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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lelife Jan 28. 2024

다음부터는 사랑이 먼저입니다.

조용필, 우주여행X(10집)

주말인 오늘, 온 가족이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든 커다란 봉투 한 두 개씩 들고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출동한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서로 떨어뜨리는 쓰레기는 없나 감시(?)하며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걷던 중, 갑자기 딸아이가 크게 외친다.


"엄마! 저기! 하트 구름!"


큰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재활용 쓰레기장 바로 위에,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진정 하트처럼 생긴 구름 하나가 둥실 떠 있다.


"엄마! 사진 찍어요!"


아이는 소리치며 발을 동동구른다. 빨리 사진부터 찍어야한다며 야단법석이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순간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내 양쪽 손엔 쓰레기가 가득 든 봉투가 한 개씩 들려있다. 핸드폰을 꺼내려면 양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모두 바닥에 내려놓아야 하고. 그 과정 중에 봉투 입구를 묶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바닥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쓰레기가 바닥에 우르르 쏟아질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일이다.


요행 그런 일이 없더라도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엔 다시 허리를 굽혀 쓰레기봉투를 챙겨야 한다.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재활용 쓰레기장은 대여섯 걸음만 가면 도착한다. 얼른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와도, 구름은 제자리에 있을 것인데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하는가?


딱! 결론을 내린 나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답게, 똑부러지게 대답했다.


"그래, 찍자. 그런데 지금 말고.

얼른 이 쓰레기만 버리고 와서 사진 찍자."


내 말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나도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쓰레기장을 향해 걸었다. 쓰레기를 버린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하트 구름을 목격했던 그 자리로 뛰다시피하며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하트 구름을 기대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그 사이 바람에 흩어진 구름은 더 이상 하트가 아니었다. 아래쪽 뾰족한 부분은 사라지고 위 쪽의 동글한 모양만 남다 보니 하트가 아닌 땅콩 모양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미 하트 구름이 아님에도, 우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트의 흔적을 찾아 요리조리 고개짓을 하며 둘러보았으나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구름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 나와 아이는 모두 실망하여 점점 더 흩어져 가는 구름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집밖으로 나올 때 기분 좋게 느껴졌던 바람이 지금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더니, 정말 그 말대로구나." 

허탈해하며 뱉은 나의 혼잣말에 아이가 대답한다.


"엄마, 나도 그 말 알아요.

 그러니까 엄마, 다음부터는 사랑이 먼저예요."


아이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며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조용필의 <우주여행 X>에서 아이들은 자꾸만 우주로 떠나려 하고, 그런 아이를 어른은 말린다. 노래의 한 구절은 특히 지금의 내 모습인 것 같아 아프게 들린다.


아이는 먼 곳의 혹성을 꿈꾸네. 나는 언제 그 꿈을 잃었나.



하늘의 구름은 흩어져 사라졌지만 대신 내 머리 속에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렇다. 나는 현실을 앞세워 사랑을 뒤로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기분 좋은 하늘의 선물을 즐기기 전에, 나는 얄팍한 계산을 앞세우며 그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내 현실적인 계산 앞에서 아이의 꿈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매우 합리적인 어른인것처럼 우쭐거렸던 것이다. 


발을 동동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 아이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우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와 같았다. '이를 말리는 노래 속의 어른'은 '내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딱딱한 '어른'이 되어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사랑의 타이밍은 어떠한가. 나는 내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타이밍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는 것일까. 곧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내 품을 떠날 내 아이. 내게 남은 타이밍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현실적인 어른인 것처럼 굴다가 내 아이와 함께 나누는 순간들도 어느새 이렇게 지나가버리지는 않을까.


내 손에 들린 쓰레기봉투를 처리하느라 하늘에 뜬 하트 구름을 놓쳐버린, 현실을 앞세워 꿈꿀 줄 모르고 사랑할 순간도 지나쳐 버리는 어른. 그래, 그것이 지금 내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나는 또 현실을 우선하며 내일이 되면 이 순간의 깨달음을 잊을 것이 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하나 있다. 비록 하트 구름은 내 눈앞에서 놓쳐버렸으나, 오늘 하루만큼은 구름이 남기고 떠난 교훈이 아직 내 마음에 남아있다는 것. 그러므로 오늘은, 내 손을 꼭 잡은 내 아이의 손을 내가 먼저 놓지는 않으리라. 






우주여행X(작곡 : 조용필 / 작사 : 양인자 / 노래 : 조용필)



로켓 타고서 우주를 돌래요.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불러요.


그렇게 먼 곳엔 가지를 말아라. 

지구도 하나의 어여쁜 별이야.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 되고 

오손도손 사는 것도 좋아요.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지요. 

모두들 입을 모아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도 갈래요. 

우주로 갈래요. 


그곳에 가려면 내게도 알리렴.


IC회로를 엮어서 우주로. 

누구도 손 안 댄 미지의 새벽을.


하루 한번 잠 깨우는 새벽 찾아 

멀리멀리 간다는 게 걱정돼.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지요. 

모두들 입을 모아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도 갈래요. 우주로 갈래요. 


그곳에 가려면 내게도 알리렴.

아이는 먼 곳의 혹성을 꿈꾸네. 

나는 언제 그 꿈을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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