얼마나 아팠는데!

솜을 머금어 빵빵해진 볼을 쓰다듬다가 또 뭐를 붙잡았더라. 생각에 잠겨본다.


"I love you" 소리는 멈췄지만 단짝 친구였던 곰인형은 머리맡에서 함께 꿈을 꾼다.

첫사랑 향수는 공병으로 자리를 지키고, 처음 썼던 그림일기장, 모두가 한 번씩 돌아가며 받았던 상장,

10년도 넘은 책과 색종이, 다 굳어버린 물감과 반밖에 남지 않은 파스텔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없는 팀장님의 농담과 어색했던 내 표정,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료의 청첩장, 잊고 싶은 흑역사와 실수의 순간들, 영 손이 안 가지만 망가진 데는 없어서 쌓아둔 옷과 구두들까지.


막상 덜어내고 나면 별일 아닌 별것들.


미련한 수집광 같은 나를 탓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었더라. 까지 가보면 나를 탓할 수가 없다.

별거 아닌 줄 알았지만 다 별것들이었다.


붙잡고 괴로워한 줄 알았지만, 솔직히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그때는 그때의 이유가 있었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날 선택의 기로에서 또다시 내가 미워진다면,

별거 아닌 줄 알았던 무언가 들이 내게 남긴 것들을 찬찬히 떠올려보자.

그게 내 선택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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