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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lelife Apr 12. 2024

공부는 애인(愛人)과 지인(知人)사이

논어 안연 22장


1. 사랑과 우정사이


사랑과 우정사이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작곡 오태호/ 작사 오태호 / 노래 피노키오 - 


한 때 참 좋아했던 노래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십대 초반에 '사랑과 우정사이'를 단짝 친구와 노래방에서 자주 열창하고는 했지요. 그러나 사실은 이런 감정이 어떤 마음일까 전혀 알지는 못했습니다. '사랑'도 무엇인지 모르는데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주변에 여자아이들만 가득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남성이라는 성별을 지닌 친구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신비의 세상, 미지의 세계였으니까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자만의 울타리에 갇혀있던 나의 여고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간 뒤 한창 연애에 빠져들었고, 가끔 만나면 역시 '연애'와 '사랑'에 대한 화제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자주 토론을 벌이고는 했는데, 친구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엇갈려 시원하게 하나의 결론을 내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여중과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은둔자로 살고 있던지라, 남성 친구란 여전히 알 수 없는 세계의 일이었기에 무어라 끼어들 수도 없었지요.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난해한 감정에 막연함을 느꼈던 시절의 이야기, 하지만 나의 아이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여전히 정답을 말해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렇게 미스테리하기에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말은 사람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사랑과 우정사이'를 인간 관계와 관련된 달리 말하면 '애인과 지인사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알고지내는 사람, 그 사이 어디쯤 남녀의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랑과 우정사이'의 노래 가사겠지요. 그런데 이 '애인'과 '지인'에 대해서는 공자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2.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답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앎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답하셨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遲, 仁,  人. 

知,  人.


논어 안연 22




공자의 제자인 번지가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인'과 '지', 이 두가지에 대한 공자의 대답 안에 '애인'과 '지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고요? 앞에서 말한 '애인'과 '지인'의 의미랑은 다른 것 같다고요? 네, 사실 그렇습니다. 


발음은 '애인'과 '지인'으로 정확히 일치하지만 공자의 대답 속의 애인과 지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문법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할까요? 애인은 우리가 예상했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요, 지인은 '알고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똑같은 한자라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한자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의 문장, 어디서 많이 본것같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는 글에 소개 되었던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논어 안연 22장'에 수록된 문장은 원래 위와 같습니다.지난 글에서는 이 중 한 가지만 소개해드렸기에 이번에는 두 가지의 질문을 함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실 위의 문장은 여기에 실린 것보다 서사가 더 깁니다. 생략된 내용을 정리하여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번지는 위의 공자의 대답을 듣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친절한 공자는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요. 그러나 이것도 이해하지 못한 번지는 공자와 함께 있던 곳에서 나와서 다른 공자의 제자에게 이 말의 뜻을 물어봅니다. 


참 인간적인 번지의 모습입니다. 바로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나와 닮은 것 같아 애정이 갑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해가 안되면 이를 솔직히 드러내고 꾸준히 물어보는 번지의 모습은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번지의 이런 모습은 이해하지 못해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제 모습과는 상반되어 역시 '공자의 제자'구나 싶기도합니다. 덕분에 '인'과 '지'를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번지는 참으로 고마운 제자이기도 합니다.



3. '사람'이 '중'하다.



위에서 소개되었던 논어 문장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번지가 질문했던 것은 모두 두 가지 입니다. '어질 인(仁)'과 '알다 지(知)'입니다. '인(仁)'이라는 개념은 논어에 여러번 나오지만 그 의미가 포괄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개념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공자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지요.


또한 공자가 '인'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앎, 공부였습니다. 번지는 자신의 스승인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두 가지 가치에 대해 핵심적인 질문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번지의 질문에 공자는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앎'이란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답변을 합니다. '애인'과 '지인', 이 말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한자가 눈에 띄시나요? 네, 맞습니다. 바로, '사람 인 人'이라는 글자 입니다. 공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인'과 '지' 안에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공자는 '사람'에 대해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과 지는 공자의 사상의 핵심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던 공자의 사유는 사람이 그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공자 사상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사람을 아는 일. 모두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애인'과 '지인' 즉,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아는 일'을 어떻게 하면 스스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나이가 어려서, 혹은 여러 상황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실천하는데에 제약이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아는 일'을 실천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 하고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 관계의 유무와 사회적 지위를 불문하고 '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무엇일까하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부' 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일은 모두 '공부'라는 영역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4. 공부는 애인(愛人)과 지인(知人)사이에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애인과 지인, 즉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일은 개개인의 기본적 소양입니다. 그런데 이 개별적으로만 보이는 '애인'과 '지인'이라는 단어는 '공부'라는 영역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나'를 완성해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그렇다면 공부가 '애인'과 '지인'사이에서 어떻게 존재해야할까요? 


그럼 먼저 '애인',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겠습니다.


'애인', 즉 사람에 대한 사랑은 공부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 성장을 추구합니다. 공부는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가장 주효한 방법이 공부입니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사랑'은 공부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공부란, 모든 공부의 과정속에 있는 나 자신에 대해 긍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공부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나, 공부의 결과가 좋지 않은 나,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나, 이 모든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긍정하고 인정하며 이를 이겨내고 또 다시 공부를 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공부의 끝의 끝에는 역시 '사랑'이 존재해야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다른 대상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합니다.


이제 지인, 사람을 아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인'은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합니다. 공부하며 느끼는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느껴보고, 흥미가 가지 않아도 인내하며 노력하는 일, 즐거움을 느끼는 과목엔 더욱 즐거움에 빠져 공부해보는 일, 이것이 모두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공부를 해나가며 자신의 흥미와 재능과 능력과 노력의 확장과 한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다른 대상에 대한 이해도 쉽게 가능합니다. 축적된 공부의 경험이 곧 가족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초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란 이렇게 나 자신을 이해하고 가족과 사회를 이해하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5. 공부, 나를 사랑하는 길, 나를 알아가는 길.



 공부를 통한 끊임없는 성장, 이를 위한 지속적인 공부는 공자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논어의 가장 첫번째 편, 첫번째 구절에서 공부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것은 괜한 일이 아닙니다.


공부란 사람이 만든 모든 것과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전 학습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의 위치와 좌표를 확인하며 나 자신을 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부의 뿌리는 반드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야 합니다. 공부의 시작과 끝은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남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인(仁)'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는 '애인'과 '지인' 사에에 있습니다. 공부는 그 뿌리를 단단하게 '애인'에 두고 현실에서는 '지인'을 실행하며 경험을 쌓고 자신과 세상의 가능성을 최대한 점쳐보는 것입니다. 


앎'이라는 단어, '사랑'이라는 단어, 생각만해도 기분 좋아지지 않나요? 공부할 수록 나를 알고 사랑하는 이를 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요. 어여쁜 내 모습을 보듯, 혹은 사랑하는 '나의 님'을 보듯 교과서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공부도 조금쯤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합니다. 지금 이순간부터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 행복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공부의 시작과 끝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공부는 '앎'의 통과의례입니다.

남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며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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