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13집, 꿈을 꾸며
출근을 위해 아파트 입구를 나와 문득 하늘을 보니, 불쑥 솟은 아파트 정수리 사이로 유난히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이제는 봄, 그 새로운 푸르름은 수상한 마법이라도 품고 있는지,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아파트의 모서리가 가시처럼 자꾸 시야에 걸린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봄 햇살 속으로>처럼,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있는 느낌을 얻지 못한 것은 내심 아쉽다.
혹시나 탁 트인 하늘을 본다면 이 답답한 마음도 풀릴 것인지. 유난히도 갈증을 느끼고 있는 요즘의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점심때가 되면 아침에 조금이나마 느꼈던 활력은 이미 사라지고, 퇴근 시간 즈음엔 딱딱하게 굳은 두 발을 끌며 버스에 올라타 무감하게 앉아 돌아오는 하루.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점점 나라는 사람은 잠식되어 간다.
그날도 여느 때랑 같았다. 답답한 마음으로 무기력하게 퇴근길 버스에 앉아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두 귀에 버릇처럼 꽂아 둔 블루투스 이어폰이 내게 말을 건다. 처음엔 귓속이 간질거릴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노래 가사 한 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쿵쿵 두드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렇게 자연스레 흘러들어온 노래가사는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다가 내 두 눈에 이르러 급기야는 뜨거운 눈물을 밀어낸다. 오늘, 그렇게 날 울리는 노래가 있었다.
어린 시절 지나 이제 어른이 되고,
모든 것은 쉽게 변해가.
사랑스러운 꿈, 작은 장난감 대신
알 수 없는 것을 원하지.
쓸쓸한 비밀처럼
빈 가슴 가리고 웃고 있어......
공허한 듯, 그리고 쓸쓸한 듯 들리는 그 음색은 바로 지금, 내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어린 시절, 어른만 되면 모든 것을 다 내 마음대로 할 줄 알았던 그 생각이 틀렸음을 무참하게 알아가는 지금의 나. 실체 없는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갈증을 느끼는 지금의 나. 초조해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 이 노래 안에 있었다.
이 노래는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지금의 내 모습을 주저없이 묘사했다.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것만 같아 눈물이 났다. 버스 안이 아니었다면 나는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 어깨를 다독여주던 이 노래는, 다음 가사로 이어지며 내 뒷통수를 딱! 때리는 듯 했다. '너! 정신차려!'라고 말해주는 듯 했던 것이다.
이젠 알아 꿈은 곁에 있잖아.
손 내밀면 느껴져.
영원을 믿지는 않아.
오늘을 사는 거야. 꿈을 꾸며.
그러고 보니, 요즈음 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었다. 실체도 없는 그 무엇이 하루빨리 이루어지지 않아 괴롭고, 한편으로는 이루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나의 매일은 이렇게 낭비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일상을 괴로움으로 여긴 것도 나,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둔 것도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꿈이 곁에 있다'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손을 내밀면 느껴진다'는 말에 먼저 손 내밀지 않은 나의 오만함이 보였다. '영원'을 사는 것도 아닌데, 언젠가 잘 살 내일의 내 모습만 공상하며 매일의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어리석은 내 모습이 보였다.
삶이라는 것은 '파도에 부서져가는 모래성을 쌓는 일'인지도 모른다. 허무한 일인 줄 알면서 욕망하는 일. 지금껏 이루지 못한 꿈들은 파도에 쓸려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루지 못한 꿈보다는 이루어낸 꿈이 더 많다.
어린 시절엔 그저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다. 지금의 난 이미 어른이 되어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목표로 했던 직업을 얻었고, 많이 부족하더라도 안정감있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가정 속에 있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내가 어릴 적 상상했던 멋진 어른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그리 답답해하고 있는가. 이미 나는 많은 꿈을 이루어 내 곁에 두고 있는데. 이미 이룬 꿈이라고 하여 이것들을 심드렁하게 내쳐두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새로운 꿈의 허상만 쫓고 있다. 내 머리 위에 이미 무지개가 떠 있는데, 나는 먼 곳 어딘가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필의 '꿈을 꾸며'를 들으며 눈을 감아본다. 이미 이룬 소망이 또다시 나의 꿈이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지금 행운아라는 증거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은 내가 과거에 꿈꾸던 바로 그 이상적인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 이미 이룬 꿈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일의 꿈만 반짝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이룬 꿈'들에게 '행복'이라 이름 붙여 한 번 더 쓰다듬어 본다. 잡고싶어 애썼던 반짝이는 꿈이었을, 지금은 내 곁에서 나를 위해 실체로서 존재하는 과거의 꿈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오늘 내 곁에 있는 행복은 서둘러 꿈꾸길. 내일 잡고 싶은 꿈은, 어느 날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내 품에 안길 때까지 느긋하게 꿈꾸길."
'꿈을 꾼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억하리라. 영원보다는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이미 행복이 된 꿈들을 항상 기억하리라. 다가오는 어느 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기억하며 노력하되, 느긋하게 그때를 기다리리라.
<꿈을 꾸며>를 한 곡 반복 듣기로 틀어두고 버스 안에서 내내 조용필의 음색을 감상해본다. 노래의 볼륨도 조금 높여본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듯, 조용필의 목소리는 더욱 힘있게 위로를 전한다. 노래로 위안받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이 순간도 놓치지 못할 큰 행복이다. 아, 지금, 조용필이 존재해서 나는 또 행복하다.
파도에 부서져가는
모래성 쌓고 있어, 꿈을 꾸며.
영원을 믿지는 않아
오늘을 사는 거야. 꿈을 꾸며.
<꿈을 꾸며 (노래 : 조용필 / 작곡 : 조용필 / 작사 : 김선진)>
어린 시절 지나 이제 어른이 되고 모든 것은 쉽게 변해가
사랑스러운 꿈 작은 장난감 대신 알 수 없는 것을 원하지
쓸쓸한 비밀처럼 빈가슴 가리고 웃고 있어
오래전 꿈을 꾸었던 무지개 어디 있나 알 수 없어
어디에서 와서 모두 어디로 가나 어둠 속에 혼자 생각해
이름 없는 들꽃 굴러다니는 돌도 모두 아름다운 의미야
파도에 부서져가는 모래성 쌓고 있어 꿈을 꾸며
영원을 믿지는 않아 오늘을 사는 거야 꿈을 꾸며
이젠 알아 꿈은 곁에 있잖아 손 내밀면 느껴져
내게로 와 사랑 곁에 있잖아 아무것도 말하지 마 지금은
파도에 부서져가는 모래성 쌓고 있어 꿈을 꾸며
영원을 믿지는 않아 오늘을 사는 거야 꿈을 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